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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Jul 14. 2022

14. 그릴이나 석쇠 없어서 난리 난다 해도

고추장 삼겹살

  

 아침에 출근하면 늘 하는 일, 인사드리고 장비를 옮기고 청소하고 대기실로 올라갔다. 노래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식당에서 큰소리가 들려왔다.


 “제규! 시간 있으면 나 좀 도와줘.” 


 그동안 이모님은 내가 거들려고 할 때마다 자주 거절하셨다. 편해서 좋지만 습관 들면 안 될 것 같다며 어쩌다 한 번씩만 부탁할 거라고 스스로 다짐하셨다. 나는 이모님의 호출이 출동 벨처럼 느껴져서 신속하게 주방으로 갔다.


 이모님은 마트에서 양손 가득 식재료를 사 오셨다. 나한테 차 키를 주면서 장 봐 놓은 박스를 꺼내오라고 하셨다. 주차장에 내려가서 차 문을 여니 큰 박스에 여러 양념과 기본 재료들이 담겨있었다. 박스를 들고 올라온 나에게 이모님은 양념 정리를 도와달라고 했다. 


 “기본 양념들이 다 떨어져서 은성이(식당 담당 반장님)한테 돈 좀 더 받아왔지!”


 된장, 고추장, MSG, 간장, 물엿, 설탕, 굴소스 등 기본적인 양념들이 들어있었다. 이모님은 말에 멜로디를 붙여서 “오늘은 무얼 할까아~” 흥얼거리셨다. “고추장도 새로 샀겠다~ 고추장 삼겹살을 해야겠다~” 스스로 묻고 답가까지 완벽하게 부르셨다. 


 이모님은 평소처럼 아침드라마와 뉴스를 켜고 텐션 높게 쌀을 씻으셨다. 밥솥에 밥을 안친 다음에 검정 봉다리에서 삼겹살을 꺼내셨다. 그리고는 나를 불렀다. “제규! 고추장 삼겹살 양념을 어떻게 만들까?” 도와달라는 뜻이었다. 


 이모님과 나는 주방 앞에 서서 머리를 맞대고 메뉴를 짰다. 이모님의 노래는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고기가 뻘거니까 국은 맑아야겠지~” 이모님은 새로 산 고추장을 텄다. 자주 사용하는 국자로 스테인리스 볼에 큼직하게 한 번 덜었다. 


 이모님은 요리할 때 항상 계량을 하지 않는다. 수십 년 경력에서 나오는 바이브로 척척 넣고는 마지막에 간을 보신다. 늘 그렇듯 변함없이 맛있었다. 고추장 위에 물엿과 설탕을 듬뿍 뿌리고 간장으로 맛을 좀 더 했다. 마늘도 큼직하게 한 큰술 넣으니 어느새 양념이 완성되었다. 


 “제규! 간 좀 봐봐.”


 이모님은 내 손등에 양념을 조금 묻히셨다. 먹어보니 딱 알맞게 간이 되었다. 만능 손을 가진 이모님은 양념이 담긴 스테인리스 볼에 삼겹살을 모조리 쓸어 넣었다. 나는 이모님과 같이 삼겹살에 양념을 묻히고 버무렸다.  


 “이모님, 이제 국만 끓이면 끝이네요.” 

 “뭔 국을 만들까?” 


 나는 된장국이 어울릴 것 같다면서 큰 냄비에 물을 받았다. 이모님과 티비를 보면서 같이 된장국 재료들을 썰었다. 이모님은 찬물에 육수용 멸치, 다시마를 넣어서 육수를 냈다.물에 된장을 풀고 썰어놓은 재료들을 넣고 끓였다. 보글보글 국이 끓자 이모님이 “칼칼하게 고춧가루도 좀 넣을까?”라고 물었다. 


 된장국 간을 보니까 갑자기 배가 고팠다. 밥솥에서는 취사가 다 되었다고 증기가 뿜어졌다. 티비를 보던 이모님이 주걱 하나를 가져와 밥을 저었다. 


 “지난번에 직원들이 밥이 맛없다고 그랬다니께! 내가 봤을 때 쌀도 문제지만 밥솥이 오래되었어!”


 범인을 잡아낸 탐정처럼 한바탕 호탕하게 웃고 난 이모님은 은성이(식당 담당 반장님)나 강민이(도급 담당 반장님)한테 밥솥 좀 바꾸자고 말할 거라고 하셨다.    

     

 전에 식당 예산 문제로 조금 저렴한 쌀로 샀더니 직원분들이 밥맛이 없어졌다고 말을 했다. 다행히도 식당 예산에 여유가 생기자 원래 먹던 쌀로 바꿨다. 이런저런 센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11시가 되었다. 


 “제규! 삼겹살 좀 같이 굽자.”


 이모님이 프라이팬을 꺼냈다. 달군 프라이팬에 삽겹살을 올리자 맛있는 냄새가 식당 안에 퍼졌다. 한 판을 굽고 두 번째 고기를 올렸을 때부터 삼겹살에서 수분과 기름이 나오니 양념들이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뭐여! 이게 뭔 난리여, 난리!” 과열된 양념 속 전분과 당분이 거뭇거뭇해지며 타고 있었다. 


 이모님은 전에 일하던 회사 구내식당에서 고추장 삼겹살을 구울 때 그릴이나 석쇠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런 장비로 구우면 기름과 수분이 틈 사이로 빠져나가면서 튀지 않지만 프라이팬이라서 튄 것이다. 나는 우선 불을 줄이고 물 한 컵을 받아서 프라이팬에 부었다. 


 “이렇게 물을 조금씩 부어가면서 구우면 양념도 덜 타고 기름도 덜 튈 거예요.” 


 이모님을 안심시켜 드렸지만 그래도 기름 많은 삼겹살이라서 튀기는 튀었다. 처음보다 조금 덜 튀었을 뿐이다. 고기는 맛있게 익고 거의 점심시간에 다다랐다. 나는 이모님과 사이좋게 다 익은 고기 한 점을 먹고 너무 맛있어서 박수를 쳤다.


 이모님은 반찬을 덜었다. 남은 고기를 굽는 내 손등에 큰 양념 하나가 튀었다. 양념으로 쓴 설탕 때문인지 진짜 뜨거웠다. 조리 과정의 일부이기도 하니까 그냥 참았다. 고기를 다 굽고 설거지하면서 데인 곳을 식혔다. 


 음식을 다 세팅하고 식사 벨을 눌렀다. 식당에 들어오는 직원들의 표정이 밝았다. 모두 맛있게 먹고 내려가셨다. 나는 뒷정리를 하고 내려가서 구급 반장님한테 밴드가 혹시 남았냐고 물어보았다. 데인 부분이 빨갛게 올라왔다. 통증에 비해 너무 작고 하찮은 상처였다. 구급 반장님이 화상약을 발라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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