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ck Jul 12. 2022

10. 남자의 소울 푸드 3대장으로 부족할 때

깡통 햄 버섯 야채 볶음

     

 하루에 나에게 식사 준비비용으로 떨어지는 건 5만 원. 주간에 새로 오신 반장님들에게 잘 보이려고 무리한 건 되돌릴 수 없었다. 돼지 앞다리살 4만 원어치 사고 딱 1만 원이 남았다. 조금 남겨둔 앞다리살과 1만 원의 돈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텐션 높은 이모님의 목소리가 계시처럼 들려왔다고나 할까. 


 “제규야, 밥할 때 괜히 고생하지 말구 돈까스 튀겨.”


 떠도는 말로 돈가스는 남자의 소울 푸드라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요리를 시작한 나는 돈가스에 빠져서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튀긴 적도 있다. 옆구리에 치즈가 새지 않는 롤돈가스 만들기에 성공했을 때는 친구들을 불러와서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튀겨 먹은 적도 여러 번 있다. 


 돈가스는 제육볶음, 햄버거와 함께 소울 푸드 3대장에 들어간다고 한다. 우리 센터는 젊은 남자직원들이 많아서 당연히 돈가스와 제육볶음을 좋아한다. 더구나 돈가스 재료는 이모님이 항상 상비용으로 정육점에서 사놓으신 게 있다. 이모님은 밥할 때 식단이 약간 부실하다고 생각되면 나를 불렀다. 


 “제규! 돈까스를 튀길까, 말까?”


 불호의 아픔을 겪어본 적 없는 음식 돈가스. 7분 정도 튀기면 후다닥 메인 요리 자리를 차지한다. 이모님이 국을 끓이면 나는 옆에서 이야기하며 돈까스를 튀기곤 했다. 이모님은 반찬이 있으니까 추가로 돈가스 2팩만 꺼내셨다. 하지만 마지막에 식사하는 분들에게는 살짝 살짝씩 모자라 보였다.  

       

 오후 4시. 임신하신 홍유영 반장님이 생글생글 웃으며 퇴근을 하셨다. 나도 야간 식사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남은 1만 원으로 칼국수 면을 사 왔다.


 “야간 식사까지 준비해요?”


 홍유영 반장님이 대기실로 올라오면서 슬쩍 말을 건네셨다.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니까 고생하라며 기분 좋게 인사를 하고 가셨다. 나는 주간 식사 준비할 때 앞다리살 수육용을 손질하고 남겨서 모아놨다. 그걸 한 입 크기로 잘랐다. 냉장고에 있는 두부를 넣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그다음에는 돈가스. 평소 같았으면 2팩 튀겼을 양이지만 주간에 진수성찬이었던거 생각하면 양심에 찔렸다. 그래서 과감하게 3팩을 준비했다. 교대근무 및 인수인계 시간에 반장님들끼리 “우리 주간 팀은 수육 먹었는데, 니네 야간 팀은 (겨우) 돈까스 먹는다.”고 할 것 같았다.


 이 야간 팀에 있는 최태원 반장님과 출장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좋아하는 반찬에 대해 질문한 적 있다. 햄과 소시지를 좋아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원래 그날 주간팀에 있던 반장님 중 한 분이 야간팀으로 옮겼는데 그분도 식사할 때 보면 소시지랑 햄을 좋아하시는 거 같았다. 


 나는 재빠르게 센터 앞 마트로 가서 칼국수면을 사고 남은 돈으로 깡통 햄과 대용량 소시지를 하나씩 사 왔다. 젊은 남자 직원이 많아서 지지든 볶든 부치든 인기메뉴가 된다. 나는 깡통 햄에다가 남은 야채, 버섯 그리고 약간의 굴소스를 넣고 볶았다. 소시지는 한 입 크기로 잘라 케찹에 볶았다. 가격이 싼 소시지는 밀가루 맛이 너무 많이 나 케첩으로 항상 가려야 한다. 개인적으로 식은 음식을 별로 안 좋아하고 돈가스가 미리 튀겨져 있으면 눅눅해져서 맛없을 거 같아 야간 직원 분들이 출근하면 튀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오후 5시. 야간팀 직원분들이 하나둘씩 오셨다. 미리 꺼내놓았던 돈가스를 튀기고, 햄볶음을 만들고, 남은 팽이버섯을 바삭바삭해질 때까지 튀겼다. 값도 싸고 냉장고에서 흔히 굴러다니는 팽이버섯을 튀기면 생각 외로 맛있다. 


 주간에 비빔칼국수 만들고 남겨놓은 양념장이 있었다. 칼국수면을 삶아서 양념에 비비고 주간 식사 때와 동일하게 큰 쟁반에 랩핑을 하고 1인분씩 소분했다. 마치 분식집 메뉴 돈가스랑 쫄면처럼 잘 어울렸다. 


 인사이동이 있고 나서 그런지 처음 보는 직원분들이 몇 분 계셨다. 소방 유니폼을 입고 음식을 만들고 있는 내가 그분들 눈에는 이상해 보였나 보다. 내가 먼저 정체를 밝혀야 할까 말까.


“사회복무요원입니다. 이모님 안 나오시는 날에 제가 밥을 하는 거예요. 센터 막내 직원한테 식사준비 시킨 거 아니에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낯을 너무 가려서 그냥 묵묵히 돈가스를 튀겼다.   

   

 “제규! 갑작스럽게 부탁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그때 구원의 천사가 등장해서 말씀하셨다. 식당 반장 보직을 맡고 있는 박은성 구급 반장님이 유니폼으로 환복하고 오신 거다. 남은 돈가스를 튀기는 나에게 박은성 반장님은 쌀이랑 김치, 달걀 떨어진 게 있느냐고 물으셨다. “식당 담당 처음 하는데 제규 덕분에 편해요.”라고 해주셔서 나도 편하고 좋았다. 


 야간팀 음식 세팅을 마쳤다. 압도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준비했지만 주간팀과 비슷한 양과 질로 차려낸 것 같았다. 야간팀 식사준비가 안 좋은 점은 직원들 리액션을 못 본다는 거다. 새로 오신 직원분들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고 센터에 놓고 온 이어폰도 챙길 겸 슬쩍 식당으로 올라가 봤다. 다들 맛있게 드시는 중이었다.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내 기준에서 수육보다 메뉴 파워가 약할 줄 알았는데 나쁘지 않았다. 메뉴 비교당해도 비벼볼 만했다.  

       

“제규야. 쉬는 날 연락해서 미안한데 혹시 17일(화) 휴가인가요? ㅎㅎ.. 예상했겠지만 식당 좀 부탁해도 될까요?” 


 며칠 뒤 박은성 반장님이 카톡을 보내셨다. 나는 좋다고 했다. 반장님은 사비로 베스킨라빈스 기프트콘을 보내주셨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요.                                  

이전 09화 9. 음식 잘한다고 뽐내고 싶은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