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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Jul 12. 2022

11. 소방관들 덕분에 알게 된 특식

인스턴트커피

     

 119안전센터에는 항상 커피가 준비되어있다. 도급 담당 설강민 반장님과 센터의 물건 재고 조사를 하면 1순위로 떨어지는 게 인스턴트커피다. 달달한 인스턴트커피는 하루에도 몇 번씩 출동하는 소방대원들의 피로를 풀어준다.


 나는 원래 커피 마시면 잠을 못 자는 편이라서 거의 안 마시고 자제하는 편이었다. 보조 인력으로 센터에 출근하면서부터 마시게 되었다. 직원들 따라서 출장을 나갔다가 오면 어느새 내 손에 인스턴트커피가 들려있었다. 


 커피가 내게 특별해진 날은 2021년 3월 4일과 3월 5일이었다. 주간 근무 구급 반장님이 출산휴가에 들어가서 구급대에 한 자리가 비는 상황이었다. 나는 아침에 출근해서 간단한 청소를 하고 장비점검을 마치고 지령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제규야, 오늘 구급대 자리 비니까 출동 벨 울리면 구급차 보조 타볼래?”


 갑자기 지도관님이 물어보셨다. 구급대 메인은 응급구조사 1급 베테랑 반장님, 운전도 베테랑 반장님이니까 보조는 크게 할 게 없다며 안심시켰다. 나는 구급차에 타겠다고 했다. 지도관님은 바로 팀장님과 센터장님한테 보고를 올렸다. 사실 처음 출동하는 것도 아니고 본서에서 간단한 응급처치와 장비 이름을 배워서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 119안전센터는 관할 지역이 넓고 바쁘기로 유명한 곳이라서 힘들까 봐 두려웠다. 


 구급 반장님들은 나에게 출동 나가서 해야 할 일, 감염 방지복 착용하는 법, 간단한 응급처치를 알려주셨다. 교육이 끝난 후 나는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들고 흡연장으로 갔다. 날씨가 우중충하고 비가 내렸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있는데 출동 벨과 함께 본부 상황실 지령이 내려왔다. 시건(문이나 서랍, 금고 등에 설치하여 함부로 열 수 없도록 하는 장치)개방 출동 벨이었다. 지령 컴퓨터로 달려가 보니 구조대와 펌뷸런스(펌프차와 앰뷸런스가 같이 출동)가 찍혀있었다. 


 교육받은 대로 차고에서 물품을 챙기고 방역지침에 따라 코로나 방역복으로 환복하고 뒷좌석에 올라탔다. 구급차에서 지령서를 자세히 보니 우리 아파트 앞 상가였다. 건물주가 신고했는데 “며칠째 당구장 사장님이 안 보이고 연락도 안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구급차는 사이렌을 켜고 달렸다. 너무 빠르게 도착해서 신발을 못 갈아신었다. 그래서 그냥 신발을 벗고 맨발에 방역 신발을 끼워 넣었다. 평소에 지나다니던 집 앞 상가 건물이었지만 유리창에 비친 나는 방역복을 입고 장비를 들고 뛰고 있었다. 


 상가 건물 앞에는 경찰이 미리 와 있었다. 건물주와 경찰이 우리에게 상황 설명을 해주었다. 꽤 큰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 도착하니 긴장해서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설명을 들은 우리는 심정지 시 필요한 장비들을 챙겨서 당구장으로 올라갔다. 


 “제규야, 심정지 같으니까 만약 들어가야 한다면 내가 갈게.”


 구급 메인 반장님이 말했다. 구조대와 펌프차도 뒤따라 들어갔다. 당구장 앞에서 문을 개방할 구조대를 기다렸다. 몇 초 뒤에 건장한 특수부대 출신 구조대들이 빠루, 망치 등을 들고 성큼성큼 올라왔다. 맨 처음에 문을 부수는 쪽이 아닌, 창문을 통해 들어가자는 구조대장님의 말이 있어서 구조대들은 당구장 위층 창문에 매달려 창문을 열려고 했다. 막혀있다는 보고를 들은 구조대장님은 경찰과 건물주의 동의를 얻고 망치와 빠루를 문에 끼웠다. 


“꽝!”


 구조대 막내 반장님은 문을 그 상태로 부쉈다. 굉음과 함께 구조대장님의 명령이 내려왔다. 코로나 방역지침으로 감염 방지복을 입은 내가 먼저 들어가라는 말이었다. 아마 방역복으로 꽁꽁 싸매고 있어서 구조대장님은 내가 직원인 줄 알았나 보다. 구조대장님의 명령 때문에 대신 들어갈 수 없는 구급 메인 반장님이 말했다.  


 “내가 옆에 있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나는 박살 난 문을 살짝 밀어냈다. 처음 맡는 시취였다. 돌아가신 지 꽤 되어 검게 변한 시신이 한 구 있었다. 


 “나가! 제규야, 눈 가리고 나가!”


 구급 메인 반장님은 소리쳤다. 보조 인력인 나에게 트라우마를 줄 수 없어서 그랬다. 이미 시신을 봐버렸다. 경찰은 고독사라고 사건을 종결했다. 소방서 직원들은 나중에 온 경찰에게 사건을 인수인계하고 각자 차로 복귀했다. 나가보니 센터 펌프 반장님들과 팀장님은 빗속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귀소하는 차 속에서 반장님들은 나에게 고생했다고 말했다. 차고에 도착해서 방역복을 벗고 센터에 들어가니 모두 같은 말을 했다. 고생했다고. 나를 옥죄이고 있던 긴장감이 풀렸다. 나는 구급 반장님과 흡연장으로 갔다. 


 팀장님은 구급 반장님들을 불러서 왜 보조 인력을 먼저 현장에 들여보냈냐고 뭐라고 하셨다. 나는 언제 들고 있었는지 모르는 인스턴트커피를 마셨다. 그날은 출동 벨이 계속 울렸다. 나도 같이 따라나섰다. 괴롭거나 힘들지는 않았는데 그냥 피로가 엄청나게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센터에 귀소할 때마다 반장님들이 건네주는 인스턴트커피를 몇 잔이나 마셨더니 퇴근 시간이었다. 


 “내일 보자. 고생했어.”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어느새 우리 아파트 앞 상가를 지나고 있었다. 건물 앞에는 폴리스 라인이 처져 있었고, 과학수사대가 도착해있었다. 건물 창문에 비친 나는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노래를 듣고 있었다. 방역복을 입고 있지 않은데도, 난생처음 본 고독사 현장이 잊히지 않았다.   

      

 그다음 날 주간 근무도 전날도 같은 팀이었다. 오전에는 단순 환자 이송이 있었다. 구급대를 항상 택시처럼 이용한다는 사람, 식당에서 넘어진 사람 등에 대한 출동밖에 없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어떤 출동이 떨어질지 몰라서 조마조마했다. 


 1팀은 식사 후 항상 커피 내기를 했다. 난 돈이 없어서 내기에 불참하는데 그날은 반장님들이 내 것도 하나 건네주셨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인스턴트커피와 다르다고, 피로가 깔끔하게 없어지는 것 같다고 좋아하는 순간에 지령 컴퓨터에서 지령서가 뿜어져 나왔다. 


 “80대 노인 호흡 없음. 코로나 관련 여부는 없다고 합니다.”


 출동 벨이 울리고 본부 직원 방송도 흘러나왔다. 구급대 모두 차고로 달려갔다. 전날 상황 때문에 구급 메인 반장님이 코로나 감염 방지복을 입었다. 차량에 탄 상태로 나는 지령서를 한 번 더 읽었다. ‘80대 노인 호흡 없음.’ 구급차는 사이렌을 켜고 빠른 속도로 시내를 달렸다. 난 창문을 열고 다른 차량을 향해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거의 모든 차량이 구급차가 지나가게 비켜주어서 빠르게 어느 아파트 현장에 도착했다. 


 메인 반장님이 먼저 내렸다. 운전 반장님과 나는 주 들것과 간이형 들것을 챙기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심정지라니, 전날과 비슷한 긴장감이 돌았다. 내 표정을 읽은 게 분명한 반장님들은 긴장 풀고 하던 대로 잘하면 된다고 했다. 


 감염 방지복을 입은 메인 반장님이 먼저 신고자와 이야기를 하였고 절차에 맞게 코로나 여부와 열 검사를 했다. “38도 넘어!” 반장님이 굳은 얼굴로 현관문 너머로 외쳤다. 운전 반장님과 나는 주들 것 밑에서 감염 방지복을 입었다. 집 안에 들어가니 놀란 얼굴의 중년 가족들이 있었고 그사이에 80대 어르신이 누워있었다. 


 메인 반장님은 심정지가 온 거 같다고 말하고 바로 CPR을 진행하였다. 운전 반장님은 CPR을 교대로 진행하는 중에 본부에 보고했다. 어르신의 호흡이 돌아오지 않자 반장님들은 나한테 차에 내려가서 자동제세동기와 루카스를 챙겨달라고 했다. 구급차가 서 있는 아파트 주차장까지 내려가자 펌프차와 본서 후발구급대 차가 도착해있었다. 


 장비를 다 챙기고 엘리베이터에 타려는데 7층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 후발구급대가 올라간 상태고 윗집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계단이 빠를 거 같아서 양손 가득 장비를 들고 미친 듯이 뛰었다. 꽤 쌀쌀한 날씨였지만 감염방지복에 고글 마스크까지 써서 모든 땀구멍에서 땀이 났다. 


 7층에 도착해서 CPR을 하던 반장님에게 장비들을 넘겼다. 펌프차, 후발 구급, 센터 구급대 직원 모두 온 힘을 다해 환자를 응급처치했다. 후발구급대 직원분들이 나한테 CPR 보조를 부탁했다. 배운 대로 나는 직원들이 30번 심장 압박을 하고 난 뒤에 호흡 장치를 한 번 눌렀다. 숫자가 안 헷갈리게 큰소리로 숫자를 불렀다. 


 그때 자동제세동기에서 더이상 CPR이 필요하지 않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열 명 정도 되는 직원들이 다 같이 환자를 들고 내려가서 센터 구급차에 실었다. 뒷자리에서는 메인 반장님이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있었다. 응급처치 소리를 묻을 정도로 사이렌을 켜고 대학병원까지 달렸다. 


 환자를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의료진은 모두 격무에 시달렸는지 얼굴에 피로가 가득 쌓여 보였다. 메인 반장님은 환자 인수인계를 위해 응급실로 들어갔고 나는 차량에 남아 캔 커피 하나를 땄다. 순식간에 마셨다. 메인 반장님이 차에 와서 루카스에서 나온 심전도 그래프를 의료진에게 가져다주라고 해서 그대로 실행했다. 


 우리는 귀소했다. 나는 다음 출동과 소독을 위해 차량 청소하려고 뒷자리 문을 열었다. 긴급한 상황이었다는걸 알려주듯이 차량 안은 난장판이었다. 언제 출동 벨이 울릴지 몰라서 재빠르게 뒷정리를 했다. 


 몇 시간 뒤 안타깝게도 센터에서 이송한 80대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말 없이 흡연장으로 갔다. 반장님이 정말 고생했다면서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들고 오셨다. 센터에 인스턴트커피가 왜 그렇게 빨리 떨어지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달달하고 따뜻한 이 음료는 고단한 소방대원들의 마음을 즉각적으로 달래주는 특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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