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헬스를 처음 마주했던 건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다. 갑작스레 불어난 체중 때문에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집 근처에는 마땅한 곳이 없었다. 결국 뙤약볕을 뚫고 20분을 걸어 동네에서 가장 큰 신설 헬스장에 등록했다. 혼자였다면 금세 포기했을 테지만, 다행히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였다. 둘 다 여자친구가 없었던 덕분에 우리는 매일같이 헬스장으로 출근 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유튜브나 SNS로 운동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폴더폰이 전부였던 그때, 우리에게 인터넷은 오로지 게임을 위한 도구였다.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고 핑계를 쓰지만, 백번 찾아봤어야 한다 못한 거랑 안 한 거랑은 다르니까 말이다.
우리는 PT를 받을 여유도 없어서, 그저 몸 좋은 형들의 동작을 힐끔거리며 어깨너머로 자세를 흉내 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해 보일지 몰라도, 그 시절 우리만의 방식이었다.
성실함 덕분인지 헬스장 트레이너 형들과도 금세 가까워졌다. 우리는 우리끼리 형들에게 '종국이 형', '에릭 형', '어중간 형' 같은 별명을 붙여 부르곤 했다. 형들은 그런 우리를 친동생처럼 아껴주며 정성껏 자세를 잡아주었다. “우리가 낑낑대는 게 즐거우셨을지도?”
물론 장난이다.
우리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택한 보답은 '마감 청소'였다. 매일은 못 도와드려도 성실하게 임했다. 기구를 정리하고 바닥을 닦으며 보냈던 그 시간들은, 단순히 운동 이상의 인간의 도리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당시에 나에게 너무 잘했다며 칭찬할만하다. 받기만 하는 사람은 언젠가 그걸 권리처럼 바뀌어서 미운털 박히기 마련이다.
방학이 되자 헬스에 대한 애정은 집착에 가까워졌다. 알바시간을 조절하면서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하루 두 번씩 운동했고, 부위별로 꼼꼼하게 운동 일지도 작성했다. 단백질 보충제조차 귀하던 시절, 유일한 희망은 계란뿐이었다. 집 근처 하림 대리점에서 사 온 생닭가슴살은 너무 비려 한 번 먹고 포기했지만, 대신 양계장을 차릴 기세로 계란을 먹어 치웠다.
거울 속에서 서서히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삶의 가장 큰 기폭제가 되었다. 컴퓨터 속 네모난 세상이 전부였던 아이가, 자신의 몸을 가꾸며 현실의 성취감을 맛보기 시작한 것이다.
혹시라도 자존감이 낮은 분이 있다면 헬스가 아니더라도 운동 하나는 꾸준히 해보셔라.
매일매일 주는 성취감은 이로 말할 수 없는 긍정의 에너지를 준다.
부모님의 걱정거리였던 게임광 소년은 어느새 부모님의 자랑이 되어 있었다. 헬스는 나에게 단순히 근육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무채색이었던 내 세상에 처음으로 선명한 색깔을 입혀준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