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ck Jul 12. 2022

7. 더위를 잊게 하는 새콤함

쫄면

      

 유쾌한 대식가 최기호 센터장님이 다른 센터로 발령 나셨다. 거인이 사라졌지만 이모님은 여전했다. 식사하는 직원들에게 와서 묻곤 하셨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막내 반장, 뭐 좋아해?” 


 그날은 조금 달랐다. 2팀 막내 반장님과 구급 메인 반장님이 이모님이 질문하기도 전에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쫄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식당 올라오기 전에 같이 말을 맞추신 거 같았다. 이모님은 다음에 김치찌개에 쫄면을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날씨가 슬슬 더워졌다. 아침에 출근해서 청소하고 장비 점검하고 나면 땀 범벅이 되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게 축 처지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대기실로 올라가 몸을 식히곤 했다. 그날은 이모님의 큰 목소리가 대기실에 울려 퍼졌다. 


 “왜 이렇게 더운 것이여! 입맛도 없는데 쫄면이나 무칠까? 어뗘, 제규?” 


 항상 그렇듯이 나는 좋다고 했다. 이모님은 장 봐 온 바구니를 가리켰다. 업소용 대용량 쫄면과 채소들이었다. 이모님은 쫄면 좀 떼어달라고 하셨다. 입대하기 전 일했던 레스토랑에서 재고 정리할 때 본 적 있는 브랜드의 쫄면이었다. 센터에서 보니 뭔가 반가웠다. 


 레스토랑에서 쫄면이 나갈 때면 샐러드 파트 사람들 일이라서 레시피를 딱히 외운 적은 없었다. 가끔 재료 준비 시간에 파스타를 삶고 옆에서 같이 삶은 적은 있었다. 그 이외에는 접한 적 없었다. 처음 알았다. 쫄면을 비닐에서 까면 통으로 꽉 붙어있었다. 그걸 찬물에 헹구면서 떼어야 한다. 이모님 말씀에 따르면, 일일이 하나하나 떼어야 삶았을 때 붙지 않고 잘 익는다고 한다.


 이모님과 주방에 나란히 서서 쫄면을 떼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손이 큰 내가 힘 조절을 조금만 못 해도 떼어지지 않고 익지 않은 쫄면들이 부서져 버렸다. 이모님이 큰소리로 나를 다독여 주셨다. 


 “뭐하는겨! 부서진 걸 누가 먹어? 천천히 혀, 천천히. 시간 많아.” 


 쫄면을 다 떼고 나서 야채를 손질했다. 당근, 양파, 오이, 양배추를 가늘고 길게 채 썰었다. 이모님은 고추장에 물엿, 다진 마늘, 참기름을 넣고 양념장을 만드셨다. 팀장님이 신 걸 좋아한다며 식초를 왕창 넣으셨다. 


 이모님은 새끼손가락으로 양념을 찍어서 내 손등에 묻히셨다. “어뗘? 간을 봐봐.” 새콤하고 매콤한 양념이 더위에 지쳐서 사라진 입맛을 불러왔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엄청 맛있다고. “맨날 맛있디야. 맨날!” 이모님은 호탕하게 웃으셨다. 


 이모님은 큰 솥에 쫄면을 삶고 찬물에 빨듯이 쫄면을 헹궜다. 쫄면 삶은 물에 콩나물도 데치셨다. 모든 재료 준비를 끝냈다. 나는 이모님과 이야기하며 김치찌개를 끓이고 고기반찬을 만들었다. 


 식당은 맛있는 음식 냄새로 가득 찼다. 식사시간 30분 전인데 이모님은 쫄면을 버무리지 않으셨다. 이모님 성격이면 음식 다 만들어놓고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마시며 텔레비전 볼 시간인데. 나는 참지 않고 질문을 했다. 


 “이모님 쫄면 안 버무리세요?” 

 “아잇! 알만한 사람이 왜 그러는겨! 야채에서 물 나오니께 맛없어! 먹기 직전에 버무릴 거여.”   

   

 식사 벨 누르기 3분 전, 이모님은 비닐장갑을 끼고 쫄면을 버무리셨다. 나는 찌개와 반찬을 다 세팅하고 식사 벨을 눌렀다. 이모님은 직원들에게 맛있게 드시라면서 대기실로 갔다. 입에 침이 고인 듯한 직원들은 식판에 쫄면을 한가득씩 담았다. 다들 크게 한입 드시는 표정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뒤늦게 지도관님이 안 보인다는 걸 알았다. 설강민 반장님에게 물어봤더니 출장 가셨다고 했다. 설강민 반장님은 음식을 조금만 남겨달라는 부탁을 했다.  


 모두 식사를 마치고 내려가자 이모님이 대기실에서 나오셨다. 

 “다들 쫄면 맛있게 드신겨?”

 “네! 입에 맞는지 두 번 드신 분도 있어요. 그리고 지도관님 오늘 출장이라서 식사 늦게 하신대요” 


 이모님은 식사한 뒤에 활기차게 뒷정리를 하셨다. 뒤늦게 오신 지도관님은 “오늘 밥은 뭘까?” 흥얼거리며 밥을 푸셨다. 나는 남은 반찬과 찌개를 꺼내서 차려드렸다. 쫄면은 별로 없고 야채만 가득해서 마음에 걸렸다. 지도관님이 눈치챘는지 야채만 먹어도 된다면서 나보고 대기실 들어가서 쉬라고 하셨다. 


 다음에 내가 밥할 때는 시고 매콤한 비빔 국수를 해야겠다, 또 다들 많이 드시니까 양을 넉넉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 06화 6. 평생 내세울 수 있는 무용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