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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Jul 14. 2022

16.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주는 복날 맞이 특식

삼계탕

      

 한여름 119안전센터에서는 길 건너 아파트 단지에서 우는 매미 소리가 잘 안 들린다. 안 그래도 바쁜 우리 센터의 출동 벨이 자주 울리기 때문이다. 화재 진압, 구조, 구급, 생활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관들은 야간에는 주취자들의 안전을 신경 써야 하고, 주간에는 벌집 제거, 열사병, 어지럼증 신고를 받고 출동한다. 


 한번은 센터에서 4번 연속으로 귀소하자마자 벌집을 제거하기 위해 나간 적도 있었다. 설강민 반장님은 두꺼운 비닐 속에 잡아 온 벌들을 가리키며 벌술을 담가 먹자는 농담을 하셨다. 독성과 공격성이 강해 시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말벌들에게 나는 딱밤을 때렸다. 두꺼운 비닐 속에 묶여있으니까 벌집을 부쉈다. 


 “제규야, 벌 탈출하면 네가 다 잡아 와라.” 


 김상협 반장님의 말을 들은 뒤로는 장난을 멈췄다. 이렇게 바쁘고 무더운 여름에 식당 담당 박은성 반장님은 식대를 아껴서 이모님에게 식사 비용을 더 주신다. 특식을 준비해달라는 뜻이다. 이모님은 알뜰살뜰 식비를 조금씩 아껴서 큰맘 먹고 보양식을 준비하신다.   

      

 “제규! 차에서 박스 좀 꺼내줘. 무거워서 못 들겄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한 이모님이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이모님 차키를 들고 내려갔다. 닭 20여 마리가 들어있는 박스를 들고 식당으로 올라갔다.닭값이 비싸져 닭 크기가 작다고 했다. 비록 작은 닭이지만 이모님은 큰소리로 한 사람당 한 마리는 뜯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박스에는 건대추와 인삼 등도 있었다. 


 이모님과 나는 큰 솥 2개에 물을 받았다. 닭 10마리가 들어가야 하는 솥이라 물을 다 받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가스레인지 위에 솥 2개를 올리고 나서 이모님과 닭 손질을 했다. 닭 꽁무니를 따고 거기에 재료들과 찹쌀을 넣었다. 이모님의 손이 빨라서 주간 팀 먹을 닭을 금방 손질했다. 


 이모님은 도마를 꺼내 닭과 같이 먹을 고추, 마늘, 오이를 썰었다. 항상 거대한 단백질 메뉴(삼계탕, 수육)를 준비할 때면 이모님은 ‘이모님 특제 쌈장’과 오이, 마늘, 고추를 썰어서 세트처럼 같이 낸다. 물이 끓자 각각의 솥에 닭 5마리씩 넣었다. 이모님은 삼계탕에 간을 잘 안 하신다. 대신 꽃소금과 후추를 섞어 큰 접시에 따로 놓으신다. 


 “제규, 닭 다 익었어? 봐봐!”


 식당에 고소한 닭 육수 냄새가 퍼질 때쯤 이모님이 오더를 내리셨다. 젓가락 하나를 들고  닭가슴살 쪽을 잘 찔러 보니 부드럽게 들어갔다. 다 익었다. 이모님은 조금만 더 끓이고 벨 누르면 되겠다며 콧노래를 부르셨다.  


 식사 벨을 누르니 직원들이 기대에 찬 얼굴로 올라왔다. 이모님이 ‘복날 맞이 특식’한다고 일전에 미리 예고를 해둬서 다들 알고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직원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이모님은 무심하게 “간은 알아서들 해서 드슈.” 하며 대기실로 들어가셨다. 


 직원 중 몇 분은 항상 삼계탕 나오면 비닐장갑을 찾으신다. 나는 밥 푸기 전에 소금 옆에다가 비닐장갑을 꺼내놓았다. 뒤에서 “오! 제규 센스~.”하는 소리가 들려서 기분 좋았다. 호불호 없이 모두 삼계탕을 맛있게 드셨다. 출동 건수가 많은 여름이라 그런지, 오랜만에 나오는 특식이라서 그런지, 모두 먹는 즐거움을 누렸다. 하늘도 도와서 식사 시간에 출동 벨이 안 울렸다.  


 그날은 연가나 병가를 쓴 직원이 없어서 나는 바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음미하듯이 삼계탕을 천천히 먹었다. 가슴살은 이모님 특제 쌈장에 찍어 먹고, 마늘과 고추를 곁들여 먹어보기도 했다. 가장 맛있었던 건 국물이었다. 


 모두가 맛있게 드시고 나간 자리. 이모님이 뒷정리를 하러 식당에 오셨다. 그때 난 대기실에서 노래를 듣고 있었다. 이어폰을 뚫고 들려오는 이모님의 큰 목소리. “제규! 맛있게 먹었어?”


 식당에 나가보니 이모님은 남은 육수에 밥을 말아 드시고 있었다. 나는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는 이모님 앞에 마주 앉았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제규 좋겠네! 내일 팀 바뀌어서 주간에 또 삼계탕 나오는데!”

  나는 좋다고 했다. 


 “이 다음다음에는 겉절이랑 수육하려고 하는데, 제규는 어쪄?”

 나는 이모님이 해주시는 건 정말 다 좋다고 했다. 


  “맨날 다 좋디야. 싫은 게 없어. 우리 센터 사람들은!”

 이모님은 뿌듯해하며 남은 밥을 맛있게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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