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괜찮으니까 솔직히 말해봐
2 돈이 막 벌리는데 남편이 정신을 못 차리네
아... 정말 이렇게 한심한 경우가 다 있나? 차 사고가 나도 보험 없이 운전하는 거랑 뭐가 다르겠나? 그렇게 자신만 믿으라고 호언장담하더니, 이게 뭐냐고 했다. 결국 공동으로 배를 산 미용실 사장님께 물건값으로 빼놓았던 현금을 드려야 했다. 뭔가 허무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하루 종일 씩씩대며 욕하고 난리가 났다. 배 사고 처리 비용이랑 미용실 사장님께 드려야 할 돈, 형들도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는 게 너무 화가 났다고 했다. 사고는 본인 때문에 났는데, 이렇게 모른 척하는 형들이 너무 원망스럽다고 했다.
결국 큰형이 낚싯줄을 모터에 꼬이게 해서 사고가 난 일이었는데, 둘째 형이랑 크게 다퉜다고 했다. 둘째 형은 "낚싯줄이 꼬였을 때 그 자리에서 모터를 들어 줄을 푼 건 네 선택이다. 그 선택 때문에 사고가 났고, 우리 모두 다치거나 죽을 뻔했다. 초보자가 잘못된 선택을 해서 이런 결과가 생긴 거다. 왜 그 생각은 못하냐?"라고 했다고 했다. 정말 억울하고 화가 나서 방방 뛰며 난리가 났다. 이제는 형들이랑 좋은 일 있을 때 같이 하지 않겠다는 둥, 놀 땐 같이 놀고 문제 생기면 빠진다는 둥 말이 많앗다.
이 상황에서 남편은 내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느꼈다. 아니면 나에게까지 이 상황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는데, 그 돈이 그냥 공중으로 사라진 기분이었는데, 하지만 남편은 억울하고 화가 나서 내 입장은 고려할 여유가 없어 보였다.
너무 시끄럽고 난리인 상황에 나는 끼고 싶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이렇게 바보 같은 일로 몇만 불이 그냥 사라지는데, 내가 손끝으로 발끝으로 모아 온 삶의 에너지가 스르륵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남편도 속상하겠지 자기 잘못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저기서 혼나고 있으니 나까지 굳이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냐고 생각했다. 그래, 아무도 다치지 않고 배만 망가진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놈의 배 때문에 시간도 계속 다 날리고 이제 일이나 집중하겠지 이 일을 통해 배운 게 있을 테니 큰 레슨비 썼다고 생각했다.
일상으로 돌아와 계속 일만 하던 중, 주말 마켓에서 장사가 워낙 잘되다 보니 옆에서 수제초를 팔던 호주 아줌마가 제안을 해왔다. 본인이 골드코스트 시티 쇼핑센터에서 수제초를 판매하는 스툴을 운영하는데, 내가 파는 네일 스티커를 같이 팔 수 있게 납품해 달라는 제안이었다. 우연히 도매 문의를 받은 거였다.
남편과 상의 끝에 납품하기로 결정했다. 그 아줌마가 운영하는 스툴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서퍼스 파라다이스 앞에 있는 쇼핑센터 스툴이었고, 장사가 엄청 잘됐다고 했다. 그래서 골드코스트는 관광지다 보니, 관광객을 위해 골드코스트를 상징하는 꽃을 디물건이서 제작해 납품했는데, 물건이 잘 팔려서 많이 가져가셨다. 소매에서 도매로 확장된 새로운 판매 루트라서 정말 뿌듯했다.
그 무렵, 큰집에 남편이랑 나만 남아 있으니 적적했다. 남편이 매일 일만 해서 힘들다는 나를 위해 엄마를 잠시 모셔오자고 했다. 엄마와는 대화해 본 적도 많이 없고 시간을 보낸 추억이 딱히 없어서 엄마에 대한 큰 그리움은 없었지만, 그래도 내 편이 온다는 생각에 좋았다. 엄마는 우리 집과 시어머니 집을 오가며 지내셨는데, 두 분이 친구처럼 붙어 지내시다가도 가끔 다투기도 하셨다. 다행히 엄마 나이가 훨씬 많으셔서 시어머니가 어렵게 대하는 게 느껴져서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고 생각했다. 가끔 속상하시다 컴플레인하시는 시어머니의 모습도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엄마가 일 이년에 한 번씩 호주에 바람 쐬러 오시는 시간을 즐기시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엄마가 돌아가시자마자 절친 와니에게 비행기 티켓을 선물해 주자는 제안을 받았다. 정말 뛸 듯이 기뻤다. 와니에게 전화했더니 바로 짐 싸서 온다고 했다고 했다. 와니를 보자마자 모든 서운함과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었다. 거의 매일 와니 방에 붙어 있었고, 침대에서 둘이 키득거리면 남편은 부웅 날아와 우리 사이에 끼어들곤 했다.
몇 번이고 그런 일이 반복되자 어느 날은 남편에게 조용히 말했었다. 물론 결혼 전부터 알던 친구지만, 너무 그렇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그런데 남편은 웃으며 "뭐 어떠냐"면서 넘기기 일쑤였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너무 취해서 도저히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나를 불러 세웠다. 내 얼굴을 똑바로 보라며 양쪽 손을 잡고 말해보라고 했다. 무슨 말을 하냐고 물었더니, "너 와니랑 무슨 사이야? 너 레즈비언이야?"라고 했다.
뭐? 뭐라고? 이게 무슨 소리냐고 했다(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남편은 계속 "괜찮으니까 솔직히 말해봐"라고 했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나 여자 안 좋아해!!!!"
"내가 너랑 몇 년을 살면서 네가 그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그런 눈빛도 본 적이 없다고. 그런데 너 진짜 와니 좋아하지?"라고 재파 확인한다
정말 어이가 없어서 "꺼져! 잠이나 자!"라고 소리쳤다.
다음 날 술이 깨고 나서 물어봤다.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했냐고. 남편은 자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고 했다.
우리가 척하면 척이고 너무 본인이 끼어들기 어려운 이야기만 하고 즐거워 보여서 우리 둘 사이를 의심하게 되었고, 갈라놓으려고 자꾸 가운데에 끼고 싶었다고 했다고 했다. 그때 남편이 게이 커플을 많이 경험해 봐서 그런 의심을 하게 되었다는 말에 정말 충격을 받았다. 이런 게 문화차이구나 문화 충격이 엄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