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지금은 질러야 할 때야
2 돈이 막 벌리는데 남편이 정신을 못 차리네?
도매처가 생기고 난 뒤, 나는 비즈니스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책임감이 생기면서 제품의 종류나 물류와 같은 생각할 거리가 점점 늘어났다. 나에게 이러한 변화를 가져다준 옆집 아줌마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그분은 나이가 많은 아줌마셨는데, 마켓에서 바로 옆에서 장사를 함께 하셨던 분이시라 손님이 별로 없어지는 마켓 닫기 한 시간 정도 토론처럼 진행되는 수다가 가능했었다.
아줌마는 비즈니스 이야기를 비롯해 다양한 주제를 재밌게 이야기해 주셨다. 너무 뚱뚱해 위절제술을 받으셨다는 이야기부터, 부모님을 따라 호주에 이민 오신 이야기, 그리고 남자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했다. 영어가 서툴렀던 나를 배려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시던 아줌마와의 대화는 마켓에 나가는 즐거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그 무렵부터 아줌마는 카지노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어느 날은 “얼마 전에 포키머신에서 잭팟이 터져서 4만 불을 땄는데, 다음날 안전하게 돈을 옮기려고 이따만큼 큰 가방을 들고 갔더니 4만불 현금이 손바닥만 하더라”며 웃음꽃을 피우셨다.
나는 그저 기계에서 숫자가 돌아가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잭팟이 터진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재밌게만 들었었다.
시티에 수제초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에 네일판매 스툴을 운영하게 되면서, 아줌마는 장사가 훨씬 잘되는 그곳에서 상주해 계시고, 마켓 일은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자친구에게 맡기시는 일이 많아졌다. 그 남자친구는 시력이 좋지 않으셨고, 체격도 엄청나게 커서 숨 쉬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그럼에도 언제나 양쪽 귀까지 큰 미소를 지으실줄 아시는 분이시라, 나는 그분을 크게 불편하게 느끼지 않고 좋으신 분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비만이셔서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하셨고, 발도 너무 심하게 부으셔서 신발도 제대로 못 신으시는 분이시라 일하시기 너무 불편해 보이셨다. 마켓이 끝나면 셔터 문을 닫고 귀퉁이에 자물쇠를 채워야 하는데, 쭈그려 않는 자세가 불가능하시다 보니 마켓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물웅덩이가 있을 때도 온몸이 젖도록 엎드려서 자물쇠를 채우셔야 했다. 그분을 위해 자물쇠를 채워드리는 일은 내가 거의 도맡았다.
그즈음 아줌마는 물건값을 나중에 주겠다고 하면서 물건만 먼저 달라고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가 나에게 아줌마가 물건값을 지급했냐고 물으셨다. 나는 받지 못했다고 답했고, 아줌마는 앞뒤가 안 맞는 말을 자주 하셨던 게 기억이 났다. 이후 그 남자친 그 분이 나에게 본인이 뭔가 오해했던 거라면서 사과하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뭔가 불안했다. 아저씨가 뭔가 불안해 보였다. 그 무렵 지불하지 않고 가져간 물건값이 몇 천 불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의 따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저씨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너무너무 놀랐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아줌마가 아저씨의 평생 모은 연금을 가져갔다는 사실이었다.
심 지 어 아줌마가 아저씨의 그 연금을 우리 비즈니스에 투자하겠다고 했다고, 우리는 전혀 들은 바가 없었고, 아줌마에게 받을 돈도 많아 충격이 컸다.
알고 보니 아줌마는 장사가 갑자기 잘되서 현금이 많아지자 예전에 끊었던 도박을 다시 시작하셨고, 카지노에 빠져 있었다. 결국 돈을 모두 잃고, 쇼핑센터의 렌트비와 물건값을 메우기 위해 아저씨에게 자꾸 돈을 요구했다고. 아저씨는 어떤 투자를 하고 어떤 비즈니스인지 우리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는데 아줌마는 이리저리 말이 많아지면 똑똑하고 음흉한 저 어린 동양비즈니스맨들이 본인들을 비즈니스에서 밀어낼 거라며 말을 막았다고 했다.
그리고 주말마다 마켓에 나와서 팔던 수제초가 아저씨 차 트렁크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왔다고 했다. 물건이 팔렸다고 매출로 잡았던 것들은 그냥 아저씨가 구매했던 거였다고. 본인이 뚱뚱하고 못생겨서 사람들이 초를 많이 안 사가서 장사가 안되었다면서 본인돈으로 잔뜩 사가셨다고 했다. 따님이 그 뭉개진 초를 트렁크에서 발견하고 너무너무 슬퍼서 오열하셨다고 하시는데 나도 정말 너무너무 속상하고 슬퍼서 많이 힘들었다. 아. 세상에 저런 사람이 있구나 착한 사람이 이렇게 당하는구나 재밌다고 좋아했던 그 호주 아주머니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너무 충격적이었다.
결국 그 아줌마는 시티의 스툴도 렌트비가 밀려서 쫓겨나게 되시고 연락이 없어지셨다. 물건값은 못 받았지만 스툴에 있는 아주 조금 남아있는 물건들과 그 스툴을 넘겨주신다고 하고는 나에게 좋은 기회니까 고마워하라는 마지막 문자와 함께 그냥 사라지셨다.
어쩌다 보니 쇼핑센터 스툴을 이어받게 되었고, 주말뿐 아니라 매일 운영해야 하는 판매처가 생겼다. 나는 다시 직원을 뽑고 스툴을 예쁘게 꾸미고, 관광객을 위한 선물 세트를 기획해 매출을 올리기 시작했다. 관광객 상대로 기획하는 세트는 만들 때마다 예상을 적중했고, 매출이 크게 올랐다. 남편은 이를 보며 비즈니스를 확장하자고 지금은 질러야 해라고 했지만, 나는 천천히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은 일을 크게 벌였고, 다른 퀸즐랜드주뿐만 아니고 다른 주에서 마켓을 열 수 있도록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