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수 완자
전날 식당 담당 박은성 반장님에게 ‘식당 이모님이 코로나 백신 병가를 사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식사 준비 비용 5만 원도 곧바로 내 계좌로 들어왔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장 보러 갔다. 가장 싼 고기인 다짐육을 샀다. 내 얼굴을 아는 마트 직원은 평소보다 고기를 더 많이 주셨다.
센터에 도착해서 평소처럼 청소한 뒤에 점심을 준비하려고 했다. 그런데 설강민 반장님이 담배 한 대 피우고 하자고 했다. 흡연장에는 김상협 반장님이 와 있었다. 김상협 반장님은 대학 졸업하고 서울에서 요리사로 일하다가 소방관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출장 갈 때마다 나한테 좀 더 신경 써 주셨다. 같이 산소탱크 충전하러 갔을 때는 반장님이 식당에서 일했던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귀소하는 탱크차 안에서 해주신 말씀은 똑똑하게 남아있다.
“요리사는 힘들고 너무 박봉이니까 공부해서 소방 들어와.”
출근한 지 얼마 안 지났지만, 설강민 반장님은 급식표에 관심 많은 학생처럼 오늘 점심이 뭐냐고 물었다.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메뉴를 말씀드렸다. 두 분 모두 좋아하는 메뉴였다. 담배를 다 태운 설강민 반장님은 말했다.
“제규야! 오늘은 밥도 해야 하고, 너 어제 청소도 빡시게 했으니까 넘어가도 돼. 식당 올라가서 네 할 일 해라.”
옆에서 듣고 있던 지도관님도 그러라고 하셨다. 나는 2팀이 주간일 때 마파두부를 한 번 밖에 못 해줬다. 한 번 더 할 계획이었다. 아침 청소를 건너뛰고 구내식당으로 올라갔다. 자주 해봤고 자신 있는 요리여서 그런지 금방 먹음직스럽게 마파두부를 만들었다. 점심 식사 시간은 11시 50분. 시계를 보니 10시였다.
그때 홍유영 반장님이 웃으면서 임신한 몸을 이끌고 들어오셨다. “제규야, 내가 뭐 도와줄까?” 하이톤 목소리로 너무 친절하게 물어봐 주셔서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한 박자 늦게, 약간 어색하게 말씀드렸다. 괜찮다고, 다 끝났다고.
“벌써 다 했어? 열어봐도 될까?”
홍유영 반장님이 놀랐다. 나는 메뉴를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고 홍유영 반장님과 식탁에 앉았다. 반장님은 임신하셔서 오후 4시에 퇴근하는데 부부 소방관인 남편의 저녁 식사 메뉴가 고민된다고 하셨다. 최근에 시어머니에게 다진고기를 받았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반장님에게 다진고기로 할만한 마파두부 레시피를 로봇처럼 또박또박 말씀드렸다. 반장님은 잘 이해가 안 된다고 하셨다. 꽤 자세하게 설명했지만, 반장님은 레시피를 말로만 들으니까 감이 안 온다고 하셨다. 시간도 남았겠다, 간단한 음식 하나를 더 하기로 했다. 나는 야간팀 식사 준비로 남겨놓은 다진 고기를 조금 빼서 완자를 빗었다.
반장님은 굳이 안 해도 된다며 말렸다. 시간도 여유 있었고, 나는 무엇보다 친절하신 반장님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만들면서 조리법을 알려주고 싶어서 최대한 천천히 보여주면서 요리를 했다. 큰 스테인리스 볼을 꺼냈다. 다진고기에 파, 마늘, 소금, 후추, 설탕 양념을 했다. 마파두부에 넣고 남은 두부까지 으깨서 넣었다. 재료와 양념을 잘 버무리고 액체류 양념인 간장, 굴 소스를 넣었다.
“제규야, 양념을 얼마만큼 넣어야 하니?”
반장님의 눈에는 고기에 양념하는 게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것처럼 보이셨나 보다.
“다진 고기 종이컵 한 컵에 양념 골고루 하시고요, 소금 한 꼬집이면 충분할 겁니다. 완자를 다 만들고 나서는 조금 잘라서 구워 간을 보고 추가로 하는 게 좋아요.”
사실 나는 얼버무렸다. 내 감대로 계량 없이 막 넣었다. 마지막으로 튀김가루로 농도를 잘 맞추고 조금 잘라서 구워봤다. 처음 만들어 봤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반장님 입맛에도 맞는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레시피를 상세하게 물어보셨다. 나는 완자에 넣은 재료와 양념 양을 그대로 불러드렸다. 반장님은 남편도 좋아할 거라며 신나 하셨다.
간이 딱 맞는 걸 확인한 우리는 남은 완자를 튀겨냈다. 빗소리 같은 튀김 소리가 듣기 좋았다. 반장님은 자신이 간호사 출신이라고 했다. 간호대학 졸업하고 병원에서 일하다가 다시 시험 쳐서 구급대원이 되셨다고 했다.
어느새 완자를 다 튀겼다. 완자와 어울릴 만한 탕수육 소스를 꺼냈다. 원래 센터에는 시판용 소스가 있어서 탕수육과 짜장밥 할 때 야채를 조금 넣고 끓이면 탕수육 소스가 완성된다. 꺼내 보니 탕수육 소스도 다 떨어졌고 유통기한이 다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소스를 만들어야 했다. 반장님은 탕수육 소스도 직접 만드냐고 물었다.
나는 간장과 물을 끓인 후 냉장고에 남은 야채들을 넣고 설탕:식초 같은 비율로 넣어 한소끔 끓였다. 전분이 없어서 올리고당을 넣어 농도를 맞췄다. 그래도 농도가 안 맞았다. 냉장고에 마늘이 있어서 조금 넣으니 마늘 탕수육 소스가 완성되었다. 생각보다 먹을 만했다. 홍유연 반장님이 찍어 드시고 맛있다고 하셨다.
“서무 반장님한테 제규 도와주고 온다고 큰소리 쳤는데 방해만 하고 가네.”
홍유영 반장님은 올 때처럼 웃으면서 1층으로 내려가셨다. 반장님 덕분에 새로운 요리도 만들고 심심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서 좋았다.
완자까지 다 세팅하고 나니까 11시 50분, 식사 벨을 울렸다. 구급대 반장님들이 먼저 식사하기 위해 올라오셨다. 완자를 너무 적게 튀겨서 한 사람당 두 조각씩 드셔야 하는데 깜빡하고 말을 못 했다. 다행히도 조금씩만 가져갔다. 식사를 마치지도 않았는데 구급 출동 벨이 울렸다. 반장님들은 입에 마파두부와 국을 욱여넣고 식당 문 쪽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식판 3개를 챙겨서 반장님들 식탁으로 갔다. 항상 식사 중에 출동 벨이 울리면 음식을 식판으로 덮어 놓는다. 출동 마치고 돌아온 반장님들은 남은 음식을 그렇게 드신다.
남은 경방 반장님들과 센터장님, 팀장님이 올라오셨다. 완자가 맛있어 보였는지 반장님들이 생각보다 더 가져가셔서 2조각만 남았다. 막내 서무 반장님하고 홍유영 반장님도 드셔야 하는데. 그때 홍유영 반장님이 서무 반장님에게 “아까 제규랑 갓 나온 거 주워 먹었어요. 반장님 먹어요”라고 하셨다.
배식에 실패했다. ‘조금 더 만들걸.’ 야간 팀에서 고기를 조금 빼 온 것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해도 아쉬웠다. 식사 도중에 막내 반장님 핸드폰으로 전화 한 통이 왔다. 구급대가 늦게 들어올 것 같아서 병원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다고 했다.
식사 시간 끝나고 뒷정리를 하는데 출동 나가느라 구급대가 남겨놓은 밥이 있었다. 혹시 몰라서 막내 반장님한테 물어봤다. “치울까요?” 반장님이 웃으면서 거의 손도 안 댔다며 그냥 먹자고 했다. 바로 손을 뻗어 드셨다. 고등학교 때 점심시간 막바지에 와서 급식실을 털어먹던 게 잠깐 생각났다.
구내식당 정리를 마치고 흡연장으로 내려갔다. 설강민 반장님은 안 계시고 김상협 반장님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반장님이 탕수육 소스가 진짜 맛있다고 하셨다. 멋쩍은 듯이 나는 웃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요리사 출신인 김상협 반장님은 칭찬에 인색했다. 전에 마파두부를 만든 날 반장님은 냉정하게 “돼지 민찌에서 잡내가 조금 난다.”고 하셨다. 그날 시간이 별로 없어서 돼지고기를 덜 볶고 소스를 붓긴 했다. 그 여파로 돼지 잡내가 조금 났다. 요리사 출신 반장님은 그 차이를 확 알아채고 있었다. 그런데 별로 기대도 안 한 탕수 완자로 김상협 반장님에게 칭찬을 듣다니!
어느새 야간 식사 준비할 시간, 슬슬 식당에 올라갔다. 사복으로 환복 후 퇴근하는 홍유영 반장님과 마주쳤다. “제규야, 오늘 점심 잘 먹었어!, 나중에 레시피 또 잘 알려줘.” 야간 식사 인원은 주간보다 적어서 마파두부 고기의 양을 조금 더 줄였다. 그만큼 탕수 완자 양을 늘렸다. 직원분들이 넉넉하게 드실 만큼 양이 나와서 좋았다. 실패했다가 다시 배식에 성공하니 더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