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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Jun 28. 2022

귀신 이야기

그러나 하나도 안무서운!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제격이다. 하지만 나까지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고 능력도 없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공포(괴기)'에 관한 이런저런 학문적(?) 담론이다.


흔히 인간의 감정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을 공포라고 말한다. 그 공포 중에서도 ‘미지(未知)에 대한 공포’가 최고 최강이다. 공포는 <Horror>라고 영어로 표현하는 데 <Fear>가 정신적 두려움이고 <Terror>가 신체적 두려움이라면, Horror는 ‘정신과 신체’를 포함하는 가장 으뜸이 되는 두려움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무섭고 고통스러울 걸 알면서도 공포물을 일부러 찾아보는 것일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따르면 “의식 안에 있는 자기 조절과 협상하는 자아 <Ego>와, 무의식 속에 제멋대로 하려는 자아 <Id>,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프로이트의 논리를 계승한 라캉이라는 정신분석학자도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말을 어렵게 한다. -식자우환,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참 말이나 글이 어렵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인간에게 있어서 공포는 쾌락과 연동하는 양면성이 있다는 말이다. 더 쉽고 간단히 말하면 인간은 본래 그렇게 생겨 먹었다는 거다. 


서양에서 공포하면 역시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가 원조 쌍두마차다. 그런데 프랑켄슈타인은 좀 들려다 봐야 할 게 몇 가지 있다. 1816년 스위스에 있는 한 여름 별장에서는 몇 명이 모여 재미 삼아 무서운 이야기를 종종 했다고 한다. 그 모임에서 21살의 메리 셜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창작해 낸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그 괴물을 만들어낸 박사의 이름이다.  


이후 버전에 버전이 수 십 년 동안 이어지면서 박사의 이름이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괴물의 이름이 된 것이다. 최초의 작품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가난하게 살다 죽은 시체에서 신체 각 부위를 뜯어다 괴물을 만든다. 일설에 의하면 괴물은 당시 부르주아에게 감히 대항하려는 ‘남루하고 초라한 차림의 프롤레타리아’를 빗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논리를 즐기는 식자들은 드라큘라의 등장을 인간의 감정이 압축과 치환의 형태로 억눌린 욕망 때문이라고 말한다. 말이 어렵다, 쉽게 말하면 그냥 보통 인간들이 느끼는 ‘죽음과 성’에 대한 공포 때문에 ‘흡혈괴물’이 탄생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는 달리 드라큘라는 ‘신흥 부르주아 자본가’를 의미한다고 한다. 기존 사회 질서에 새로 유입해 들어오는 독점 자본가를 말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귀신 이야기를 해보자.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지금 우리가 아는 귀신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의 건국 철학인 유교에서는 귀신을 혹세무민의 교설로 비판했기에 그랬다. 단지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에서 유학자들의 귀신 체험담을 살짝 소개할 뿐이었다. 게다가 몇몇 기록에서 귀신이나 도깨비들이 등장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사악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에게 친숙한 외경의 대상 내지 후손을 도우려는 조상귀신 등이 대부분이었다. 


귀신의 형상도 구체적이지 않았고, ‘기운’에 의해 느껴지는 존재로 등장한다. 게다가 귀신 얼굴의 기와문양인 귀면와(鬼面瓦)와 도깨비 얼굴이 새겨진 대문 문고리, 벼루, 방울 등의 생활 소품은,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우리가 아는 귀신은 언제부터 존재하기 시작한 것일까? 학계의 정설에 의하면 일본 강점기 때, 귀신 문화가 스며들어와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귀신 이야기가 연재되면서부터다. 신문에 무서운 얘기와 함께 그려진 삽화에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처녀귀신 등의 형상이 어정쩡하지만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기지(旣知)의 공포’가 확장되고 ‘미지(未知)의 공포’가 줄어들면서 공포를 쾌락으로 즐길 수 있는, 근대적 대중서사 장르 형성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해방의 격동기를 지나고 한국 전쟁 후, 괴기 서사가 부흥하는 데 그즘 ‘괴기(怪奇)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 처음으로 등재된다. 진정한 공포란 인간 내부에 숨은 욕망에서부터 비롯됨이 강조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대중잡지들이 앞 다투어 괴기 장르를 지속적으로 연재하면서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식민지와 전쟁의 경험으로 얻은 상처를 괴담으로 드러냈으며(<악인 시대> 등) 여성을 귀신으로 본격적으로 치환한다. (<월하의 공동묘지> 등)


1970년대 이후 한국의 공포 · 서사는 눈에 띄게 발전해 <전설의 고향> 같은 TV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이어 1990년대 말 <여고괴담> 시리즈의 성공으로 공포영화가 다시 황금기를 맞는다.


2000년 대 이후 호불호가 갈리지만 ‘5대 공포영화’로 많은 이들이 <장화홍련>, <알 포인트>, <기담>, <불신 지옥>, <웹툰, 예고살인> 혹은 <곡성>을 뽑는다. 소재도 2000년 대 이전보다 엄청나게 다양하고 그 수도 차고 넘친다. 그래서 그런 걸까. 중앙대 심리학과 이재호 교수팀이 실험하고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한국인은 서양 공포영화보다 한국식 공포영화를 더 무서워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귀신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도 무섭지 않은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겐 공포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처녀귀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죽으면 그 영혼은 바로 심판을 받아 지옥이나 연옥 혹은 천국으로 가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상(철전치 원수 등)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있더라도 전능하신 하느님의 심판을 거부하고, 귀신의 형태로 존재할 수 없다고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1990년에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작인 <사랑과 영혼>은 비 그리스도적이라고 교황청의 발표가 있었음-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겐 공포영화의 귀신은, 인간들이 만든 허구인 것이다. 영적인 존재는 바로 하느님, 천사, 인간, 마귀뿐이다. 혹 어둔 골목길에서 긴 머리를 산발한 채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을 만나면, 귀신이라고 놀라지 말고 근처 상갓집 사람이려니 생각하길 바란다. -말은 참 쉽다. 그러나 막상 그런 상황이 되면 놀라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인간(프랑켄슈타인)의 오만이 만든 파국의 결과물인 괴물>-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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