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돈이 막 벌리는데 남편이 정신을 못차리네?
남편이 친구들과 놀러 간 어느 날, 와니와 나 둘이 집에 있었다. 갑자기 와니가 카지노에 가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호주에서 지내면서 카지노나 포키머신으로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카지노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있었다. 그런데 그날 와니는 뭔가 감이 좋다 했고, 나도 모르게 "좋아, 가자!"라며 호기롭게 카지노로 향했다. 남편이나 언니 오빠를 따라 카지노에 가본 적은 있지만, 단둘이는 처음이라서 뭔가 두근거리고 긴장되었다.
우리는 각자 현금 300불씩만 가져가기로 약속하고 출발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운전하다가 주차하면서 차를 살짝 긁었다. 순간 심장이 더 요동쳤지만, 이미 여기까지 온 김에 카지노 안으로 돌진했다.와니랑 나는 자신있게 신분증을 내밀며 반짝반짝 정신없는 카지노 입구에 들어섰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각자 현금을 여러가지 단위의 칩으로 바꾸고 카지노에 있는 모든 게임을 다 해보자고 약속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테이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룰렛 테이블이었다. 딜러가 조그만 공을 0부터 36까지 숫자가 적혀있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통에 넣고, 플레이어가 선택한 번호에 공이 들어가면 베팅한 위치와 방식에 따라 정해진 배당만큼 칩이 지급되는 게임이다. 그 당시는 룰을 전혀 몰라서 슬쩍 다른사람이 하는것을 보았다. 여러가지 번호가 쓰여져 있는 테이블에 사람들이 칩 기둥을 올려 놓았다. 나는 손을 뻗을 용기가 없어서 내 앞쪽에 있는 어느 한번호에 방금 교환한 칩두개만 올려 놓았다.
뱅글뱅글 돌아가던 통이 속도를 늦추고 딜러가 던져 놓았던 공이 내가 건 번호에 쏙 들어갔다. 그 순간 딜러가 많은 칩기둥을 내가 건 칩 옆에 쌓아 주었다. 그리고 다른사람들이 베팅하는 것을 보았다. 여러번호에 칩들을 쌓아두었다. 그런데 나는 금액이 적혀있는 칩이였는데 다른사람들은 형형색색의 칩들이였다. 규칙을 모르는 나와 와니는 그냥 딜러가 나한테 주었던 칩 기둥을 가져오고 처음에 두었던 칩 두개만 한칸 옆 다른번호에 옮겨 두었다. 그 사이 뱅글뱅글 돌았던 기계가 점차 속도를 줄이고 있었고 내가 살짝 옮겨두었던 번호에 또 공이 쏙 들어가 버렸다. 또 딜러가 칩 기둥을 나의 칩 옆에 쌓아주었다. 연속으로 두번이나 맞춘거였다. 신기했다.
다시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 보니 여러가지 숫자에 형형색색의 칩들을 올려 놓고 있었다. 알고보니 나는 일정 금액 단위로 지정된 카지노 전체에서 사용하는 칩으로 게임을 한것이고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룰렛 칩으로 각 플레이어의 색상으로 구분되고 룰렛테이블에서만 사용가능한 개당 액수가 작은 칩으로 베팅을 한것이였다. 그래서 베팅할때 기둥을 쌓아서 배팅하던것이였는데, 나는 잘 모르고 상대적으로 큰 금액이 써있는 칩으로 큰 베팅을 한것이였다.
그 이후 사람들이 선에 걸쳐서 올려놓는걸 보고 따라 했다. 처음 걸었던 2개의 칩을 선에 걸쳐 두었다. 사람들이 내가 베팅한 번호 두곳에 많이 쌓아서 베팅을 했다. 뱅글뱅글 돌던 기계가 내가 걸었던 둘중의 하나의 번호에 들어갔다. 그 전에 쌓아주었던 칩 기둥만큼은 아니였지만 또 칩기둥을 딜러가 나에게 준다.
또 기계가 돌아간다. 이번엔 또 살짝 옮겨서 번호 4개에 걸친 모서리에 베팅했다. 그 모서리에 있는 4개에 번호에 사람들의 칩들이 어마어마하게 쌓였다. 쌓이다 못해 무너지기까지 했다. 이게 왠걸 또 그 번호 4개중에 한 번호가 걸렸다. 그전의 기둥의 반을 주었다. 그것도 많은 액수 였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사람들의 이목이 나에게 쏠렸다. 고~고~고~ 라고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다음 베팅을 얼른 하라고 성화였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얼른 한번에 들수도 없을만큼 잔뜩 쌓인 칩들을 들고 빠져나왔다.
어리둥절했다. 와니랑 나랑은 이제 뭘할까 고민하다가 오늘 그럼 카지노에 있는 모든게임을 다 해보자고 했지? 하며 바로 옆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앉자마자 딜러가 칩이 무거워 보인다면서 큰단위에 칩으로 교체해준다고 했다. 일부만 바꿔도 손이 한결 여유로워 졌다. 덜썩 테이블에 앉았지만 무엇인지도 모르고 룰도 몰랐다. 블랙잭이란다. 다행히 딜러가 설명을 해주었다. 딜러한테 배우면서 게임을 진행했다. 그런데 대부분 이기고 있다. 갑자기 블랙잭 테이블 가운데를 배회하던 사람이 딜러한테 나오라고 하더니 다른 딜러가 왔다. 뭔가 딱딱하고 무서운 분위기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옆에 무슨포커 테이블로 옮겨서 또 딜러에게 룰을 배우면서 게임을 진행했다. 또 계속 이겼다. 어떻게 이겼는지도 모르겠는데 또 이겼다. 칩이 많아졌다. 그런데 또 가운데서 배회하던 사람이 딜러를 교체 했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뭘 잘못한 사람처럼 나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또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평일이라 그런지 모든 테이블의 게임이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바카라라고 하는 테이블 하나만 더 해보면 되는데 뭔가 눈치가 보였다.
와니와 나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는데, 출출하기도 하고, 카지노 중심에 있는 식당에서 정말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비싼 샴페인과 함께 먹었다. 이제는 좀 지치기도 하고 테이블에 다시 앉기엔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식당 벽에 있는 TV를 보는데, 3분? 5분에 한 번씩 계속 번호가 돌아가며 당첨 번호가 뜨는 키노(Keno)라는 게임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 테이블 중앙에 로또 용지 같은 것이 놓여 있었는데, 번호를 고르고 베팅 금액을 적으면 되는 게임 같았다.
와니와 나는 “이것도 해보자!” 하며 우리가 이해한 만큼 숫자를 체크하고 카운터로 갔다. 룰을 잘 몰라서 직원의 안내를 받아가며 체크를 마친 후, 10여 불을 지불했다. 직원은 10분쯤 후에 다시 오라며 당첨 여부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음식을 다 먹고 나서 카운터로 돌아가니, 친절하게 설명해줬던 직원은 없었고 다른 직원이 있었다. 나는 신난 얼굴로 “이거 당첨된 것 같아요!”라며 체크해달라고 했는데, 그 직원이 웃으며 “이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야.” 하면서 체크해줬다. 그런데, 그 직원의 눈썹이 위로 확 올라가는 게 보였다. 당첨됐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현금으로 준다며 100불짜리 지폐를 한 움큼 쥐어주지 않겠나. 대략 2천 불 정도였다. 와니와 나는 뭔가 사람들의 이목이 신경 쓰여 세어보지도 않고 돈을 가방에 얼른 넣었다.
이제는 정말 어리둥절했다. "오늘 도대체 무슨 일이지? 정말 뭔가 되는 날인가?" 싶어 달려보자는 마음이 들었는데, 시간이 꽤 흘렀다. 와니와 나는 점점 피곤해지기 시작했고, 카지노에 있는 모든 게임을 다 해보자는 목표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쪽 코너에 있는 "포키 머신 두 개만 해보자"며 돈을 넣고, 버튼을 몇 번 누르지도 않았는데 포키 머신에서 ‘뚱뚱뚱’ 하는 음악과 함께 눈앞에 화려하고 정신없는 화면이 떴다. 너무 졸리고 정말 피곤해져서 좋은건지 아닌건지도 모르겠고 기계에서 출금 버튼을 누르고, 가방에 아무렇게나 넣어둔 칩과 종이들을 챙겨서 입구 창구에 가서 “전부 현금으로 바꿔주세요”라고 했다.
6천 불이 조금 안 되는 금액이라고 했다. 돈을 얼른 가방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 피곤했던 우리는 그대로 쓰러져 자버렸고, 다음 날 아침에 돈을 세어보니 진짜 깜짝 놀랐다. 카지노에서 8천 불이나 들고 오다니! 와니와 나는 펄쩍펄쩍 뛰면서 행복해했다. 그 순간 우리는 바로 홍콩 여행을 예약했다. 한국으로 가기 전에 홍콩도 경유해서 들어가는 계획을 세웠고, 나름 비싼 호텔을 예약하면서 “카지노에서 홍콩 여행 경비를 따온 거야!”라며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신기하다며 남편에게 그 전날 이야기를 승전장군이 된 듯 떠들어댔다. 남편은 "비기너스 럭이네"라며 재미있었겠다고 웃었다. 그리고는 “또 가고 싶어?” 하고 물었다. 와니와 나는 그날 밤늦게, 새벽까지 너무 지치게 놀아서 힘들었던 터라, “피곤해서 또 가고 싶진 않다”고 답했다.
그런데 키노(Keno) 게임이 신기하다며 남편에게 열심히 설명했더니, 남편도 집 근처 펍에서 TV 화면으로 본 적이 있다며 “아 그게 그런 거였구나”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남편은 참새가 방앗간에 들르듯 펍에서 키노를 하는 게 남편의 생활 루틴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