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산에 가느냐고 물으면?

영남 알프스

by 장영철 Francis

한 여성이 물었다. “힘들지 않아요? 위험하고 죽을지도 모르는 산행을 왜, 해요?”

그러자 앤드류 어빙이라는 위대한 산악인이 재치 있게, 그 부인의 말을 받아친 게 불멸의 명언이 된다.

“산이 그곳에 있으니 오릅니다.” (Because it is there)


주일 새벽 6시에 경주 근교 산을 오르는 몇 사람이 있다. 각자의 신앙생활도 해야 되니 하산 후, 최소한 9시 30분까지는 해장국 한 그릇까지,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그래야 샤워하고 성당이나 예배당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비가 오거나, 개인적인 일이 있거나, 한 겨울을 빼고는 꾸준하게 산을 찾은 게 벌써 40여 회나 된다. 수 십 개의 남산 오르는 길이 식상해 등산로를 만들어(?) 가면서 금오산으로 고위봉으로 오르고 근처 옥녀봉이니 토함산이니 다니길 몇 해째다.


젊은 시절엔 큰 산을 타야 산 맛을 느낀다고 허세를 떨었다. 서울 성북역까지 전철, 기차로 춘천, 택시로 소양호, 배 타고 소양호를 건너 양구, 그곳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용대리에 내려 -비행기 빼놓고 다 타는 요란을 떨었다- 백담사를 들머리로 시작해 조금 오르다 해질 무렵 텐트에서 1박. 그렇게 설악의 품에 안겨 대청봉에서 뒹굴며 2,3일을 보내고 돌아오던 젊은 시절. 그때 그렇게 10여 차례의 산행이 가능했던 그땐 참, 행복한 시절이었다.


구례로 올라 천왕봉에서 얼음 같은 캔 맥주를 한잔하고 진주로 내려왔던 3박 4일의 지리산 산행 기억은, 지금도 내가 스무 살 시퍼런 사내로 착각하게 한다. 그 산을 기억하는 것 만으로라도.



대학 졸업 후 사회 초년생 때까지만 해도 그 행운은 내 곁에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설악산을 찾기가, 지리산을 오르기가 어려워졌다. 그리고 수 십 년의 시간이 흘러, 경주에서 다시 찾은 작은 행복. 나이가 들어 오르는 산행 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비록 텐트를 짊어지고 며칠 씩 산속에 파묻힐 수 있는 호사는 더 이상 누릴 순 없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낯선 나무들과 스치면서, 이름 모르는 꽃들의 향을 음미하면서, 앞 선이의 발걸음 때문에 먼지마저도 마다하지 않고 오르는 산행 길이다.


열정이 있어 좋다. 고통도 좌절도 극복도 휴식도 쾌감도 성취감도. 그리고 산 아래로 펼쳐지는 집착의 군더더기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회한. 부를 쫒기 위해서 명예를 얻기 위해서... 내 눈의 들보는 모른척하고 남의 눈의 티끌을 흉본 죄,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 자존심 때문에 상처 주고 상처받고 살았던 삶의 상흔들. 지금도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운가?라는 반문엔 스스로 부끄러워 고개가 숙여진다.


지난 5월 중순, 사진 동우회 에밀레 회원들과 말로만 듣던 영남 알프스라고 불리는 산들 중, 천황산을 다녀왔다. 언젠가 가 볼 생각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기회가 되지 않았던 산이었는데... 산행 중 컨디션 난조로 잠시 힘들길 했어도 그래도, 행복했다.



내겐 앤드류 어빙처럼 말할 재간이 없지만 언젠가 내 아들과 이 산을 오르게 될 때, 땀 벅벅 이가 된 아들이 거친 숨을 내 쉬며 물을 때.

“아빠! 어차피 내려 올 산을, 왜 이렇게 힘들게 올라야 하는 거죠?”


그때, 나는 아들에게 뭐라 해 줄 수 있을까? 아들의 어깨를 툭 툭 치면서 신발 끈을 다시 맺어주면서 단지 빙그레 웃기만 할 것이다. “아들! 세상을 살면서 그런 것들이 더러 있지. 산도 그런 종류란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이유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자유다. 시간의 자유, 공간의 자유, 감성의 자유... 반성과 자성의 자유...”라고 말하면서.


393A0230-1.jpg

<하행 길, 산중에 위치한 샘물상회(주막?) 인근에서 소낙비를 만났다. 잘됐다 싶어 막걸리에 두부로 새참... 그리고 그곳 뒷마당에 핀, 빗물 머금은 금낭화에 반해서 음주 촬영을 하고 말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잊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