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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Jul 01. 2022

막걸리와 다모토리

몇 해 전 코로나 전, 이야기

... 은은한 불빛 향기가 멀리 새어 나가면

때 묻고 상처받은 구두가 휘장을 젖히고 들어선다...

                                                                                                               - 시 <포장마차> 중에서



며칠 전 하루 종일 소나기가 오락가락했다. 장마가 곧 시작되려나 보다. 퇴근길에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 비 덕택에, 저녁 식사 메뉴는 오징어가 들어간 파전과 막걸리였다. 거실 탁자에 튀김 가루를 입혀 얇게 바싹 굳은 파전에 시원한 막걸리 그리고 영화 한 편. 게다가 백 뮤직으로 창 밖 밤비가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이 정도면 내겐, 분위기 최고인 성찬(盛饌)이다.


그렇게 가장 편한 복장과 자세로 영화 한 편을 맛나게 보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우연히 모 방송 뉴스 룸 클로징 멘트 중, 나온 강영환 시인의 시 <포장마차>가 아련한 기억들을 소환했다.


<왕대포>라는 말이 있다. 만일 이 단어의 의미를 안다면 그 사람은 '아재'다. 나는 이 말을 뜻을 잘 모른다. 아재가 아님으로... (쩝~ ㅠㅠㅠ 나도 이러고 싶지 않다) 각설하고, 어릴 적 동네 골목에 간판 없는 술집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집일수록 출입문에 하나같이 왕대포라 쓰여 있곤 했다.


당시엔 음식 앞에 <왕> 자를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다. 왕 짜장, 왕만두, 왕 갈비... 왕대포는 19금 음식, 즉 ‘술’ 파는 방식 중에 하나였다.


이런 집을 선술집이라고 했다. 술청 앞에 선채로 술을 마실 수 있는 집. 꼭 비싸고 복잡한 안주 따위를 시킬 필요는 없다. 크고 누런 양은 막걸리 잔에 가득 담은 탁주 한 사발. 그렇게 마시는 술을 왕대포 한잔이라고 불렀다. 그 왕대포는 그날 하루가, 아무리 힘들고 지친 게 했더라도, 다 용서가 되는 마법의 물이었다.


저녁 해질 무렵 이런 선술집에서 왕대포라도 한잔 하시고 귀가하신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넉넉하신 표정을 짓곤 하셨다. 마법의 물은 그렇게 대단했다. 어린 나는 어른이 되면 꼭 그 왕대포를 마시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하고 싶은 꿈 중에 하나였다. (어른이 되면 술 마시는 게 꿈인 어린아이... 싹수가 막걸리처럼 노랗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곳에 들어가도 될 성인이 되었을 무렵, 왕대포집을 주위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결국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한 번도 왕대포집에 가 본 적이 없다. 김승호가 출연한 <마부> 같은 흘러간 한국 영화에서나 간혹 봤을 뿐. 대신 포장마차나 생맥주 집을 들락거렸다.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문장도 있지만 그 부정문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다모토리>를 아는지? 이 말을 알면 신세대다. 아재들은 잘 모른다. (고로 나는 아재가 아님으로 아주 잘 안... 다...?) 신촌 연세대, 홍대 등 대학가 근처에 가면 이것을 파는 곳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핫플레이스로 통한다.


일본어 같지만 순우리말인 다모토리도 왕대포처럼 큰 잔에 술을 따라 마시는 것을 말한다. 굳이 왕대포와 구분한다면 왕대포가 막걸리와 어울린다면, 다모토리는 소주를 부어 마시는 것을 말한다. <쏘맥>하고 형태는 비스무리 하지만 다모토리는 소주만 마시는 거다. 큰 잔으로.


다모토리를 파는 곳에서는 노래를 신청해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음악다방처럼 음악 술집? 그러다 흥이 겨우면 떼창도 가능하단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앞쪽에 작은 스테이지도 준비되어 있어 가벼운 춤도 가능하단다. 첫 주문 기본 세팅을 하면 나머지 술이고 안주를, 더 마시고 더 먹고는 셀프... 란다. 이건 내 취향이다.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이라 가보고 싶었다. 어릴 적 장래 희망 중에 하나가 왕대포를 마시게 꿈이었던 내가,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인터넷 서핑을 해보니 경주에는 없고 서울에는 다모토리를 파는 곳이 여러 곳에서 성업 중이었다. 그러나 그건 때문에 서울에 올라갈 수는 없는 노릇. 경주 인근 도시를 찾아보니 부산 경성대 앞이 유명했다. 신분증 지참이란다. (그렇지 어린아이들이 술집을 출입하면 안 되지, 그럼) 오우케이. 혼자 가기는 뭐해서 가까운 후배에게 카톡을 날렸다. 


‘다모토리라고 알지?’  

-‘옙’  

‘부산에 유명한 곳이 있다는데 이번 주말에 한번 가자’ 

 -‘... 형님 낮술 했어요?’  

‘아니 왜?’  

-‘거긴 나이 제한 있어요’  

‘우린 술집 가기엔 충분한 나이 아닌가?’  

-‘아뇨. 형님 나이가 너무 많아요’  

‘뭔 소리?’  

-‘보통 다모토리 파는 집에서는 민증 까서 30살 이상은 출입 금해요. 그곳에서 술 먹기엔 형님이 너무...’


30세 이상은... 후배의 말이다. 사실여부는 몰라도 여튼 그랬다. 왕대포 집은 너무 어려서 가보고 못했고, 다모토리 집은 너무 늙어서 못 들어간단다. 인생에도 다 때가 있다. 삶의 꽃도 필 때가 있고 질 때가 있다. 겨울이 길어서 혹은 잦은 비로 또는 이런저런 이유로 만개(滿開)의 시간이 짧은 꽃은, 웃는 날이 적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내 웃음도 적다. 그리고 그렇게 회한의 맘으로 시들어 버린다. 인생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 문구만으로는 좀 애매하다. 출입 불가인이 미성년자인지, 아재인지... 어쨌든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무리 부정해도, 난 아재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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