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래미회와 매운탕
소방서에는 구급, 경방, 구조 외에 방호, 홍보, 예방, 도급, 서무 등 다양한 보직들이 있다. 그중 도급을 맡고 계신 반장님이 있다. 도급 담당 설강민 반장님이 식당과 도급 둘 다 담당하셨지만 업무 유연성을 위해 바뀌었다. 도급은 설강민 반장님, 식당은 간호장교 출신 박은성 구급 반장님으로. 박은성 반장님은 내 옆자리에 앉으셔서 출동 없는 틈틈이 식당 재료 발주를 넣고 식당을 관리하신다.
맨 처음 센터에서 밥을 차렸다는 소문이 돌고 나서 맞은 다음 주간 근무날이었다. 아침 인수인계 및 장비점검이 끝나고 다들 모닝커피와 흡연을 위해 흡연실에 모여 있었다. 설강민 도급 반장님이 먼저 굉장히 놀라면서 말씀하셨다.
“제규야! 다른 직원들이 다 칭찬하시더라. 미안한데, 다음에 이런 일 있으면, 형이 좀 부탁할게.”
난 좋다고 했다. 그 후로 설강민 반장님과 같이 장을 보고 센터에 필요한 물품 도급도 같이했다. 나와는 나이 차이가 좀 났지만 그게 무색할 만큼 친해진 반장님이다. 항상 형이라고 부르라고 하시는데 입에 잘 안 붙었다.
거의 매일같이 예산 관리하고 마트에서 물품 사 오고 발품 팔아서 센터 유지 및 보수를 하는데 옆에서 같이 작업하면서 많은 걸 배웠다. 설강민 반장님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특히 흡연장 천막 설치할 때, 일일이 사이즈 알아보고는 싸면서 좋은 공업사 찾아가느라 반장님이 엄청 고생하셨다. 심지어 황금 같은 비번날에 가셨다.
사실 설강민 반장님과는 학연 혈연 흡연 중 마지막 때문에 더 친해진 거 같다. 센터에서 근무하다가 중간중간에 같이 흡연실에서 만날 때면, 반장님은 쉬는 날에 가는 낚시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 팀에는 설강민 반장님하고 팀장님이 낚시꾼들이다. 두 분은 흡연실에서 자주 낚시 이야기를 하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팀장님은 비흡연자. 흡연실에서 커피 마시며 팀원들과 이야기를 하려고 오시는 것 같았다.
설강민 반장님은 신이 난 얼굴로 낚시 포인트 중 어디가 좋다, 이게 무슨 물고기다, 이건 내가 잡은 거다 등을 이야기하셨다. 낚시보다 자동차와 게임을 좋아하는 내가 기억하는 건 자동차 타고 주말에 갈만한 이쁜 바다뷰였다.
“제규야! 형이 나중에 고기 잡아 오면 센터에서 회 뜰 수 있냐?”
그날도 직원분들과 이야기하며 흡연실에서 구름을 만들고 있는데 설강민 반장님이 말씀하셨다. 뱃사람들한테 떠달라고 해도 되고 낚시하는 곳 근처 횟집에서 떠 줄 수도 있는데 나한테 기회를 준 거였다. 나는 한 마디로 대답했다.
“많이 잡아 오세요!”
시간이 한참 흘러서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센터에 앉아 대기하고 있는데 내 휴대폰으로 전화 한 통이 왔다. 설강민 반장님이었다.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제규야, 형이 한 40분 정도 뒤에 도착하거든. 오늘 고기 엄청 잡았다. 횟감 있으니까 한 번 떠봐.”
근무편성표를 보니 설강민 반장님은 야간 근무였다. 어차피 센터에서 무료하게 있던 나한테는 좋은 일이었다. 반장님 차가 센터 뒤로 들어오고 나는 신난 강아지처럼 마중 나갔다. 매일 유니폼 입고 피곤해 보이던 반장님은 어디 가고, 나시 차림에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멋지게 든 반장님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일전에 커다란 케이지에 거대한 유기견을 잡아 오던 반장님 모습과 상반되어 더 웃겼다.
우린 자연스럽게 흡연실로 가서 설강민 반장님의 무용담을 들었다. 어떻게 잡았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줬는데 내 신경은 온통 방금 막 잡아 온 놀래미들한테 가 있었다. “제규야, 형은 집에서 씻고 올게. 좀 있다가 야간 근무 때 보자!” 만담을 마친 반장님은 횟감들을 맡기고 센터에서 나가셨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식조리사 자격증 따면서 회를 떠봤으니까 거의 4년 만이었다. 나는 아이스박스를 끌고 식당으로 올라갔다. 이모님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하려 했는데 이모님이 안 계셨다. 혼자 고민하고 있었는데 도급 반장님이 카톡으로 자연산 놀래미 회 뜨기 동영상을 보내주셨다.
나는 대가리를 쳐서 배를 땄다. 싱싱한 생선이라서 그런지 내장에서 기분 좋은 바다 비린내가 올라왔다. 내장을 빼고 세척 후 등뼈를 따라 3장 뜨기를 했다. 회를 썰다 보니 가운데 부분에서 실뼈가 만져졌다. 동영상에 없던 실뼈였다. 나는 설강민 반장님한테 전화로 물어봤다. 반장님은 열심히 안 해도 된다면서 대충하라고 하셨다.
나는 생선 가운데에 칼집을 내서 앞 2장, 뒤 2장, 뼈 1장으로 분리하는 5장 뜨기를 했다. 가운데 실뼈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회를 쳤다. 처음 보는 생선으로 처음 뜨는 회였지만 나름 나쁘지 않게 작업중이었다. 야간 식사준비를 위해 오신 이모님이 “이게 뭔 난리여!!~~”라고 소리쳤다. 항상 톤과 텐션이 높은 분이다. 접시에 차곡차곡 담긴 회를 보고는 어디서 난 생선이냐고 물어 보셨다.
“설강민 반장님이 잡아 왔어요. 괜찮게 떴나요?”
“제규는 횟집에서도 일해봤어? 잘 뜨네, 잘 떠.”
이모님은 같이 식사준비를 하면 항상 맛있는 부위를 나한테 먹어보라고 했다. ‘요리하는 사람의 특권’이라는 게 이모님의 철학이었다. 이모님은 그날도 가장 맛있는 횟감 부위를 집어 초장에 찍어서 내 입에 넣어줬다. 싱싱해서 더 맛있었다.
회를 다 떠서 주간팀과 야간팀이 먹을 수 있게 두 접시로 나눴다. 초장과 함께 접시에 담고 나서 센터로 내려갔다. 센터장님, 팀장님, 지도관님, 반장님들이 모두 놀랐다. 일평생 근무하면서 보조 인력이 회 떠 오는 모습을 처음 본다고 하셨다. 칭찬세례가 너무 부끄러워서 나는 식당으로 도망갔다.
남은 뼈를 모아서 이모님을 슬쩍 봤다. 이모님은 매운탕을 끓이자고 하셨다. 이모님의 오더에 따라 나는 뒷정리를 싹 하고 사방에 튄 생선 비닐을 치웠다. 도마를 두 개 꺼내 이모님과 같이 양파, 무, 파, 냉장고에 있던 몇몇 야채들을 썰었다. 이모님은 무를 강조했다. 매운탕에 무가 꼭 들어가야 한다고. 나는 이모님이 불러주는 대로 양념장을 만들었다. 된장, 고추장, 간장, 마늘, 파, 고춧가루를 넣고 잘 섞으며 물었다.
“된장도 넣어요?”
이모님은 매운탕 끓일 때 무랑 된장은 무조건 넣는다는 말을 1층 센터까지 들릴 목소리로 말했다. 회도 드시고, 내가 국 끓이는 것까지 도와주니까 기분이 좋으셨나 보다. 나는 생선 대가리부터 뼈까지 넣고 육수를 우렸다. 채소와 양념장을 풀고 국에 뜨는 거품들을 걷어내면서 이모님과 이야기를 했다.
내일은 또 뭐를 만들지, 육개장 끓일 때 고기와 야채를 한 번 더 볶아서 육수를 넣고 끓이면 맛이 더 깊다든지, 고추장 삼겹살이 요즘 맛있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매운탕이 완성되었다. 칼칼하면서 시원한 냄새가 났다. 뼈에 붙은 잔 살과 국물을 떠먹어봤는데 진짜 맛있었다.
“밥 먹고 가~ 국도 끓이고 회도 써느라 고생했는데.”
기분도 좋고 사람들과 어울려 재미나게 먹고 싶었지만 퇴근을 선택했다. 센터로 내려가는 길에 이모님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고기는 강민이가 잡아 오고 회는 제규가 떴어. 매운탕은 제규랑 같이 끓이고!” 출근한 야간팀 직원님분들한테 이야기하시는 모양이었다.
집에 도착했더니 설강민 반장님에게 문자 하나가 왔다.
‘회 대박! 여윽시 요리사다임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