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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Jun 11. 2022

길고 길었던 하루

작년 6월의 다행스러웠던, 오늘

    -오전-     

어제 6월 10일 금요일 오전 10시에 며칠 동안 기다리던 합격 소식을 확인했다. 내가 다니는 대학원에, 전 대학원에서 알고 지내던 후배가 합격한 것이다. 좋은 소식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책들을 읽고 저런이런 글들을 쓰면서, 혼자 노는 걸 즐긴다. 그러면서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와 같은 말을 좋아한다. 이 말은 칸트가 한 말이다. 몇 해 전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을 읽어 볼 요량으로 책을 들었다가 결국, 내려 났다. 평소 웬만한 철학책은 큰 어려움 없이 읽어낸다고 자부하던 나는, 칸트 앞에서 꼬리를 내리고 만 것이다.     


이런 지적 나약함에 설까. -꼭 그런 거 때문만은 아니지만, 사실은 버킷리스트에...-  지난 2019년 6월에 인문학 공부를 제대로 해보기로 맘먹고 대학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렇게 시작한 2년 동안 다양한 강의(한국‧동서양 고전, 동서양 사상사, 철학, 문학, 예술 사회 등 32과목)를 40여 명의 석학들과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수강했다. 내게 있어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공부를 마치고 그 연장선상에서 일체의 망설임 없이, 나는 다시 낯선(博) 길을 찾아 나섰다. 이 길은 '신앙과 이성'의 길이다. 철학이다. 그리고 지난주 목요일, 4학 차 중, 2학 차를 무사히 끝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때 내가 결정한 그 과정이 결코 녹록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일은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내 작은 소망 중에 하나이기도 했기에 일체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때 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마지막 연을 기억하며 길었지만 나름 낭만적인 오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 -중략-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오후-     

그날 오후 2시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접종하기로 예약이 되어 있어 당당히(?) 병원으로 향했다. ‘당당히’라는 말에 방점을 찍는 이유는 백신 때문에 온 집안이 난리가 났기 때문이다.     


며칠 전 AZ 백신을 접종한 후, 아무런 이상 증세를 보이지 않아 안심하고 있던 가까운 인척이 이틀 날 저녁에 집에서 피를 토하며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다. 가족들의 신속한 조치로 119에 의해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그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백신 후유증이라고 단정도, 부정도 하지 못했다. 그는 내 나이 또래다. -그 후 며칠 뒤에 의식이 돌아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족들 (특히 모친)의 걱정이 컸다. 안 맞으면 안 되겠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까운 사람이 흉한 꼴을 당했으니... 그러나 나는 1/100,000 정도의 부작용 때문에 접종을 피할 수는 없다고 일갈하고 팔을 걷어 올렸다.     


그러나 만약 접종 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이 갑자기 발생하면? (너무 비관적인 기사를 많이 본 탓이다 ㅠㅠㅠ) 접종 후 15분 정도 병원 대기실에서 머문 후 병원 문을 나서는 데, 마치 술 한 잔 마신 것처럼 몸이 휘청거렸다. (헐! 설마?) 하지만 곧 그게 기분 탓이라는 걸 아는데, 몇 분 걸리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귀가하고 나니 ‘괜찮냐’는 카톡과 전화가 이곳저곳에서 날아왔다. 심지어 나랑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접종한 지인도 연락을 보내왔다.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는, 웃지 못할 묘한 분위기가 연출된 것이다.     



   -한밤 중-     

저녁을 먹은 후 침대에서 책장을 넘기며 뒹굴 거리다 말고, 스스로에게 (오늘은 일찍 자자)라며 잠자리에 들었으나 깊이 잠 들 수가 없었다. 그건 백신 접종 후유증이 아니라 오래된 습관을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하면서 책 읽던-  하루아침에 바꾸려다 보니, 엇박자가 났기 때문이다.     


‘먹고,자고,읽고,체온재고...’ 리듬이 깨져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도통 잠들지 못했다. 어디 특별히 불편한 곳은 없었다. 주사 맞은 팔도 아무렇지 않았고, 두통도, 근육통도 없었다. 미열 있었지만 그때마다 타이레놀을 한 알 씩 삼켜 열을 내렸다. 그러나 시간은 더디기만 했다. (시간 빨리 가는 알약은 없나)     


몇몇 지인은 내게 부작용이라도 일어났는지 (일어나야 하나?) 확인 카톡이 그나마 남은 손톱 같은 잠도 다 달아나게 했다. 그렇게 꼬박 밤을 새우고 보니 내게 그날의 열서너 시간이, 마치 일주일처럼 여겨지는 지루하고도 지루한 하루였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고도 1년이 지난 오늘, 여전히 코로나로부터 우린 자유롭지 못하다. 내년 6월 이즘엔 나는 계획했던 공부를 수료한다. 그리고 지금 준비하고 있는 논문을 시작할 것이다. 기약 없겠지만 그래도 다시 프로스트의 시구를 읊조리면 무소의 뿔처럼 홀로 걸을 거다. 그때 이 말도 스스로에게 해 주고 싶다.

참, 다행스럽게도 잘 견디어 냈다,라고.

  

<고서들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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