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그날은 오전에 출동 벨이 몇 번 울렸다. 오후에는 센터 앞으로 지나는 차량 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한 편이었다. 그렇게 덜 바쁜 날에 젊은 반장님들과 운동을 한다. 체력 단련실이 넓거나 기구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있어야 할 건 구비되어있다. 지친 몸을 풀어주는 안마 의자도 있어서 나름 괜찮다.
승진 시험 준비하는 신연식 반장님과 운동을 하고 지령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박은성 반장님이 주방 업무를 도와달라고 했다. 쌀과 김치, 달걀의 재고 조사도 필요했다. 주간에만 근무하는 센터장님이 당직 근무를 하거나 석식 먹는 날이 생기면 체크할 노트와 펜도 주방에 설치해야 했다. 나는 창고에서 준비물들을 챙겨 주방으로 올라갔다.
“제규야, 이 벽에 드릴로 뚫으면 나중에 욕먹겠지?”
박은성 반장님은 조금 난감한 표정이셨다. 밥솥 옆에 펜과 노트를 그냥 올려두면 센터장님이 안 좋아하실 것 같았으니까. 예전에 설강민 반장님과 흡연장 천막 설치할 때 케이블 타이로 고정한 게 생각이 났다. 큰 집게를 선반에 꽂아 걸이를 만들고 노트 스프링에 케이블 타이로 감아 걸어놓았다. 볼펜 뚜껑에도 케이블 타이를 감아서 노트에 석식 기록 할 때 뚜껑만 따면 되게 만들어 놓았다. 센터에 내 발자취 하나를 남겨놓아서 뿌듯했다. 팀장님이 반장 시절에 센터 식당 벨을 설치했다고 자랑하시던 마음을 확실히 알았다.
밤 10시, 평소 같으면 다음 날 근무를 위해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 할 시간이었다. 그날은 유난히 배가 고팠다. 주간에 신연식 반장님과 어깨 운동을 많이 했던 탓인가. 차를 타고 집 근처 맥도날드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경찰차 한 대를 보았다. 음주운전 단속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 뒤로는 센터에서 보던 소방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학생 때 친구들과 돈 모아서 자주 갔던 치킨집에 불이 난 거였다. 차창을 내렸는데 본서에서 몇 번 뵌 반장님들과 낯익은 센터 직원분들이 불을 끄고 있었다. 꽤 심각한 화재여서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인사도 드릴 수 없어서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우리 집은 평화로웠다. 나 혼자 거실 소파에 앉아서 햄버거를 먹는 게 죄송할 정도였다. 센터에서 같이 운동하고 장난치며 이야기했던 직원분들이 새삼 위대하게 느껴졌다.
다음날 출근하니 화재진압을 했던 야간팀 반장님들은 녹초가 되어있었다. 샤워장 세탁기도 계속 돌아가는 중이었다. 밤새 큰 화재 출동이 2건이나 있었다고 했다. 야간팀 설강민 반장님과 김상협 반장님이 말했다.
“제규야. 미안한데, 우리 유니폼 빨래 돌려놨거든. 끝나면 대충 각자 사물함에 던져 놓아줄 수 있어?”
나는 좋다고 했다.
센터에는 세탁기 2대가 있다. 유니폼과 기능성 티를 빠는 가정용 세탁기와 크고 무거운 방화복을 빠는 전용 세탁기. 야간팀 직원분들이 차고에 벗어놓은 방화복들을 들자마자 탄내가 났다. 나는 방화복들을 들고 차고 뒤 창고로 향했다. 그곳에는 소형차 크기의 방화복 전용 세탁기가 있다.
방화복들을 꼼꼼하게 정리했다. 바쁘다고 무전기나 장비를 그대로 넣고 빨면 큰일 나기 때문이다. 김상협 반장님과 출장을 나가면 항상 무전기와 장비를 내가 드는데 반장님은 강조했다. “네가 들고 있는 물건 중에 무전기가 가장 비싸다.” 덕분에 무전기 하나는 잘 챙기게 되었다.
방화복과 방화 신발을 분리하고 내피와 외피를 분리했다. 분리한 외피에 걸려있는 무전기와 장비, 그리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외피에 걸려있는 이름과 계급이 적혀있는 인식표를 떼 냈다. 모든 걸 분리한 뒤 거대한 세탁기에 인면보호두건과 방화복을 넣었다. 쑤셔 넣다시피 했는데도 방화복이 너무 많아 한 번 더 돌려야 했다. 60분 뒤에 세탁이 끝난다는 세탁기 메시지를 보고는 내 스마트폰에도 60분 타이머를 맞춰놓았다. 핸드폰 상태 창에는 장마 예보 알람이 떠 있었다.
차고에 가니 주간팀 반장님들이 뒷정리를 하고 계셨다. 나도 같이 도와드리고 샤워장으로 갔다. 현장에서 일한 오랜 세월이 옷과 장비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방화복 바지 밑단은 해져있었고 장비는 굉장히 낡아 있었다.
흡연장에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담배를 끄고 창고로 달려가서 세탁기에서 방화복을 꺼냈다. 안 그래도 무거운 방화복인데 물에 젖으니 정말 무거웠다. 방화복을 끌어안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 우체국 직원 한 분이 웃으면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전날 밤에 본 화재현장과 다르게 날씨도 사람들도 맑고 평화로웠다.
나는 직원들의 남은 방화복을 또 돌렸다. 건조기에서 꺼낸 유니폼은 잘 개서 명찰에 맞게 각자의 사물함에 넣었다. 이제 방화복 한 번만 더 널면 되니까 여유가 생겼다. 지도관님에게 보고 올릴 겸 센터로 갔다. 나보고 고생했다면서도 “언제 비가 올지 모르니까 쉬다가도 옥상에 올라가 봐.”라고 하셨다.
낡은 방화복까지 모두 다 널어놓은 후 대기실로 올라갔다. 노래를 듣는데 이어폰 너머로 굵은 빗소리가 들렸다. 옥상으로 달려가서 처마 밑으로 방화복을 옮겨 널었다. 순식간에 몸이 젖었다. 그래도 할 일을 마쳤으니까 쉴 일만 남았다. 그때 대기실 전화가 울렸다.
“제규야, 비 온다. 방화복!”
“안쪽 처마에 다 널어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