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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May 13. 2022

마지막 백신

... 이기를 소망한다

보통은 노래에 바이올린 또는 첼로의 조주(助奏)가 딸려 연주되지만, 나는 지금 클라라 주미 강이 바이올린을, 손열음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2중주를 듣고 있다. 독일어권의 예술가곡 리트(Lied) 중에 하나인 <Morgen/내일>이라는 곡이다. 독일의 R.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거다. 


[내일 태양이 다시 빛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는 길 위에서/ 태양을 호흡하는 땅의 한가운데서/ 우리, 행복한 우리를,/ 내일은 다시 결합시켜 주리라/ 그리고 넓고 파도가 푸른 해안으로/ 우리는 조용히 천천히 내려가/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리라/ 그러면 우리 위에 조용한 행복의 침묵이 내려오리라...] 


그런데 가사와는 달리 무대 위 바이올리니스트가 눈물을 참으며 연주하는 게, 나를 먹먹하게 했다. -혹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지만 분명 그녀는 울음을 애써 참고 있었다- 연주회는 2020년 9월 30일 서울 롯데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연주 실황을 녹화해 놓은 것이다. 2020년 가을은... 기억을 더듬어 본다. 


2019년 초 겨울부터 꿈틀 되던 코로나라는 괴물이, 2020년엔 아시아 전역을 휘 젖고 다니던 때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초유의 사태에, 그 문턱에 들어서면서 클라라 주미 강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연주가 끝날 때까지 나도 애써 눈 감고 뜨지 않았다. 


오늘 또 백신을 접종했다. 벌써 몇 번째 인지, 그 수가 가물거린다. 주위에선 더 이상 맞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생각에 거부하지 않았다. 코로나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는, 매일 저녁때마다 만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나로 말미암아 힘들어질 수 있는 사항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의지에서다. 


백신을 맞고 채 30분도 되지 않아, 나는 고전음악 감상 강의실에 앉아 있다. 일종의 나만의 백신 휠링일 수도 있다. 리트가 독일 가곡을 총칭한다면 칸초레(Canzone)는 이탈리아 가곡을, 샹송(Chanson)은 프랑스어로 부르는 세속적인 가곡을 통칭한다.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장르다. 우리도 1970년대엔 가곡의 전성기였다. 박인수, 엄정행, 신영조... 그러나 가요계에 오빠부대가 등장하면서 한국가곡은 쇠퇴기를 걷는다. 마치 ‘달도 차면 기우는 것처럼.’ 


하긴 [고향집 싸리울에 꽃 등불이] 타오르는 풍경이라느니 [산뜻한 초사를 달이 별 함께] 나타는 시어, [뒤뜰에 봉선화 곱게곱게 필적]의 느리고 단순한 가사의 가곡들을 요즘 신세대들이 1도 관심 가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오늘 나는 리트에 꽂혀 시인 뮐러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쓴 연작 곡 <겨울나그네>의 24개 중 몇 개를 골라 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곡들은 결코 제목처럼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절망에 빠진 채 죽을 곳을 찾아 헤매는 처절한 겨울’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라 읊은 셜리의 시를 기억하며 슈베르트 옆을 지켰다. 


그러다 춘망사(春望詞)가 떠올랐다. [꽃잎은 날마다 바람에 지는데 -경주도 지금 이곳저곳에서 낙화가 한창이다- 만날 날은 아득하기만 해요...] 당나라 시대 여류 시인 설도가 쓴 시다. 그 시에 김소월의 스승 김억이 번안하고 김성태가 1945년에 곡을 붙인 가곡이 <동심초>다. 이럴 걸 기억하고 있는 나는, 확실히 뼛속까지 신세대가 아닌 쉰세대다. 하지만 나는 그냥 설도의 시 제목처럼 지긋지긋한 이 코로나의 ‘봄을 잊고(春望이 아닌 春忘) 싶을 뿐이다.’ 


이젠 (2022.05.02부터) 야외에서 마스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코로나로부터 퍼펙트하게 자유로워졌기 때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을 본 듯해 그나마 다행이다. 몇 해 동안 우리 주위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코로나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장미의 계절 5월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내일도 해는 뜰 것이며, 달도 차면 기우는 건 진리다. 


셜리가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았다고 노래했듯이, 봄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봄도  춘망(忘) 사처럼, 코로나니 백신이니 하는 단어들도 우리의 기억에서 잊히기를. 그리고 오늘 백신이 내 생애 마지막 코로나 백신이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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