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한다 Aug 12. 2022

헐렁하게 느슨하게

독서사색

지인이 귀 주위가 찌릿하고 목까지 전이돼 이비인후과를 갔더니만, 외이염이란 판정을 받았단다. 평소 귀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는데 이상하다 했더니 의사선생님 왈, “스트레스가 쌓이면 가장 약한 부분부터 반응이 옵니다. 먼저 마음을 다스리세요.” 내가 본 그녀는 완벽주의자다. 외모는 모든 것을 다 받아줄 수 있을 만큼 너그러운 자태가 엿보이지만, 겪어본 봐로선 일에 관해서는 얄짤없는 철두철미함을 가졌다. 그녀를 포함해 완벽주의자들은 대체적으로 스트레스에 무척 약하다.

 

안정희의 <진작 아이한테 이렇게 했더라면>을 보니 완벽주의자들은 프로쿠루스테스의 침대와 같다했다. 이름도 참 요상하고 어려운 프로쿠루스테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강도인데 지나가는 사람을 납치해 자신의 침대에 눕힌 다음 침대보다 크면 삐져나온 만큼 잘라버리고 침대보다 작으면 침대 가장자리까지 다리를 늘려 죽인다고 한다. 참 섬뜩하지만 그만큼 자기만의 기준과 잣대가 있다. 그렇게 세상은 돌아가야 한다는 굳은 심지까지 갖고 있고

 

예전에 회사 근처에서 만난 후배의 아들은 초등학교 저학년인데 벌써부터 말만 하면  그래야 하는데? 입에 달고 산다고 했다.  조그만 아이도 자기만의 납득이 될만한 정확한 룰이라는  갖고 있는 거다. 그러고 보면 나이를 불문하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나의 왜와 타인의 왜가 일치하지 않는  당연한 것인데,  기준대로  이치에 맞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속상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자체가 어찌 보면 웃기는 상황이 아닌가 싶기도 

 

남 말할 것도 없이 회사 일로 식욕이 현저히 떨어지고 여기저기에 염증이 생기는 요즘 나는 프로크루스테스고 뭐고 완벽 따윈 추구하고 싶은 생각 자체도 아예 없다 평소 표방하는 나의 쿨함은 작금의 상황에서 비춰보자면 가짜 아닐런지. 그러니 결국 몸이 버텨내지 못하지. 하지현의 <정신과 의사의 서재>에서 보면 폭력의 배후에는 상처와 무기력, 두려움이 있고 마음이 튼튼한 사람들은 굳이 타인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감정을 해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타인을 빼고 ‘자기 자신’으로 넣어본다. 결국 마음이 온전히 편치 못하니 내 자신을 못살게 굴면서 나쁜 감정을 덜어내려고 애쓰며, 종종 오는 무력함에 대한 자기 감정을 회피하는 일종의 방어기제까지.

 

그렇다고 오호라, 총체적 난국일세 하고 남일이듯 덮어놓고 곪게 내버려두면 되겠는가. 스트레스와 그로 인해 오는 불안을 일정하게 관리하고 일상적으로 조절하기 위해서 당장 시작하자. 곰곰이 생각해보니 혼란스럽고 심정적으로 압박을 받는 상황 속에서도 기운을 주고 목적의식을 되살려주는 나만의 단어를 찾자면 뭐니뭐니해도 ‘책’. 책만 생각하면 뿌옇고 부유함이 가득한 내 머리 속에 홍해 바다가 갈라지듯 선명한 길이 보이고 상쾌함마저 드는 건 참 불행 중 다행

 

패자는 목표를 설계하고 승자는 시스템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시스템이 목표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이 자연스럽게 그 시스템에 따라 실행할 수 있어야지 성공으로 이끈다고 했다. 그래 이번 주말 목표는 헐렁하게 느슨하게 독서. 이를 위한 나만의 시스템 뭐가 있을까. 엎드려서 스테비아 토마토 몇 알 먹으면서 읽는 책이 그렇게 맛있을 수밖에 없더라고. 귀가해서 얼른 냉장고에 있는 토마토 꺼내 찬물에 씻어놔야겠다. 눈에 힘 좀 빼고 목차만 훑어봐고 읽고 싶은 부분만 보던지 내 멋대로. 일단 책을 먼저 집어들고 내 내부에 감춰 있는 자발성과 의욕을 살며시 꺼내어 읽어보자. 지금 당장 눈에 띄는 전홍진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바로 너다!

작가의 이전글 켰다 껐다 하는 스위치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