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는 천국이고, 쓰기는 지옥이다

머리는 장소를 기억하고, 가슴은 사람을 기억한다

by 장영철 Francis

며칠 전 코로나로 멈칫했던 사진 출사를, 몇 년 만에 협회 작가들과 다녀왔다. 청송 주산지와 백석탄 계곡 등이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번잡스러웠다. 터벅터벅 산길을 걷는 데 7~8년 전, 초등학생이었던 아들과의 추억이 떠올라 미소가 절로 났다.


그때는 가을이었다. 호기심에 머리를 붉게 염색한 아들이 내 뒷짐 진 손을 잡고 따라오는데 지나가던 행인이 농을 던져 아들이 당황해하던 기억. “아이고, 커다란 붉은 낙엽이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네...”


추억. 몇 년을 흐른 뒤 돌아보면 안다. 머리는 장소를 기억하고, 가슴은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을. 그리고 머리로 기억한 그 장소는 해가 갈수록 흐려지지만 가슴으로 기억한 추억은 날이 갈수록 더 생생해진다는 것을.


지금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또 다른 기억이 될 것이다. 산다는 것은 이렇게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어떤 추억은 행복으로 다가 오지만 또 어떤 추억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면서.


얼마 전엔 황성공원 소나무 숲길에 가지치기된 상한 가지들과 바란 잎들이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푸른 나무를 유지하기 위해 상하고 바란 것을 쳐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삶의 상한 가지와 바란 잎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새벽마다 그 길을 걸을 때마다 가슴으로 맥문동 피던 그 찬란한 시절을 떠올리며 긴 한숨을 내 쉰다. (삶이 왜 이다지도 척박한 지...) 되 뇌이며.


분명 언젠가는 변하고 끝날 것이다. 그때 돌아보면 그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렇다고 미리 힘들어할 필요는 없다. 슬프고 애달프고 기쁘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내 영역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뭔가를 망각하기 위해 혹은 어떤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아니 자유롭지 못한 내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싶어서 나는 책을 집어 들었고 글을 썼다. 스냅사진을 찍듯이, 여행하듯이, 성찰하고 기도하듯이... 일상으로부터의 이탈하거나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 그 자체를 그리려고 노력했다. 글을 쓸 때 사각거리며 나는 연필 소리는, 몸이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였다.


글쓰기는 내가 살면서 모르던 것을 새롭게 알게 해 주기보다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환기시켜 주었다. 그것은 내게 위로와 힘이 되었고 나는 그 사소한 행위로 위안받고 살아남아야 될 이유를 찾곤 했다.


나는 이제 곧 시간을,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볼 계획이다. 연차든 병가든 아님은 뭐든... 이 기간 동안 어디론가 떠날 예정이다. 바리바리 짐을 싸가지고 가야만 떠나는 게 아니다. 내 일상의 모든 것을 잊고 팽팽한 신경을 끊고 어딘가에 꽁꽁 숨어 지낼 거다.


평소엔 꿈도 못 꿀 낮술 보다 더 이른 해장술을 마시면서, 면도도 하지 않을 거다. 낮엔 잠들어 있을 거고 밤엔 깨어 있을 거다. 그리고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않을 거다. 단 한 글자도.


‘읽기는 천국이고 쓰기는 지옥이다’라는 말이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속내를 엿보는 관음의 즐거움(?)이 있다. 글쓴이의 도발적인 상상력과 마주치는 행복과 대면하는 거다. 그래서 읽기가 천국이라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이 연휴 동안 지옥을 멀리하고 천국 문 언저리에서 어슬렁거릴 거다.


최근에 생전 처음으로 몇 권의 ‘전자책(ebook)'으로 된 소설과 시집을 구입했다. 그것을 열어 볼 노트북과 내 잠행은 시작될 것이다. 전자책과 노트북... 그리고 소맥. 소맥이 필요한 것은 오롯이 시를 읽어 내기 위해서다. 음주 후 소설 읽기는 불가능하지만 술 한 잔 하고 시를 읽으면 활자 하나하나가 내 귓속에 속삭인다.


나 외에는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낮은 목소리로... 천국이 바로 그곳일 것이다,라고.


백석탄 계곡... nd필터를 끼우고 삼각대를 설치한 후... 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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