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전이라 그런지 날이 무척 덥다. 며칠 전 식구들과 집에서 시원한 냉면을 말아먹었다. 그런데 열무김치에 매콤한 양념과 얼음 둥둥 띄운 잘 차려진 냉면에, 내 입맛이 마뜩지 않았다. 더운 날이니 시원한 것으로 한 끼 때우는 것이 마땅하거늘, 내 입은 까닭 모를 뜨거운 것에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결국 식사 후, 나 혼자만 원인모를 속 거북함으로,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구르다 기억의 파편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30여 년도 더 전에 소설가인 백파 홍성유의 식도락 기행 기(記)를 모 주간지에서 매주 한편, 수년 동안 정기적으로 읽던 때가 있었다. 김동리 선생의 권유로 전국 맛 집을 소개하기 시작했다는 백파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글로 읽는 입맛(?)이 꽤 쏠쏠했다. 그런데 백파 선생이 소개하는 수 백 가지 음식 중에 유독 칼국수에 대한 평가는 남달랐다. 그래서 그런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언제부턴가 나도, 칼국수에 대한 애정이 다른 음식보다도 유별났다. 이것도 바이러스처럼 전염되는 걸까.
간단하게 멸치로 육수를 내어 호박과 감자를 툭툭 썰어 놓고 두툼한 국수를 살짝 씻어내어 삶아 먹는 칼국수는 적당한 김치만 있으면 사시사철 언제 먹어도 좋았다. 혹, 땡고추라도 있어 작게 썰어 뿌려 먹으면... 굳이 바지락이니 들깨니 여러 해물이니 백 년 초니 하는 것들을 넣지 않고 또 어탕 식이니 샤부샤부 식이니 하며 특별하지 않아도 내 입은 만족 했다. (김치칼국수는 별미로 하고)
경주에 내려와, 황성 5일장이 서는 곳 근처에 살게 되면서 장에서 파는 나름대로 유명한 수타 칼국수에 만족하지 못하고 칼국수를 직접 밀어 먹을 욕심에서홍두깨를 산적도 있었다. 마른 멸치, 다시다, 새우 등을 바싹 말려 갈아 육수를 만들겠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말이다.
물론 경주에서 제일 먼저 찾은 외식 집도 칼국수 집이었다. 늘 칼국수만 먹으러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아내도 나와 입맛이 맞아 둘은 의기투합하여 구석구석 칼국수 집 찾기를 도락(道樂)으로 여기며 지냈다. 맨 처음 간, 경주에서 맛있기로 유명하다는 모 여고 앞 칼국수 집부터...
그러기를 수년이 지난 어느 날, 황성동 근처에 새로 생긴 칼국수 집이 오픈했다 하여 찾은 적이 있었다. 칼국수보다 많은(?) 바지락에 뿌듯해하고, 먹다가 보니 어느새 식탁 한 구석에 수북이 쌓인 바지락 껍데기를 보면서 패총(조개무지)과 인류문화 발생 등을 이야기하며 아내와 나는 키득거렸다.
적어도 칼국수론 100전 99승이었다. 어떤 칼국수 집에서든 실망하고 돌아온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 며칠 후 사달이 나고 말았다. 그날 점심시간에 시내에 볼 일이 있어 점심을 밖에서 해결해야 될 형편이라 회사에서 아내에게 문자를 쏘았다.
<삼능 근처 칼국수 집 경주 토박이 직원으로부터 추천 받음. 인터넷으로도 확인하니 별미라고 함>
늦은 점심시간. 아내와 함께 그 근처에 많은 칼국수 집을 뒤로하고 문제의 그 식당 마당에 들어섰다. 식당의 마당은 그럭저럭 운치가 있어 굳이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평상에 앉아서 먹기로 했다. 식당 구석구석엔 여러 방송국에서 소개되었다며 광고로 포장되어 있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열심히 칼국수와 입을 맞추고 있었다.
한 여름의 더위와 뜨거운 칼국수로 온 몸을 적실 그리고 땡초의 얼얼함을 기대하며 짧지 않은 시간 끝에 드디어 우리가 먹을 칼국수와 첫 대면을 했다. 그런데, 그런데 너무 심플했다. 맹한 국물 맛. 감자 두 조각. 호박 껍질 하나. 들깨로 추정되는 가루 조금. 찰기 없는 면(우리 밀이라서 그렇다나?). 짜기만 한 다데기(양념 장).
우리 칼국수만 문제가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계속 유사한 육수에 끊여 내오고 있을 텐데. 주변을 둘러보아도 남들은 다들 맛나게 먹는 것 같았다. 그렇데 우리 둘은 영 입맛이 아니었다. 만일 그때 나는 배고프지 않았다면 그냥 일어서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배가 고프니 시장기는 면할 생각에 꾸역꾸역 먹고 나오면서 황당해하다가 급기야 짜증까지 냈다.
우리의 입맛이 문제인가. 사람들은 이 집 칼국수 맛을 높이 평가하고 인터넷에서 방송에서 야단들인데. 결국 식사를 다하지 못한 아내는 귀가 길에 마트에서 빵 한 조각 사고, 나는 쓴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만 갸웃 거리며 그들을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그날 저녁 귀가 후, 늦은 밤 술 한 잔 하며 소파에서 이리저리 널브러져 그날 일들을 정리하다가 낮에 먹은 칼국수 입맛의 차이에서 문득, (술기운 덕에) 나는 어떤 성향의 인간인가?라는 자문을 하면서 스스로를 돌이켜 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내 의지만, 내 이데오르기만, 내 것만, 내 <입맛>만 옳다고 말하고 행동하지 않았는지. 분명 그랬을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어떤 모임에서든, 내가 기억 못 하는 이곳저곳에서든.
그때 철학자 볼테르의 말이 기억났다.
"나와 당신의 의견이 달라서 그래서 그것 때문에 싸워야 한다면, 나는 얼마든지 당신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나와 당신이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당신이 나 때문에 피해를 본다면,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당신의 의견을 사수해 주겠다."
볼테르는 자기와 다른 것을 인정해 줄줄 아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남의 의견을 들어준다는 것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옳은 관계란 나는 무조건 옳고 남은 절대적으로 잘못됐다는 인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라는 것을. 게다가 이 <다름>으로 인해 상대가 피해를 볼 것 같으면 상대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는 그의 말에선 숙연함마저 느낀다. 중요한 것은 내 고집스러운 의견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이 한 여름, 우연히 별미(?) 칼국수 한 그릇 덕에 잠시 날 돌아보고, 문 닫고 단정히 앉아 맑은 생각을 곧추 세우게 한 날이었다. 내 독선으로 내 고집으로 행한 말과 행위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용서하시게... 칼국수 입맛에도 짜증 내는 이 소인배를. 그러나 볼테르의 이 말은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으니나도 당신의 의견을 사수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나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피해를 본다면... 아울러 나와 다른 입맛도 인정하고서 말일세."
평생 먹어 본 수백 가지(?) 칼국수 중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멸치육수에 소박한 제철 야채로 만든 황성 칼국수다. 가능하면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들러 한 끼를 해결하곤 했다. 늘 고운 자매님 두 분께서 반죽부터 김치까지 챙기셨는데 이제는 폐점을 했기에 더 이상 그 맛을 볼 수 없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