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1장 학생시절

by 조각사

"띠리리리."

어김없이 울리는 알람 소리에 아침을 맞이한다. 씻기도 전에 컴퓨터 앞에 앉아 본능적으로 게임을 켠다. 학교에 가기 전, 하루를 버틸 도파민을 미리 채워 넣는 나만의 의식이다.

"일찍 일어났으면 예습 복습을 해야지!"

엄마의 잔소리가 배경음악처럼 들려온다. 그 말들이 내 도파민을 억누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게임을 향한 열망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등교 시간이 임박하면 시계를 힐끔거리며 '타임어택' 하듯 게임에 몰입했다. 엄마는 "쟤가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걱정하셨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게임을 통해 '계획'과 '꼼꼼함'을 배웠다. 타임어택을 성공하려면 그 어떤 변수도 없이 완벽하게 움직여야 하니까. 누군가는 게임 중독자의 합리화라고 비웃을지 몰라도, 사람은 어떤 행위 속에서든 배움을 얻기 마련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컴퓨터를 끄며 등교하지만, 머릿속은 이미 하교 후의 PC방을 그리고 있다.

주변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로 게임을 좋아했던 내가, 지금은 글을 쓸 때가 아니면 컴퓨터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역시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딱 맞다.

아, 그리고 글에서 느껴지겠지만 게임할 시간도 부족했기에 공부와 운동은 깨끗하게 포기했다.

나의 학창 시절 체형은 '뚱뚱'은 아니었지만 '뚱통'이었다.

"뚱뚱과 통통의 중간, 그 어디쯤."


학교에서는 거의 졸면서 시간을 보냈고, 공부보다는 먹으러 학교에 다녔다는 편이 옳다. 매점과 학교 뒤 분식집을 출석 체크하듯 드나들었으니 말이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라 용돈은 주말마다 닭갈비집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춘천은 닭갈비의 도시가 아니던가!

단체 손님을 태운 대형 버스가 들어오면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다. 허리가 끊어질 듯 힘들어도 알바비를 받을 때의 뿌듯함 하나로 다음 주를 기약하곤 했다.

하교 종이 울리면 누구보다 빠르게 PC방으로 달려갔다.

"게임하듯 공부했으면 서울대에 갔을 것"이라는 엄마의 말, 부정하지 않는다.

반면, "어차피 총량이 정해져 있다"며 오히려 실컷 하라고 부추기셨던 아빠.

결국 나는 그 총량을 다 채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서로 다른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 준 부모님 덕분에 삶의 균형이 맞춰진 게 아닐까 싶다.


하루치 도파민 총량을 채우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간다. 엄마는 "또 담배 냄새난다"며 질색하셨다.

(그 시절엔 PC방 흡연이 가능했다.)

엄마의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또다시 컴퓨터를 켠다. 이 정도면 마약보다 더한 중독이었다.

이 정도면 무슨 게임인지 궁금하실 수도 있겠다.

스타크래프트나 FPS처럼 타고난 재능이 필요한 게임은 피했다. 재능도 없고 경쟁도 싫어했다.

반면 무언가 남기는 걸 좋아하는 성격 탓에, 순수하게 시간을 쏟아 육성하는 RPG 게임을 선호했다.

부유한 친구들은 게임에서도 '보법'이 달랐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다 돈으로 해결했으니까.

그들을 이길 수 있는 나의 유일한 무기는 '인내'였다.

묵묵히 캐릭터를 키워내 인정받는 그 느낌이 좋았다.

나의 학창 시절 기억은 온통 게임뿐이다.

후회하냐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단언컨대 후회하지 않는다.

지나고 보니 그 시절이야말로 '낭만'의 시절이었다. 무엇 하나 열심히 하기 싫어하던 내가 유일하게 하나에 매진했던 기억, 알바비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먹고 썼던 기억. 현재로서는 말도 안 되는 그 무모함들이 바로 낭만이 아닐까.


시간은 각 시절마다 퀘스트처럼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을 던져주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고들 말한다.

나는 학생이었기에, 그토록 치열하게 게임이라는 퀘스트를 수행했던 게 아닐까.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엄마는 딱 내 학창 시절에만 할 수 있는 엄마로서의 퀘스트, '잔소리'를 하셨던 건 아닐까 싶다.

아빠는 엄마가 이미 잔소리를 하니, 오히려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숨통을 틔워주신 것일 테고.

나의 철없던 시절이 나에게 낭만이었듯,

잔소리하고 감싸주던 그 시절은 부모님에게도 다시 오지 않을 ‘낭만’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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