욕지도 (알려고 하거든)
조선 초 세종 때 그의 아들 안평대군 이용은, 어느 날 꾼 꿈을 도화서 화가인 안견에게 설명하여 그리게 하였다. 화가는 비단에 수묵담채로 대군이 꿈에 도원경을 거닌 이야기를 그려 낸다. 사흘 만에 조선 최고의 걸작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이렇게 탄생한다. 그림을 본 대군은 꿈속에 정경과 방불한 그림을 보고 흡족해하면서 이렇게 읊조렸다고 전한다.
“꿈인지... 생시인지...”
하나.
날카로운 구리철사 같은 햇살을 내내 던지기만 하던 이른 여름. 지난 주말 그동안 비에 인색하던 하늘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오전 7시경 경주를 벗어나 가덕 해양파크 휴게소를 걸쳐 가덕대교를 건너 삼덕항까지 가는 길. 비는 개구쟁이처럼 내림과 그침을 반복하며 우리를 희롱한다.
일행이 그 장난에 시큰둥 해설까. 한려수도 끝자락 욕지도로 향하는 여객선 카페리 위에서, 비는 새침한 얼굴로 육지로 발길을 돌렸다. 대신 갈매기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에 하늘을 무대 삼아 무희처럼 춤추며 달려들었다.
배가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는지, 멀고 가까운 섬들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지... 남해 바다의 해무는 자신의 속살을 보여 줄듯 말 듯 하면서 우릴 감싸 안고 있었다.
비린 바다 냄새에 벌써 취한 나는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꺼내 먼 수평선 외딴 이름 모를 섬들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그 순간만큼은 평소 늘 염두엔 둔 미장센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해무의 바다엔 색 짙고 엷은 섬, 크고 작은 섬 그리고 갈매기의 울음소리와 나만 있었다. 그 순간은 불꽃에 다시 불을 지르는 스파크 같은 짜릿한 순간이었다. 그 숨 막힐 것 같은 정막 속에서 나는.
“꿈인지... 생신지...”
둘.
다음 날 오전 9시 30분경 일행은 미사를 드리기 위해 욕지도 선착장으로 향했다. 멀리서 예수 성심상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도유화(陶釉畵) 타일을 벽면에 붙인 독특한 공소. 입구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알고자 하거든 공소. 여기가 욕지(欲知 : 알고자 하거든) 공소였다. 10시 미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공소 교우들은 여러 성가를 부른다. 나는 그때 허리를 곧추 세우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왠지 모를 서글픔에 몰려왔다. 그 까닭을 아직도 나는 알지 모른다.
사실 그날 나는 새벽 4시경 잠에서 깼었다. 조용히 카메라 장비들을 챙겨 숙소에서 나와, 하염없이 어둔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하늘엔 별들이 초롱초롱하고 저 먼 수평선 위에 알 수 없는 색이 번져오고 있었다.
내 어찌 이것들을 온전히 말로 전하고 글로 표현하며 사진으로 찍을 수 있겠는가? 수목이 울창하고 온갖 약초가 뒤엉킨 골짜기마다 사슴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여 녹도(鹿島)라고 불렸다는 섬. 이후 욕지항 안에 작은 섬이 거북이 모양으로 목욕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욕지(浴地)라고 불렸다는 섬. 그러나 지금은 욕지도(浴知島)라 불린다.
도(島)가 아닌 도(道)를 알고자(知) 할(浴) 때 찾는 섬이 아닐까라고 억지 해석을 하면서, 홀로 새벽 섬 일주에 나섰다. 도는 섬길 빛 내림을 바라보며, 망망대해에 얼룩 같은 거룻배의 정겨움 보며, 보잘것없는 스스롤 돌이켜 보면서 읊조린다.
“꿈인지... 생시인지...”
셋.
동행한 우리 사제는 공소 강론에서 바다를 말한다.
“바다는 하느님과 같습니다. 때로는 폭풍으로 때로는 잔잔한 바람으로, 늘 우리를 감싸 안아 주십니다.”
미사 후, 다시 숙소로 돌아와 욕지도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준비한다. 숯불을 피우고 소시지를 구우면서도 내 시선은 바람 한 점 없이 밝고 맑은 대해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슬그머니 자리를 벗어 난 나는, 거룻배를 구해 타고 저 끝없는 바다로 나섰다.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 버려야 할 것들 모두 것을 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스스로 썩지 않기 위해 소금을 머금고 스스로 잠들지 않기 위해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고... 그리하여 매일 새벽 뜨거운 해를 수면 밖으로 내놓고 세상을 살리고 있는 바다에,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다.
다만 오늘 우리는 이 넓고 넓은 바다에서 끝없이 용서하는 기쁨을, 한결같이 인내하는 겸손을, 그리고 다시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가 우리들의 자리에서 성숙한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다짐을 해 보는데... “소시지 다 타요” 맞은편에서 천막을 걷던 이가 아침 반찬을 준비한다며 숯불 앞에 앉아 이런저런 망상에 졸고 있는 내게 타박을 한다. 거룻배를 타던 꿈을 꾸던, 나는 후다닥 졸음을 접는다.
“꿈인지... 생시인지...”
<도유화 타일로 옷입는 욕지도 공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