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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

3. 돈이라도 벌어서 버텼는데 부도가 나버렸네?

by 휴리네


장사가 안정적이었다. 이제는 매니저 언니가 생겨서 내 일처럼 열심히 도와주었고, 남편의 계획대로 호주 4개 주마다 세일즈 대표를 한 명씩 둘 수 있게 되어 사업은 급격히 성장했다. 이제 물건을 컨테이너 단위로 들여와야 했다. 남대문 시장에서 30만 원어치로 시작했던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질뻔했던 스티커 사업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컨테이너가 도착하는 날이면 남편과 그의 친한 동생과 함께 선착장에 가서 물건을 실어왔다. 물건을 방에 쌓아 놓기가 무섭게, 이미 주문받은 여러 주에 납품할 물건들을 꾸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건은 쌓일 틈도 없이 계속 나갔다.


주말에만 일하며 배송 정도만 도와주던 남편은 점점 놀 궁리에 빠져 있었다. 이제는 새벽마다 나가던 청소 일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아직 그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고 느꼈다. 그런데 남편은 점점 씀씀이가 커졌다. 사륜구동차를 계약하겠다는 둥, 배를 또 사야 한다는 둥 요구가 많아졌다. 그의 그런 모습이 황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불안했다. 이런 일로 다퉈야 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내가 장사한 돈은 내 용돈으로 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 지 깜냥에 벌어봤자지 꼴값하고 다닌다고 조롱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는 이렇게 잘된 것이라고 했다. 마켓에서 푼돈이나 돈을 만지던 너의 구멍가게를 내가 주마다 세일즈 대표를 두자고 해서 사업을 확장시킨 것이니, 자신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맞다. 나 혼자였다면 사업을 이렇게까지 키우지 못했을 것이다. 운전조차 못했던 내가, 일을 하며 정말 많이 성장했다. 남편이 쳐놓은 그늘 아래에서 내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점차 그 그늘이 나를 가려버렸다. 내가 돈 관리를 한다고는 했지만, 실상은 단순히 돈을 세는 역할에 불과했다. 남편은 끊임없이 돈을 가져갔고, 나는 어떻게 돈을 관리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벌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저 돈을 세어 은행에 가져다 놓으면 되는줄 알고 그것만 반복했다. 주말이면 주중에 번 돈을 모아 900달러가 되면 천 달러를 채우려 100달러를 더 찾아다녔다. 9천 달러가 되면 만 달러를 만들기 위해 애썼고, 100달러짜리 100장 만불을 고무줄로 묶어두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왔다. 쌓아놓은 돈뭉치를 보고 있자면 마치 동화 속 스크루지 영감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냐면, 남편이 천 달러 뭉치에서 100달러를 가져가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도, 50달러짜리 8장이 있는 400달러를 가져가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남편은 은행에 가기 전에 5천불 만불단위가 맞지 않는 돈은 모두 자기 것이라며 가져갔다. 쌓아놓는 20불짜리 묶음들 50불짜리 묶음 들은 본인 돈이라 하며 그냥 가져갔다. 이런패턴이 계속 이어갈무렵


그때 와니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와니와 함께했던 6개월은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와니가 있어서 너무 행복했고 재미있었고 즐거웠던 시간은 다 지나가 버렸다. 와니가 함께 해줘서 고마웠기에 와니에게 명품 가방도 목돈도 쥐어 주고 한국으로 보냈다. 와니의 노고를 인정해주고 당연히 선물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주는 남편에게 고맙게 느껴졌다.

하지만 와니가 떠난 뒤, 나는 다시 일만 하며 돈을 세는 삶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매니저 언니 덕분에 내가 직접 마켓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았다. 돈은 계속 들어왔지만, 그만큼 계속 세어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손안의 모래를 움켜쥐려 애쓰는 것 같았다.


남편은 여전히 본인이 해야겠다고 생각한 외의 시간은 모두 자신의 것이라 여겼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나의 몫이라며 외면했다.


“호주에서는 여자가 남편과 똑같이 일해.”
-여자가 시집을 왔으면 살림을 제대로 해야지.


“호주에서는 결혼할 때 시댁에서 집을 해주거나 하지 않아 그런 구 시대적인 발상은 여긴 없어"

- 여자가 시집왔으면 남편을 섬기고 며느리로서 역할을 해야지 어허 서방님 말씀이 옳습니다 해야지


“니 사업이니까 니가 일하는 게 당연하지 니가 한다고 했자나"
- 우리 가정에 들어온돈은 우리 돈이잖아. 우리꺼!


결혼한지 2년쯤 지나자,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남편 말이 다 맞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라는 게 나의 머리속에 들어왔다. 할일이 너무 내손에 많이 올려진 덕에 힘이 많이 부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이 양쪽 문화를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귀에걸면 귀걸이고 코에걸면 코걸이라더니, 시간이 지나다 보니 본인에게 유리한것만 본인이 누려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걸 알았다.


"호주에서 여자들도 남편이랑 똑같이 일한다면, 살림도 남편이 똑같이 해야할 일이고"


"호주에서 남편이 결혼할때 시댁에서 집을 해온다던지 구시대적인 일을 하지 않는 다고 생각하면, 남편을 섬기고 며느리로서 역할을 강요할 수 없는 일이고"(심지어 나는 집을 내가 해왔다고)


"니 사업이니까 니가 일하는게 당연하다면, 그 돈도 내돈이 맞을 일인데"


어렴풋이 잘못된 상황임을 느끼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화가났다. 그러나 남편과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다. 싸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어떻게 대화를 풀어나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답답함만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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