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트라우마
트라우마, 나를 지키는 또 다른 이름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며 즐거워할 때, 나는 물가에 서는 것조차 힘겨워한다.
남들이 “저 정도도 못 해?”라고 의아해할 만큼 나의 물 공포증은 유별나다.
처음부터 물이 무서웠던 건 아니다.
네발자전거를 타던 어린 시절,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다가 논밭 옆 수로에 몸을 숨긴 것이 화근이었다.
하필이면 그때가 수로의 물이 빠지는 시간이었고, 나는 순식간에 거센 물살에 휩쓸려 내려갔다. 날카로운 못과 철사가 옷과 허벅지를 휘감아준 덕분에 간신히 멈춰 설 수 있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어린 나의 모습에 어머니는 아직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하신다.
그날의 사고는 내 몸에 흉터를, 마음에 깊은 공포를 남겼다.
어떻게든 이겨내 보려 수영 강습도 받아봤지만 역부족이었다.
호흡을 배우려 얼굴을 물에 담그는 순간 심장이 터질 듯 뛰어, 도망치듯 수영장을 빠져나오곤 했다.
자연스레 나는 여름을 기피하게 되었다.
물가에서의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점점 위축되었고, 매년 여름이면 물 앞에서 꼼짝 못 하는 나를 “하자 있는 사람”이라 자책하며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그렇게 나는 물을 이겨내는 것을 포기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포기하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의 감정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괜찮아, 나도 너야.”
그 목소리는 마치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온 듯 따뜻했다. 그때 깨달았다. 지독한 트라우마는 나를 괴롭히는 적이 아니라, 다시는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하려던 본능, 즉 나를 지키려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었음을.
나를 이해하고 나니 타인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내가 물을 무서워하듯 누군가는 높은 곳을, 또 누군가는 좁은 공간을 두려워할 수 있다.
트라우마는 누구에게나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 나에게 트라우마는 억지로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나’이자, 나와 다른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