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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넌들낸들 Dec 26. 2022

난 피해자다...

반갑지 않은 전화

나에겐 친아빠라는 사람이 있다.


아이 문화센터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던 길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내가 먼저 거는 법이 없는 연락처


스팸 전화라면 단번에 거절버튼 누르면 되지만

이 전화는 늘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받게 된다.


나에게 어쩌면 가장 부끄러운 사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하지만 진한 핏줄로 이어져

딸 생일은 안 까먹고 전화 오는구나 하며 받게 된다.



 생일이라 전화해 봤다. 잘 지내나? 아픈 데는 없고? 나는 잘 지낸다. 요새 팔이 아파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지금도 병원 가는 길이다.


전화를 받으면 혼자 말을 마구 하신다. 어색해서 더 많이 하신다. 딸이랑 친해지고자 하는 마음은 잘 안다.



아 사진은 잘 보고 있다. 언제 얼굴 보여줄 건데?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난 신랑을 아빠에게 소개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사진을 보내지도 않는다.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는 모양이다.


난 아이를 언제 보여줄 거냐는 물음에 계속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내 귀에 또다시는 듣기 싫은 그 멘트가 들려왔다. 도무지 그 멘트만 들으면 아빠란 사람이 더더욱 용서가 되지 않는다.



난 피해자데이... 니가 애를 키우고 있으면 나중에 아빠 마음 알 거다. 니가 아빠한테 이러면 안 된다.


난 피해자데이...


아빠가 피해자라니... 너무 화가 나서

되지도 않는 말 할 거면 제발 나에게 전화하지 마세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며 화를 냈다.

내 손을 잡고 걸어가던 아이가 놀랬다.

놀란 토끼 눈으로 내 눈치를 살피며 걸어갔다.

아이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너무 나 자신이 창피한데...

아빠는 계속 쓸데없는 소리만 하고 있었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전화를 끊었다.



딸이 되어 아빠를 욕할 수도 없고,

엄마에게 말해서 내 답답한 속 말할 수도 없고,

신랑에게 말하기도 부끄러운 아빠...


결혼 전부터 한 번은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본 착한 신랑

한번 만나면 연락처 받아

주구장창 연락하며 쓸데없는 장인어른 코스프레 할거 같아 엄두가 안 났다.


그 쓸데없는 말


너거 엄마가 먼저 아빠를 배신했다.

너거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다녔고

걸핏하면 밤에 나갔제

미친년이 되니

사람 만들려고 내가 때린 거지

다 널 위해 너거 엄마를 위해 그렇게 산 죄 밖에 없다.

내가 피해자다.


엄마가 피해자지 왜 아빠가 피해자라고 생각해?

무슨 엄마가 바람을 피워?

엄마가 나도 데리고 친구집에 놀러 간가고 엄마

친구 남자친구가 아기 예쁘다고 안아준 모습이 아빠 눈에는 엄마가 바람을 피운 걸로 보인거지...

끝까지 엄마 말은 엄마 친구 말은 믿어주지 않는

이상한 인간은 아빠라고

언젠가 한번 따진 적이 있다.

내가 그렇게 말해도 아빠에게는 여전히

엄마가 가해자이다.


평생 그리 살다 죽어라

하며 등 돌리고 왔다.



엄마 아빠 이혼 후 아빠와 같이 산 한 달,

나에겐 지옥이었다.

웃질 않았다.

행복하지 않았다.

아빠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러 오는 건데도 난 무서웠고

고모집에 날 맡겨놓고 일하러 가면

고모부와 사촌들의 눈치가 보여 편하지 않았다.

그나마 고모가 있어 견딜 수 있었다.


고모집은 시장 끝...

그날은 잊히지 않는다. 그날을 떠올리면 눈물부터 난다.

골목길 저 멀리 끝에 희미하게 엄마처럼 보이는 사람이 보여 난 무작정 달려갔다.

혼자서 달려갔다. 시장 골목 사람이 북적이는데도

내 눈엔 엄마가 보였다.

점점 가까워지자

엄마도 내가 보였나 보다.

앙상해진 엄마는

두 팔을 벌리고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에게 안겨서 제발 엄마랑 살고 싶다고 울었다.

엄마도 날 안고 울었다.

고모가 아무리 잘해줘도 엄마는 엄마다.

엄마는 그날 고모에게 말하고 내 짐을 챙겨 날 데리고 왔다.

그날로 허구한 날 아빠에게 전화가 왔고

아빠는 전화로 꼭 물었다.

"아빠 사랑해? 아빤 널 사랑해. 그런데 엄마 때문에 너랑 헤어진 거야. 아빠 사랑하지?"

"응 아빠 사랑하지?"

어쩔 수 없는 대답을 했다. 사랑한다고 해야 전화를 끊으니까... 그 통화를 아빠는 다 녹음하고 그 녹음테이프를 가지고 있었다.


난 그런 아빠가 지긋지긋했다. 전화로 보고 싶다 사랑한다를 남발하면서 막상 찾아가면 말도 안 걸고 쳐다도 안 봤다.

아마 새엄마 눈치가 보였던 모양이다.

용돈도 새엄마 몰래 주고 나와의 통화도 새엄마 없을 때 몰래했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고 찾아가지도 않으니 엄마에게 전화하고 찾아와 닦달을 한 모양이었다.

한 달에 한번 아빠 집에  가라.

명절에라도 아빠 집에 가라고 엄마가 먼저 권했다.


엄마의 강요에 못 이겨 명절에라도 갔다.

하지만 마음은 계속 엄마와 동생에게 가 있었다.

내가 없어서 동생이 심심할 텐데...

엄만 할머니 집에도 안 가고 혼자 집에 앉아 있을 텐데... 엄만 뭐 할까?

당장 가고 싶어도 명절이라 하룻밤 자야 했다.

그럼 아빠집에서 자느니 큰 댁에서 하룻밤 자겠다며 사촌 오빠와 그 조카들과 있었다.

그게 내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아빠가 재혼하고 아이들을 낳았다. 그 아이들에겐 난 언니, 누나가 아닌 아빠 친구 딸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아빠집에서 편할 수가 없었다.


계속 내 마음이 편하지 않은 만남을 이어왔다.


고3, 수시 1차에 이미 대학에 붙었다.

야자도 안 하고 수능도 안치는 꿀 고3

토요일 학교 마치고 대학에 붙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아빠를 찾아갔다.

아빠는


"대학은 무슨, 수녀나 돼라. 여자한테는 수녀가 젤 좋은 직업이다."


어이가 없었다.

나도 못되지기로 마음먹었다.

딱 한번 10만 원 양육비 주고 그 뒤로 양육비도 안 보내는 아빠, 엄마와 이혼할 때 엄마가 모아논 4천만 원 홀랑 다 가져간 아빠


수시로 찾아가서 용돈이나 받아내자

생각에 자주 찾아갔다.

엄마가 주는 용돈도 넉넉한 편이었지만

친구들과 놀러 가기 전엔 아빠한테 들려 용돈 받고 헤어졌다.

아빠가 원하는 착한 딸의 모습을 장착하고 말이다.

그렇게 고3을 졸업하고 대학 때도 종종 찾아다니다가


아빠가 재혼하고 낳은 딸이 고등학교 진학할 때

갑자기 연락이 왔다.

"네 동생이 고등학교 가는데 어딜 보낼꼬?" 하고 물어보는 게 아닌가...

내가 고등학교 진학할 땐

'실업계 가라. 살림에 보탬이 돼야지.' 했던 인간이...

 "나한테 실업계 가고, 수녀나 되라던 사람이 왜? 그런 걸 물어보는데 수녀나 시켜라."

"내가 그랬나?"

전화를 끊었다.

난 아빠를 찾아가지 않았다.




더 이상 아빠에게 가지 않겠다고


아빠는 엄마를 찾아왔다. 결국 3자 대면을 했다.


그때도 아빠는 엄마를 가해자로 몰고 있었다. 딸에게 이상한 세뇌 교육을 시킨 엄마로 말이다. 그동안 잘 키워준 엄마를 모욕하다니 더 이상 아빠를 용서할 수 없었다.


아빠. 제발 부탁이니

아빠 자식은 새엄마가 낳은 애들만 있다 생각하고

나 잊고 살아라.

난 아빠 잊고 산다.

더 이상 연락하지 말고 만나지 말자.


그러고 헤어졌어도

아빤 일 년에 한 번 내 생일 전화를 한다.


딸 생일 축하한다. 잘 살아라.


제발 이 말만 하길...


그럼 나도 아빠도 건강히 잘 지내세요.

하고 곱게 전화 끊을 텐데...


이렇게 며칠을 속상하게 만든다.







*수녀라는 직업을 욕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오해 말아주세요.


*내 얼굴에 침 뱉기인... 아빠 흉보기...ㅠㅠ

그냥 못난 딸로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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