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쌈에 비빔칼국수
이모님이 못 나와 내가 요리를 하는 날에는 내 옆자리에 앉은 박은성 반장님이 혹시 밥 부탁해도 되느냐고 물어보셨다.
“제규, 갑작스럽게 ㅠ미안. 낼 이모님이 못 나오신다고 하네. 밥 좀 부탁해도 될까?”
그날은 박은성 반장님이 문자로 보냈다. 흔쾌히 난 좋다고 했다. 입금된 5만 원을 확인하고 출근했다. 7월이었는데, 센터는 어수선했다. 인사이동이 있어서 새로 오신 분들이 많았다. 인수인계와 장비점검 때문에 더욱 바빴다.
나는 청소를 하고 마트 가기 전에 담배를 피우려고 흡연장으로 갔다. 거기에 새로 오신 구급 반장님이 계셨다. 대학병원 간호사 출신이라는데 정말 포스있게 생기셨다. 지금까지 겪은 구급 반장님들은 표정에 뭔가 다정함이 깃들어 있었는데 새로 오신 반장님은 구조대 느낌의 상남자 얼굴이셨다.
“전역이 언제예요?”
다행스럽게도 구급 반장님이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나에 대한 간단한 신상 정보 몇 가지를 물어보고는 “고생해요.”라고 마무리 멘트를 하셨다. 그래서 나도 용기가 생겨 입을 뗐다. 뭔가 자랑하고 싶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오늘 식당 이모님 안 나오는 날이라서 제가 밥해요.”
센터 앞 마트에서 장을 봤다. 돼지 앞다리살 4만 원어치 사고 1만 원을 남겼다. 나는 손을 씻고 식당으로 올라갔다. 수육과 비빔 칼국수를 했다. 날이 덥기도 하고 비빔면과 돼지고기는 잘 어울리니까. 무엇보다 새로 온 직원들이 많아서 실력을 뽐내고 싶었다.
예전에 식당 이모님이 들려준 이야긴데, 소방대원들은 주말에 이모님도 나도 출근 안 하니까 음식을 시켜 드신다고 했다. 아니면 만들어져있는 반찬에 밥만 해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운다. 이번 인사이동으로 타지로 발령 난 팀장님이 칼국수면을 사놓은 게 있었다. 국수 삶아 드신다고 면을 사 왔는데 다 먹지 못한 면들이 냉동실을 차지하고 있었다.
냉장고를 볼 때마다 치워버리고 싶었다. 근데 주말에 드실 수 있으니까, 혹은 야간에 출출해서 뭐라도 만들어 드실 수 있으니까 그대로 뒀다. 이제 그 면을 해결해야 할 때였다. 나는 면을 바로 삶아버렸다. 이모님이 쓰고 남긴 오이와 당근을 얇게 채 썰고, 양념에 들어갈 마늘과 파를 다졌다. 막상 준비 끝내고 보니 고추장이 없어서 당황했다. 나중에 이모님한테 물어보니 고추장을 밖에다 꺼내놓고 쓴다고 했다. 내가 알기로는 개봉 시 냉장보관인데.... 뭐 아무튼 없어서 결국 초고추장에 설탕, 물엿, 참기름, 마늘, 파 넣고 비빔장 비슷하게 만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시중에서 파는 비빔장 같은 맛이 났다.
이날은 특히 처음으로 식사하는 직원분들을 의식해서인지 긴장되었다. 이제 새로 발령받은 팀장님, 구급대원, 임신하신 주간 반장님, 그리고 첫 임용 되신 반장님까지. 심지어 팀장님은 내 고등학교 동기의 아버님이셨다. 대부분 낯설었고 소방서 보조 인력인 내가 요리한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속으로 떨려도 식사준비는 어설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보쌈은 사람 수에 맞게 소분하고 비빔국수도 넓은 쟁반에 얼음 깔고 랩핑 후 인원수만큼 나눠서 보기 좋게 놓았다.
식사 벨을 누르니 직원분들 하나둘씩 올라오셨다. 고기를 알맞게 소분했는데 뒤로 갈수록 부족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확했다. 모자랐다. 마지막으로 배식받는 분은 팀장님. 하늘이 도왔다. 육류를 잘 안 드신다며 나보고 한두 조각만 썰어달라고 하셨다. 맛만 볼 거라고 하셔서 보쌈은 딱 맞게 떨어졌다. 대신 팀장님은 비빔칼국수를 아주 기가 막히게 드셨다. 칼국수면에 비빔 소스를 비빈 건 처음 본다고 신기해하면서 드셨다.
“식당 이모님 안 나오시는 날이 우리 센터 특식 먹는 날이에요.”
센터에서 몇 달간 같이 근무한 직원분이 새로운 직원들한테 자랑을 하셨다.
모두 맛있게 드셨다고 했다. 나는 너무 뿌듯하고 기분 좋았다. 설거지를 하려고 그릇을 정리하는데 내 곁으로 반장님 네 명이 오셨다. 나랑 한 살 차이인 친한 반장님, 새로 발령받은 소방교 반장님, 임신하신 주간 반장님, 그리고 새로 임용되신 반장님. 같이 하면 빠르다며 설거지를 하려고 하셨다.
“괜찮습니다. 제가 할게요.”
나는 혼자 하겠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직원분들이 도와주면 느리고 만족스럽지가 않다. 무엇보다 나 혼자 후딱 해버리는 게 마음 편하다. 다행히도 센터에 오래 있었던 나보다 이원빈 반장님이 그릇을 담그면서 다른 분들을 말렸다.
“제규 고집 쎄요. 절대 못 하게 할걸요!”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홍유영 반장님도 만만치 않았다. 끝내 뜻을 꺾지 않으셨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고된 일을 하는데 설거지까지 하신다니!실랑이가 길어지면 휴식 시간은 사라진다. 홍유영 반장님은 이미 손에 물을 묻혔다. 나는 지는 쪽을 택했다. 세제 묻혀서 싹싹 닦은 그릇을 반장님한테 건넸다. 반장님은 물로 헹구셨다. 설거지하는 소리에 반장님의 질문은 묻히지 않고 또렷하게 들렸다.
“손이 진짜 빠르구나. 요리하다가 왔니?”
내 고집을 한 번도 꺾지 못한, 나보다 한 살 많은 반장님은 설거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셨다. 나는 반장님과 흡연장으로 갔다. 새로 온 구급 반장님도 계셨다. 첫인상이 조금 무서웠지만 밥 잘 먹었다고 나중에 가게 차리면 알려달라고 하셨다. 우린 담배 냄새를 빼고 다시 센터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