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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Aug 02. 2022

매일이 절정일 수는 없지만

독서사색

지난 일요일 저녁 8년 만에 전 직장 동료를 만났다. 8시간 실습하고 눈에 쾡함이 그득한 나를 두고 안쓰러운 듯이 말했다. “뭘 딴다고? 언닌 예전부터 사서 고생하는 스타일이었어.” 나도 안다. 편하게 있는 걸 몸서리치게 싫어하며 뭔가를 끊임없이 분주하게 하는 자체에 마음의 큰 위안을 얻는 걸...이어지는 나의 독백 ’이 놈의 종종대는 건 죽어야 끝나. 사람은 고쳐쓰면 탈나지. ‘


2시간 수다를 끝내고 여주에 사는 고모가 애써 기른 복숭아 몇 알과 통영 곱창김을 바리바리 싸서 손에 쥐어줬더만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행복해하는 해맑은 친구를 직면했다. 예전에도 지금도 작은 것에 기뻐하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너는 늘 그렇게 매일을 황금기고 절정같이 사는구나.

 

절정, 꽃이 핀 것...거칠고 모진 겨울을 끝내 이겨내고 앙상한 가지를 뚫고 영롱하게 핀 꽃들을 보면 그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무릇 사람의 삶도 비슷하지 않나. 인간사 자연스런 흐름 중 모두 인생의 황금기가 있다고 하는데, 아직 절정을 맞지 않은 내게 문득 든 생각 하나. 아마도 흐릿한 과거의 회상이나 아련한 추억, 그리고 미래의 작고 소중한 희망이 어우러지는 어느 여름날 매서운 소나기를 뒤로 한 반짝 무지개 같은 거가 아닐까. 매일 작은 무지개 하나씩 그려가며 살아가는 것 이 또한 능력이고 재주다 싶다.

 

매일이 무지개빛 황금기라는 거리감 가득한 생각에 더해 아득함까지 밀려온 어제, 1시간이나 꽤나 긴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타고 온 수인선 19.9km보다도 더 길고 길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기 위한 기회를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은 죽으면 어차피 다들 땅으로 돌아가는 회귀의 일환이겠지만 그 전까진 내 손으로는 도저히 끝낼 수 없어 이 또한 묵묵하게 견디며 지나가야 하는 짙고 먼 길인 것 같더라.


증권사 때려치우고 35세 나이에 뒤늦게 시작한 그림에 가지고 있는 예술혼 전부를 쏟아부은 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사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그는 삶의 벼랑 끝에 있었다고 한다. 또한 폐렴으로 죽은 딸의 소식을 들었고, 화가로 성공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자책하며, 죽음까지도 생각했다고 한다.


어쩌면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했든 맞이하지 않았든 아직 기다리든 간에 스스로 잘 다독이면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하는, 그래서 고갱님을 봐서라도 아직 우리에게 절정이 오지 않은 것에 대해 특별히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기. 최고의 오르가즘 후 꺾이고 져버린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보단 그래도 살날이 아직 많으니,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진득하게 한 발 한 발 내딛어야겠다 다짐을 해본다.


“작가는 우물과 비슷해요. 우물은 착각들만큼이나 여러 종류가 있죠. 중요한 건 우물에 깨끗한 물이 있는 거고 그러자면 우물이 마르도록 물을 다 퍼내고 다시 차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규칙적인 양을 퍼내는 게 낫습니다.”

 

하루 200 원고지 20매씩 꾸준히 쓴다는 하루키의  말을 곱씹어보면, 깨끗하게 다시 차오르기만을 바라는 우물은 아마도 우리가 그저 바라기만 하는 미지의 인생의 황금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매일을 정량의 우물파기처럼 이번 달은 여름 휴가 대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기회를 주는 독서로 일정량의  톺아보기를 해야겠다.


책장을 펼치면 그때부터는 오로지 나 혼자만 남게 되니까. 세상의 복잡다단한 것들에 휘둘리던 나를 위로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셈이니 이 또한 그토록 바라던 나만의 휴가가 아니고 무엇이더냐. 법륜스님의 말씀처럼 아직 오지 않은 내 절정을 넋놓고 기다릴 게 아니라 내 황금기는 바로 주응식의 <나는 왜 불안한가>를 보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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