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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Jul 12. 2022

8. 시민들이 보내주는 한여름의 호의

수박

     

 소방서에 출동 벨이 울리는 대신 간식이나 과일, 음료 등이 도착한다. 병원, 단체모임, 종교 단체에서 보내주는 것들이다. 거의 매일 가는 마트뿐 아니라 소방서 근처의 상인들도 유니폼 입은 소방관들에게 뭐라도 더 주려고 한다. 너무나 흔한 아이스 아메리카나 붕어빵을 살 때도 호의를 베푼다. 고생하고 희생하는 직업에 대한 존경인 것 같았다.


 인사이동이 있던 7월이었다. 관할 지역의 한 병원에서 고생한다며 커다란 수박 3통을 119안전센터로 보내주었다. 숫기 없는 나는 병원 관계자들과 직원들이 말씀 나눌 때 약간 어색하게 인사하고 커피를 내어드렸다. 내 자리로 돌아와서는 소방관들이 수박 맛있게 드실 방법을 생각했다. 


 “제규야, 수박 잘라올래?”


 병원 담당 선생님들이 돌아가자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식당으로 올라갔다. 점심 식사 준비 중인 식당 이모님에게 방해되지 않게 플라스틱 도마와 칼을 챙겨서 한쪽 테이블로 나왔다. 


 사회복무요원이 되기 전에 나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뷔페 샐러드와 과일 파트에서 수도 없이 사과, 수박, 참외, 열대 과일 등을 깎아봤다. 어떻게 해야 빠르게 깎으면서도 모양을 예쁘게 잡고 먹기 편하게 자르는지 알고 있었다. 수박 3통 해체하는 건 간단한 축에 속했다. 


 먼저 수박의 양쪽 꼭지를 평평하게 자른다. 그런 다음에 수박을 세운다. 위에 보이는 속살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최대한 흰 부분이 없게 수박 모양을 생각하며 칼을 내린다. 동그란 수박의 과육을 생각해서 동그스름하게 깎으면 된다. 수박 껍질을 다 벗기고 나면 먹기 좋게 깍둑썰기 하면 된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내가 수박을 깎기 시작했을 때 임신 중인 홍유영 반장님이 올라와서 말을 걸었다. 우리 센터가 관할하는 지역이 성장하자 본서에서 추가로 지원 나오신 분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중고등학교 때처럼 서술어가 뭉개지는 대답을 하고 말았다.


 “괜찮습니다. 요리사 하다가 와서....”

 “제가 뭐라고 부를까요? 선생님, 의무 소방은 아닌 거죠?”

 나처럼 당황한 듯한 홍유영 반장님이 다시 물었다. 

 “공익입니다. 말 놓으십시오.”


 나는 꽁꽁 언 상태로 말씀드리고 다시 수박 깎기에 몰두했다. 반장님은 수박 깎는 방법이 신기한지 왜 그렇게 하는 거냐고 물었다. 단내가 확 풍기는 수박을 깎으며 안정감을 찾은 나는 친절하게 말씀드렸다. 


 “이렇게 돌려서 깎으면 교차 오염도 적고 과일 수율도 좋아요.”   

     

 한 통을 다 깎았을 때 구급대 반장님하고 이원빈 반장님이 올라오셨다. 서로 도와주겠다고 올라오신 것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세 분 모두 내가 수박 깎는 모습을 구경하셨다. 나는 프랜차이즈 업장에서 일하던 것처럼 해체한 수박을 통에 담았다. 랩핑을 하고 ‘2팀’이라고 표시해놨다. 


 반장님은 나한테 어디 레스토랑에서 일했느냐고 물었다. 매장을 알려드렸더니 반장님이 신나 하셨다. 고등학생 때 특별한 날에 즐겨 다녔던 곳이라며 좋아하는 시그니처 메뉴를 읊었다. 시기가 달라서 반장님과 내가 그 레스토랑에서 만날 일은 없었겠지만, 어쩐지 같은 음식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친해진 기분이었다. 


 나는 해체한 수박 한 통을 냉장고에 넣고 남은 한 통을 들고 반장님들과 센터로 내려갔다. 수박 깎는 게 은근 일이라며 모두들 나한테 “제규야, 너 정말 소방서에 짱박아라.”고 하셨다. 소방관 공부를 할 생각이 없는 나는 반장님들의 마음이 고마워서 웃었다. 수박은 진짜 달았다. 무더운 날씨를 잠깐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시원하고 맛있었다. 


 다음 날 출근해서 냉장고를 열어봤다. 야간팀이 흰색에 가까운 부분만 남겨놓고 수박을 깨끗하게 다 먹어서 뿌듯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통은 야간 3팀을 생각하며 깎았다. 이른 시간이라서 식당 이모님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쌀을 씻고 계셨다. 칼과 도마를 들고 냉장고로 가니 이모님이 오늘은 안 도와줘도 괜찮다며 웃었다. 나는 냉장고에서 수박을 꺼냈다.


 “내가 처음 근무했을 때부터 매년 수박이 들어오더라고! 맨날 나랑 막내 반장이 자르면서 손목 아팠는데. 잘 됐다! 제규 있으니까 잘 됐어.”


 이모님은 내 옆으로 와서 밑에 층까지 들릴 정도로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이모님이랑 같이 아침드라마 보면서 수박을 깎고 잘랐다. 이모님은 가장 달고 새빨간 가운데 부분을 내 입에 먼저 물려주셨다. 


 “먹어. 자격 있어. 원래 요리하는 사람이 가장 맛난 거 시식하는겨.”


또 쩌렁쩌렁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이모님은 살을 발라내고 남은 수박의 흰 부분을 설탕에 절였다. 그렇게 먹는 것도 또 별미라고. 


 나는 전날처럼 커다란 스테인리스 볼에 썰어둔 수박을 담고 래핑을 했다. ‘야간 3팀’이라고 써놓고 이모님과 남은 수박을 천천히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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