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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Apr 26. 2022

희망을 위한 실험, 독서

독서사색

“만약 신께서 당신에게 한 가지 능력을 주신다면, 당신은 어떤 능력을 받고 싶습니까?” 기자의 질문에 빌 게이츠는 “책을 빨리 읽는 능력을 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대답했다는데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다.     


“오해 없이 온전히 희망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주세요.”    


댄 토마슬로의 <조금 멀리서 마음의 안부를 묻다>에서 희망에 관한 몇 가지 보편적 오해 중에 ‘희망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감정이다’는 말을 짚었다. 희망은 부정적 감정이나 불확실성이 있어야지 비로소 나타나는 게 긍정적인 감정이라는 것. 제대로 희망이 쑥쑥 크기 위해선 돌부리 같은 걸림돌도 있어야 하고, 뒷목 잡는 좌절이나, 책상을 꽝 치는 실망감부터 있어야 하는 법이라는 거다.     


맞다. 결국 희망을 가진다는 건 어떤 것으로 인해 혹은 어떤 사람이 나를 언젠가는 구하러 올 거라는 현실감 없는 희망 고문이 아니라 내가 긍정적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단단한 믿음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냥 입 벌리고 희망을 쏙 받아먹을 생각부터 한다면 그건 욕심, 내 스스로 부딪혀 작은 성공부터 챙기는 것이 시작이거늘    


윤성근의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에서 각자의 삶이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실험이라는 말에 무척이나 공감했던 게 기억난다.      


“나는 사회운동가가 아니기 때문에 앞에 나서서 이 사회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이론을 제시하거나 설계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건 내 역량 밖이다. 다만 나 스스로를 실험대상으로 삼아 이것저것 해볼 수는 있다. 이건 그저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실험으로 보면 된다. ”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나에게 희망과 꿈을 갖기 위한 일종의 실험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기어이 책을 집어드는 것도 결국 이게 나에게 어떤 희망을 줄지 일말의 기대감 때문에 아니겠는가. 지금 내 눈길이 가 있는 책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주는지, 편견 없이 올곧이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는 말랑말랑한 상태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면 조금만 기운내 더 읽어보고 안되면 그때 손들고 다른 책으로 갈아타는 여유 또한 있는지. 물론 실패해도 좋다. 그 또한 아직은 옅은 희망이므로.     


어떤 대단한 정책이나 사람을 통해 구성원 모두가 만족스럽고 충만한 삶을 사는 시대는 일찌감치 갔다. 우리는 각자 다른 소우주이며 이렇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각자의 속도를 가지고 리듬을 타며 살아가고 있기에. 더군다나 단순히 먹고사니즘에서  나아가 나와 그리고 우리를 위한 자신의 쓰임에 대해 목적이 명료하다면 희망을 위한 우리의 실험은 더욱 의미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만 더불어 산다면 그야말로 좋은 실험과 기회, 경험들이 모인 희망이 샘솟는 공동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의 독서는 계속되어야 한다. 부디 선입견 없이 온전히 희망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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