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 닭갈비와 삼계죽
“제규! 여름휴가 안 가?”
이모님이 큰 소리로 물었다. ‘나 곧 여름휴가 가니까 대타 좀 부탁해.’라는 뜻을 함유한 질문이었다. 직원들도 모두 여름 휴가 언제 가냐고 물어봤다. 얼마 전에 내가 병무청 체험수기에서 얻은 특휴 3개 때문에 궁금해서 하는 질문일 수도 있었다. 예고한 것처럼 이모님은 여름 휴가를 가셨다. 식당 담당 박은성 반장님이 머쓱하게 웃으며 식사를 부탁하셨다.
나는 더위를 많이 탄다. 몸 자체에 땀이 많은데 출근해서 열이 가둬져 있는 차고에서 아침 장비점검하고 장비를 옮기면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더구나 센터에서 내 자리는 에어컨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통유리 바로 앞자리라서 햇빛이 직접적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그 날은 처음으로 식사 준비에 힘을 들이고 싶지 않아 쉬운 선택을 했다. 돼지간장조림.
주야간 식사 비용 50,000원을 받아서 돼지 앞다리살을 25,000원어치 샀다.앞다리살과 냉장고 속 야채들을 한입 크기로 썰었다. 간장, 굴소스, 물엿, 파, 마늘을 넣어 간장양념을 만들었다. 간장양념에 돼지고기를 재었다. 간장양념이 조금 남았길래 야간 식사 때 쓰려고 랩으로 씌워서 냉장고에 넣었다.
다들 맛있게 드셨는지 식판이 깨끗했다. 나는 부엌을 깨끗하게 치운 뒤에 대기실로 갔다. 야간에 할 음식이 없었다. 더위에 지쳐서 어떤 음식을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났다. 대기실의 낡은 에어컨이 꺼지면서 내 스트레스를 더욱 고조시켰다. 머리 식힐 겸 흡연장으로 걸어가는데 찜기 속처럼 더웠다.
그렇지. 복날에 이모님과 한 삼계탕을 만들고 싶어졌다. 남은 돈을 들고 마트에 갔다. 닭 한 마리에 6,000원.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특식비를 받기에는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그때 뷔페 레스토랑에서 일 할 때 여름 특선 메뉴로 삼계죽을 내던 게 생각났다. 젊은 계층을 타깃으로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라서 가족 단위, 또는 중장년층 손님들만 즐겨 먹던 메뉴였다.
삼계죽 레시피를 떠올리며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닭을 해체해서 순살은 볶고 남은 뼈로 닭국이나 죽을 끓여야겠다. 닭 세 마리와 야채 몇 가지를 샀다. 메뉴가 정해지고 나니 이제 요리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더위도 견딜만했다.
쌀을 씻으려고 보니 밥솥에 밥이 조금 남아있었다.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도 남은 밥으로 삼계죽을 끓이곤 했다. 상황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야채 먼저 손질했다. 가금류를 만질 때는 교차오염을 조심하며 마지막에 손질해야 하니까.
죽에 들어갈 양파와 파, 마늘, 당근, 호박을 잘게 다졌다. 그런데 우리 센터는 평균 연령대가 다른 센터에 비해 젊다.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젊은 청년들은 죽을 안 좋아한다. 죽은 보통 환자식이나 보양식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나는 밥 없는 삼계죽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을 정했으니 메인 반찬을 생각해야 했다. 냉장고에 넣어놨던 간장양념이 생각나서 간장 닭갈비로 결정했다. 양파와 당근을 한입 크기로 잘 썰었다. 닭은 꽁무니를 따고 닭 허벅지에 칼집을 넣어 손질했다. 그러고 나서 바로 비틀어 연골을 따라 닭을 해체했다. 살이 많은 다리살, 허벅지살, 가슴살, 날개와 봉을 제외한 부분 모두를 국 냄비에 넣어 육수용으로 만들었다. 삼계죽에 넣을 닭가슴살 두 덩이를 남겨 놓았다. 순살들을 모두 한입 크기로 자르고 간장양념과 버무려 졸였다. 육수용 냄비에서 육수가 끓기 시작했다.
“이게 뭔 일이여! 누가 야채를 다 썼어?”
야채를 넣어 채수도 뽑고 싶었지만 이모님 목소리가 음성지원 되는 듯했다. 예전에 마파두부 만들 때 야채를 다 써버려서 이모님이 출근하자마자 큰 소리를 낸 적 있었다.
뼈와 연골에서 진한 맛이 나오고 육수가 완성될 즈음 간장닭갈비에 야채를 넣었다. 육수에서 불순물과 뼈를 건져내고 잘게 다져놓은 야채들을 넣었다. 끓을 동안 장갑을 끼고 뼈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살들을 싹싹 긁어모았다. 육수를 끓이면서 익혔던 닭가슴살 두 덩이도 결대로 잘랐다. 이제 죽에 모아놓았던 살들을 넣고 간을 맞췄다. 마무리로 참기름까지 두르니 그럴듯한 밥 없는 삼계죽이 완성되었다.
남은 밥은 후라이팬에 넓게 펼쳐 참기름을 살짝 바르고 누룽지로 만들었다. 국으로 먹을 사람은 국으로 먹고, 죽으로 먹고 싶은 사람은 누룽지를 넣어 죽으로 드시라는 뜻이었다. 시크한 식당 이모님처럼 ‘알아서 드슈.’라는 느낌을 살렸다.
“오늘 밥 뭐야?”
다 준비하고 보니 야간팀 막내 반장님이 슬쩍 다가오셨다. 준비해놓은 메뉴를 보고는 맛있겠다고 감탄하며 환복하기 위해 대기실로 들어가셨다. 나는 반장님에게 “죽으로 드시고 싶은 분은 누룽지 넣어서 드세요.”라고 말하고는 옷을 갈아입고 퇴근했다.
으! 나는 퇴근길에 OMR 카드 한 칸씩 밀려 쓴 학생처럼 완전 아쉬워했다. 국이 아무리 뜨겁다고 해도 누룽지를 죽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인데. 죽이 되려면 아주 푹 끓였어야 했는데. 더위를 먹어서 생각이 너무 짧았다. 이모님처럼 시크하게 하려다가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