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프라이
최태원 반장님은 나보다 10살 정도 연상인데 항상 나를 존중해주셨다. 보조 인력인 사회복무요원에게 늘 존댓말을 쓰고 ‘반장님’이라고 불러주셨다(소방관은 소방사, 교, 장까지 계급을 통틀어서 반장이라 부르고 소방위 이상부터 주임). 나중에 최태원 반장님에게 들어보니 “반장님, 반장님.”이라고 계속 부르면 후임으로 소방에 들어올 거 같아서 그랬다고 하셨다. 실제로도 나보고 틈만 나면 공부 좀 해서 후임으로 들어오라고 하신다.
평소랑 똑같은 날이었다. 출근 후에 장비점검과 청소를 하고 센터 지령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출동 벨이 울렸고, 지령컴퓨터에서 지령서가 미친 듯이 뽑혔다. ‘논에 불이 난다.’는 신고는 지령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지령서를 확인한 최태원 반장님은 서둘러 물탱크차의 키를 챙겨 차고로 달려갔다. 물탱크차의 시동음이 걸려서 나는 센터 앞 도로 통제를 하려고 나갔다. 그런데 반장님이 나를 불렀다. ‘귀소 명령이 떨어졌나 보다.’고 생각했다.
“제규 반장님, 탱크차에 타요!”
최태원 반장님은 다급한 목소리로 외치셨다.
“제규 형! 한 번 나갔다 와봐. 이런 경험 언제 해보겠어요?”
센터장님도 뒤에서 크게 말씀하셨다. 아마 큰불이 난 게 아니고 교통정리 위주여서 날 탱크차에 태우려고 한 것 같았다. 진짜로 이런 경험을 언제 해볼까 싶어서 얼른 탱크차에 탔다. 사실 세 번째로 나가보는 화재 출동이었다.
처음 나가 본 화재 출동은 대응 1단계 화재로 큰 화재였다.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이었지만 산처럼 쌓여있는 폐기물에 붙은 불은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방관들은 공사장에서 쓰는 크레인과 장비들로 폐기물들을 걷어내 안쪽까지 번진 불을 껐다. 나와 같이 출동을 나갔던 보조 인력은 소나기를 맞으며 뒤에서 직원들 보조와 교통정리를 했다. 우비를 입었지만 몸은 젖었고 추웠다. 축축하고 무거워진 몸을 들고 현장에서 잡일을 하니 저절로 짜증이 났다. 퇴근하려고 환복 할 때 보니 속옷까지 젖어 있었다. 불은 일주일 동안 꺼지지 않았고 나는 이틀간 그 현장에 출동했다.
우리 지역은 항구도시, 선박에 불이 붙은 사건이 일어났다. 지금은 다른 센터로 발령 난 조리과 출신 반장님이 물탱크차를 운행할 때 같이 나가자고 하셨다. 큰불이 아니니까 같이 갔다 오자고. 현장에 도착하니 차에서 대기 하라는 무전이 왔다. 기다리고 있는데 귀소 명령이 떨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반장님이 “나는 입맛이 예민하고 음식을 가리는데 네가 한 수육이 정말 맛있었다.”고 했다. 반장님이 들려준 이야기 덕분에 정박한 배 위에서 발생한 화재는 소방이, 운행하는 배 위에서 발생한 화재는 해경이 처리한다는 것도 알았다.
세 번째 화재현장 출동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평소 출장이나 화재시설 안전 점검 때만 타던 탱크차를 타고 진짜 화재현장에 출동하는 기분은 새로웠다. 큰 사이렌 소리와 우렁찬 경적 소리에 비켜주는 차들을 보니 심장이 빠르게 뛰고 긴장되었다. 그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제규 반장님, 내가 현장에서 잘 못 챙겨줘도 이해해줘요. 교통정리랑 뒷정리만 같이 해주세요.”
최태원 반장님의 말씀을 듣는 사이에 희미하게 연기가 보였다. 미리 선착한 다른 센터 펌프차 하나가 보였다. 반장님은 창문을 내려서 확인을 하셨다. 선착한 다른 센터 펌프차 반장님은 펌프차에 물이 다 떨어져서 근처 소화전에서 물을 채우는 중이셨다. 꽤 심각한 상황이었다. 지령서에서 본대로 논에 불이 붙어 타고 있었다.
최태원 반장님은 빠르게 현장으로 달려갔다. 나는 차에서 내려 고인목을 대고 반장님의 장비를 꺼냈다. 무거운 방화복과 장화를 꺼내 반장님 장비 착용을 도와드렸다. 헬멧까지 다 착용하신 반장님은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말씀하셨다.
“제규 반장님! 현장은 너무 위험하니까 교통정리 하다가 제가 부르면 그때 와줘요!”
나는 탱크차에서 경광봉을 꺼냈다. 도착한 경찰과 같이 교통정리를 하는 중인데 멀리서 소방 주임급 정도 되시는 직원분이 나에게 “탱크차 XXXX 눌러!”라고 명령하셨다. 큰일 났다. 뭐라고 말씀하는지 못 들었다. 현장은 혼란스러웠고 내 머릿속은 더 혼란이었다. 다른 센터 반장님이 뛰어와서 누르고는 내 얼굴을 쓰윽 보고 가셨다.
“저희 센터 보조 인력이에요! 관창보조 좀 해줘요.”
긴박하고 정신없는 현장 속에서도 최태원 반장님이 나를 보셨는지 크게 말씀해주셨다. 관창에서 나오는 물의 방수량은 어마어마하다. 뒤에서 소방 호스를 잡아주어야 한다. 최태원 반장님 뒤에서 호스를 잡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불이 어느 정도 꺼지자 화재조사반이 보였다. 무전기로 귀소 명령이 떨어졌다. 숯검댕이가 된 반장님의 방화복을 받고 장비들을 탱크차에 실었다. 관창과 호스를 정리하고 차에 탔다. 최태원 반장님이 침착한 목소리로 무전을 쳤다. “지곡 탱크 귀소하겠습니다.” 멋있었다. 흔한 말로 뽕이 찼다.
최태원 반장님과 같이 출장을 가거나 현장에 다니면 서로의 취향을 발견한다. 반장님과 나는 잘 맞는다. 여유가 생기면 차에서 노래를 듣는데 놀라울 정도로 서로의 취향이 비슷하다. 땀 내와 탄 내, 그리고 좋아하는 노래들이 흘러나오니 분위기는 꼭 붉게 타는 저녁놀을 보는 듯 감상에 빠지기 좋았다.
“제규 반장님, 현장에서 진짜 잘했어요. 어떤 사회복무요원이 이렇게 해? 진짜 나중에 내 후임으로 와요. 내가 잘해 줄게. 공부 좀 해. 근데 우리 밥도 못 먹었네요.”
“남겨놨겠죠! 없으면 제가 후딱 요리할게요.”
귀소하는 탱크차 안에서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반장님이 지역대에서 근무하며 청사 이전 공사 작업할 때 나도 같이 한 일, 반장님이 처음 임관해서 소방사시보로 근무할 때 나도 소방서에 막 사회복무요원 시작한 일, 사는 동네가 비슷해서 오며 가며 여러 번 마주쳤던 일을 이야기했다. 같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귀소 길에 오르니 금방 우리 센터에 도착했다.
직원분들이 고생했다고 따듯하게 맞아주셨다. 호스 뒷정리, 차량 관리, 방화복 세탁은 우리가 할 테니 올라가서 식사 먼저하고 씻고 오라고 하셨다. 나도 팀원이 된 것 같아서 뿌듯했지만 너무 배고팠다. 식당에 올라가서 냉장고를 열어 보니 육회 비빔밥 두 그릇이 남아있었다.
“최태원 반장님~ 고생하셨습니다! 달걀 프라이 몇 개 드실래요?”
“두 개 부탁해요.”
난 프라이팬에 기름을 잔뜩 두르고 총 네 개를 튀겼다. 비빔밥과 콩나물국이 냉장고에서 식었어도, 몸에서 땀내와 탄 내가 났어도, 화재현장에서 내가 작은 보탬이 되었다는 생각에 밥이 술술 넘어갔다. 지금까지 먹어본 육회 비빔밥 중에서 최고였다. 아마도 화재 출동 같이 갔다 온 최태원 반장님과 먹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제규 반장님, 씻어요~ 수건 없으면 내 꺼 써요.”
샤워실에서 씻고 나온 최태원 반장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간단하게 씻을 생각이었다. 몸에 물이 닿자마자 검은 물이 바닥에 쏟아졌다. 손톱 밑에는 재와 흙들이 껴있었다. 공들여서 깨끗하게 씻을 수밖에 없었다.
대기실에서 기분 좋게 누워있는데 출동 벨이 또 울렸다. 반장님과 함께 내려갔는데 속보기 출동 벨이었다. “오작동 확인되었습니다. 출동하지 마세요.” 스피커에서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 날 퇴근하면서 생각했다.
‘아싸! 자랑거리 하나 생겼다. 거의 평생 술안주거리지 뭐. 언제 이런 일 해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