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국
119안전센터 최기호 센터장님의 성격은 유쾌하시다. 직원 모두가 좋아한다. 한 조직의 우두머리를 다 같이 존경하고 인정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센터장님은 특유의 유머로 주변까지 시원시원하게 만들었다. 식재료로 따지면 시원한 맛을 주는 길쭉한 콩나물 같은 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항상 센터장님은 직원들이나 나를 친근하게“아들아~” 또는 “XX형”이라고 부르며 다정하게 다가오셨다. 지금까지 내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센터장님은 잊을 수 없는 방식으로 센터장님의 키를 알려주셨다.
“2메다 조곰 안된다, 아들아~”
정말로 키가 2미터 가까이 되는 센터장님과 대기실에 있을 때였다. “아들아, 나는 키가 커서 좋다.” 센터장님은 뜬금없이 말씀하셨다. 무슨 얘기를 하실까 너무 궁금해서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키가 커서 거울에 머리 벗겨진 게 안 보여. 얼마나 좋냐, 아들아?”
덩치도 크고 운동도 좋아하시는 센터장님은 밥도 엄청나게 드신다. 내가 밥을 하면 더 먹어도 되냐고 물으셨다. 밥도 맛있고 국도 맛있다면서 두 그릇을 싹싹 비우셨다. 잘 먹었다는 평범한 말도 센터장님에게 들으면 특별히 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 것 같아서 힘이 났다. 이모님 어디 가시고 내가 맡아서 밥하는 날이 정말 좋았다.
“아들아, 턱걸이 좀 해. 항상 담배 피우기 전에 턱걸이를 10개씩만 해. 그럼 삶이 달라져.”
반장님들과 흡연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센터장님이 와서 말씀하셨다. 수줍은 성격이고, 보는 눈도 많아서 안 했다. 센터장님은 자꾸 오셔서 명령조가 아니라 친절한 화법으로 턱걸이를 권하셨다. 센터장님 말씀 덕에 어느새 턱걸이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춘추 활동복을 입기 시작한 날, 센터장님과 센터 인근의 시장으로 화재시설 점검을 나가게 됐다. “제규야.” 센터장님은 따뜻하고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셨다. 뭔가 특별한 당부를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센터장님은 직접 내 매무새를 단정하게 만져주며 말씀하셨다.
“사람이 항상 깔끔해야 해. 특히,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는 더. 우리 한 사람으로 그 조직을 평가한단다, 아들아.”
노후된 아파트 단지를 끼고 크게 활성화된 시장은 점포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가건물과 천막이 있어서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40여 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은 시장이라서 화재 예방 시설도 부족했다. 그래서 하나하나 점검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소방 점검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센터장님은 직원들만큼 일해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고생했다며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보조 인력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센터장님이 나를 각별하게 아껴주시는 것 같아서 코끝이 찡했다. 센터장님과 밖에서 단둘이 밥 먹는 것도 정말 좋을 것 같았다.
“아들아. 이모님이 맛있는 걸 해놨는데 그걸 놓치면 안 되지.”
그날 메뉴는 시원시원한 센터장님 성격과 꼭 닮은 콩나물국이었다. 센터장님은 이모님에게 실컷 놀다 온 아이가 엄마한테 하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이모! 나 배고파! 밥 줘요, 밥!” 이모님은 센터장님에게 스스럼없이 대꾸하셨다. “왜 이렇게 늦게 온겨!”
센터장님과 단둘이 식당에 앉았다. 국을 한 입 드신 센터장님은 이모님이 콩나물국을 기가 막히게 끓인다는 칭찬부터 하셨다. 맛있게 빠르게 무심하게 식사하신 센터장님은 내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주셨다.
“아들아. 여기 있으면서 형들 같은 직원들한테도, 손맛 좋은 이모님한테도 뭐든 배워라. 작은 일 하나도 제대로 알게 되면 좋은 거야.”
나는 센터장님이 해주시는 당부가 좋았다. 출동이나 출장 따라 나가서 소방관들에게도 헌신적으로 일하는 태도를 배웠다. 특히 주방에서는 이모님 일하시는 모습을 눈여겨보며 익혔다. 이모님이 큰돈 안 들이고 시원하게 끓이는 콩나물국의 레시피는 이렇다.
봉지에 한가득 든 콩나물을 소쿠리에 넣고 깨끗하게 씻는다. 한 솥 가득 물을 받아 끓인다. 물이 끓으면 깨끗하게 씻은 콩나물과 다진 마늘을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 소금과 고춧가루만 살짝 풀면, 직원들이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맛있겠다며 기대하는 콩나물국이 완성된다.
“재료도 간단하고, 끓이기도 쉽고, 다들 잘 먹어서 자주 끓여.”
이모님이 콩나물국을 자주 끓이는 이유였다. 소박한 음식 하나로도 119안전센터 식당 안에는 시원함이 돌았고, 그 안에서 나는 뭐라도 조금씩 배우는 사람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