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맛 나는 돼지간장조림과 깻잎장
코로나 확진자가 매일 1,000여 명씩 발생하는 나날들이었다.지방 소도시에 있는 조그만 119안전센터도 정신없었다. 그날은 해외입국자 이송 지원을 자차로 가야 했다. 탱크차 운전 이원빈 반장님이 우리 지역에서 입국하는 사람을 이송해오는 업무였다. 이원빈 반장님이 안 계시니까 지도관님하고 내가 탱크차를 타야 했다.
그날은 안전센터와 가까운 주공아파트에서 구급 출동이 연달아 3건 일어났고, 펌프차는 펌프차대로 벌집 제거 지령서가 계속 울렸다. 하필 식당 이모님도 안 계신 날이었다. 나는 전날에 미리 식당 담당 반장님에게 연락을 받았다.
안전센터가 바쁘게 돌아가는 오전 9시 30분쯤, 지도관님이 시설 점검과 출장을 같이 나가자고 하셨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할 거 많은데...’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지도관님은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30분이면 끝나. 간단한 시설 점검이야. 갔다 와서 밥해도 안 늦을 거야.”
머릿속으로 계산해보니 10시에 끝나서 장 보고 서두르면 12시 점심시간에 맞춰서 식사준비를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출동 벨이 울리고 지령서가 내려왔다. 스피커에서“지곡 탱크 업무운행 있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확인 벨을 누르고 탱크차에 탔다.
지도관님과 시설 점검 나간 곳은 센터에서 가까운 아파트. 우리는 관리사무소로 가서 말했다. “시설 점검 나왔습니다.” 연세가 있어 보이는 관리소장님과 소방안전관리자님이 나오셨다. 관리소장님과 지도관님이 아파트의 비상등과 화재경보기를 점검하고 나는 그 옆에서 장비를 들고 업무 보고용 사진들을 찍었다. 옥상 비상구와 비상등을 확인하기 위해 아파트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숨이 턱턱 차고 무더워서 검사지에 땀이 뚝뚝 떨어졌다.
시계를 보니 이미 오전 10시가 넘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좀 더 서두르면 시간에 맞춰 요리할 수 있어.’ 그래도 지도관님이 오늘 내가 식사 준비하는 날이라는 걸 깜빡 잊으신 건가? 난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서 당돌하게 직접적으로 묻지 않고 슬쩍 떠보았다.
“지도관님, 오늘 점심 뭐 드시고 싶으세요?”
“너 편한 거 만들어. 다들 잘 먹어~”
지도관님은 시간을 슬쩍 보여주며 점검 끝났으니까 인사드리고 가자고 하셨다. 아파트 관리소장님은 땀으로 범벅된 우리를 보고 안 바쁘시면 에어컨 바람 좀 쐬다 가라고 하셨다. 검사가 무사히 끝나서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지도관님과 나는 관리사무소 에어컨 가까이 앉아서 땀을 식혔다. 아파트 관리소장님은 아이보리색으로 변색된 낡은 냉장고에서 검은 봉지를 꺼내오셨다.
"더운데 항상 고생하십니다. 하나 물고 가세요."
봉지 안에는 바밤바, 누가바 등 어른들이 먹는 아이스크림이 들어있었다. 나는 바밤바 하나를 꺼내 한 입 크게 먹었다. 시간은 10시 45분, 초조했다. 눈치채신 지도관님은 차분하게 말했다. “점심 조금 늦게 먹어도 괜찮아. 팀원들도 이해할 거야.”
센터에 도착하자마자 팀장님과 센터장님에게 보고하고 마트로 뛰어갔다. 이미 돼지 갈비찜을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내가 제공해야 하는 식사량은 23인분. 주간 근무자 13명과 야간 근무자 10명.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식사준비 비용은 5만 원. 아무리 소방관이 국가직으로 전환되었다고 해도 부족한 예산이 확 바뀌지는 않았다. 식당 도급 담당 설강민 반장님은 같이 담배 피우면서 항상 예산이 타이트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돼지 갈비를 쓰면 주간 팀까지는 먹는데 야간 팀이 부족할 거 같았다. 결국 돼지 앞다리로 혼자 타협했다. 이렇게 되면 돼지 간장 조림이긴 하지만 갈비맛이 나니까 어느 정도 이해해주시겠지. 나는 장을 봐서 센터 식당으로 빨리 올라갔다.
큰 고깃덩이를 적당한 크기로 숭덩숭덩 자르고는 양파, 당근, 파를 손질했다. 소스는 고등학교 때 한식 조리기능자격증 따며 배운 대로 만들었다. 다진 마늘, 간장, 물엿, 참기름, 파, 마늘. 달달하고 짭짤한 간장양념 맛이다.
큰 솥에 고기를 살짝 볶다가 양념이랑 같이 졸였다. 숙성할 시간이 부족했다. 갈비만 하면 상차림이 너무 부족하니까 이전에 먹고 남은 깻잎으로 깻잎장을 만들었다. 점심 준비하다가 식당 이모님한테 배운 건데 깻잎장과 깻잎무침 사이에 있는 반찬이다. 숙성할 필요가 없고 금방 할 수 있어 후다닥 만들었다. 간장, 식초, 물엿, 고춧가루, 다진 마늘, 파로 양념을 만들어 깻잎에 재빠르게 버무리는 음식이다. 갈비에 넣고 남은 감자와 버섯으로는 된장국을 끓였다.
12시. 식사 벨을 눌렀다. 진짜 바쁘게 움직였다. 친구가 하는 요리 게임을 실사 버전으로 재현한 느낌이었다. 직원분들이 올라오는 걸 보면 1팀은 항상 재밌다. 실례되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대식가들이 많고 평균 나이도 가장 적어서 남자고등학교 식사시간을 보는 느낌이다. 식당은 순식간에 북적북적해졌다. 잘 먹었다는 소리를 들은 뒤에 나는 설거지를 하고 담배를 태우러 흡연실로 내려갔다. 나보다 한 살 많은 반장님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말했다.
“제규야, 오늘 코로나 해외입국자 지원 나간 이원빈 반장님 2시쯤에 도착한대. 밥 좀 남겨놔 줘.”
나는 다시 식당으로 올라가서 고기를 미리 양념해놨다. 주간 팀에게 숙성 안 한 고기를 차려드려 마음에 걸렸다. ‘고기도 미리 양념 해놨겠다, 국만 후딱 끓이고 좀 쉬어야지.’나는 국까지 끓이고 대기실에 들어가 이어폰을 꽂았다. 13인분의 음식을 50분만에 준비하고 혹여나 직원들이 식사를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까봐 긴장했었다. 누워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자마자 긴장이 풀려 스르르 잠이 들었다.
밖에서 조심스럽게 식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전자레인지 “띵!”하는 소리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대식가인 센터장님이 두 그릇째 드시나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코로나 해외입국자 이송 지원하고 돌아온 이원빈 반장님이셨다.
“어, 제규야. 깼어? 미안~”
“아닙니다. 잠깐 졸았습니다. 후딱 국 데워 드릴게요. 야간 팀 고기 재어놨는데 후딱 구워드릴까요?”
“아냐, 괜찮아! 우리 팀 먹고 남은 거 전자레인지에 돌렸어.”
“반장님, 다 드시고 그릇은 담가만 두세요.”
식사 마친 반장님은 설거지까지 다 하고 센터로 내려가셨다. 항상 참 존경한다. 코로나 시국에 이렇게 희생한다는 게. 그리고 버티어내는 체력과 정신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