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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Jul 14. 2022

18. 간식비를 헐어서 열어준 송별회

케이크

  

“제규야, 니 다시 본서 들어올 거 같은데 ㅋㅋ 말년에 여기서 나랑 꿀이나 빨자. 외파(본서 제외한 119안전센터)에서 고생 많았다.”


 본서에서 근무할 때 친했던 의방(의무 소방)의 전화를 받았다. 전역 60일 정도 남았을 때였다.본서로 돌아가면 최고참 말년이었다. 생각만 해도 편했지만 한편으로 너무 아쉬웠다. 작은 센터에서 9개월 근무하며 본서에서는 누릴 수 없는 ‘준 직원 대우’를 받았다. 인원이 100명 단위 넘는 본서로 들어간다니, 낯을 많이 가리는 나로서는 숨이 턱 막혔다.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가서 출동 타지 말고 편하게 전역해.”


 지도관님은 특유의 능청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제규야, 별로 가고 싶은 마음 없지? 형이 팀장님이랑 본서 보조 인력 담당 반장님한테 잘 말해 볼게.” 


 설강민 반장님은 나를 달랬다. 지도관님은 나보고 진짜 잘하고 있다면서 남은 사회복무요원을 센터에서 마무리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도 본서 가서 느긋하게 지내는 것보다 센터에서 직원들에게 인정받으며 전역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했다. “센터에 있고 싶습니다!” 


 잊고 있었다. 약 4개월 전 본서로 복귀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나를 아꼈던 전임 최기호 센터장님이 보조 인력 담당 반장님에게, 그리고 행정과장님에게 요청해서 이 센터에 더 있게 된 거였다. 같은 안전센터에 보조 인력이 9개월 이상 근무할 수 없다는 규정도 있어서 더 긴장하고 있었다. 


 센터의 실세 식당 이모님은 다른 팀 직원들이 알기도 전에 이미 알고 계셨다. "제규! 가는겨?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본서직원들은) 뭐 하는겨!" 이모님은 큰 소리로 마구 화냈다.  그러나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공식적으로 본서로 들어간다고 정해졌다. 소문은 주간 야간 각 팀들에게 빠르게 퍼졌다.   

      

 본서로 돌아가기 2일 전이었다. 3팀이 주간 근무하는 날이었다. 센터장님은 신연식 반장님에게 오늘 제규랑 점심시간에 밥 먹을 거니까 보고 좀 올려주라고 말씀하셨다. 점심 식사 30분 전 이모님은 음식을 준비하고 앞치마를 벗었다. 사복으로 환복한 센터장님과 나, 그리고 이모님은 센터 바로 옆 식당에 갔다. 


 센터장님은 나에게 그동안 고생했다며 싹싹하게 잘하는 아이니까 나중에 전역하고도 잘 될 거라고 덕담을 건네셨다. 나는 지금까지 썼던 장비들과 짐을 챙기고 본서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오후 4시에 퇴근하는 홍유영 반장님은 내가 알려준 레시피가 고마웠다고 하셨다. 그때 신연식 반장님이 급하게 내려오라고 하셨다. 뛰어가 보니 커다란 고구마 케이크, 빵, 음료수가 센터에 깔려있었다. 3팀 직원분들이 간식비로 송별회를 열어주셨다.

 

 눈물이 조금 났다. 지도관님은 지금까지 많은 보조 인력이 스쳐 갔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송별회 하는 거 처음이라고 하셨다. 안전센터 모두에게 도움 되는 보조 인력이었다는 칭찬을 공식적으로 해주셨다. 그동안 센터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처음에 내가 어떻게 밥을 하겠다고 용기를 냈는지 생각할수록 좋았다. 


 팀장님이 음료수랑 케이크를 이모님에게 조금 나눠주라고 접시에 덜었다. 평소처럼 들고 올라가려는데 막내 반장님이 말리셨다. “제가 할게요. 제규씨 마지막 날이잖아요.” 지도관님은 신연식 반장님에게 센터 단톡방에 나를 초대해서 인사하라고 했다. 거의 직원이었다는 농담을 하시면서. 단톡방에 초대받은 나는 케이크 먹는 사진과 함께 그동안 챙겨주셔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하고 단톡방을 나왔다. 


 송별회가 끝나고 방화장갑, 우비, 3M장갑, 방한용품들을 정리했다. 현장에 나갔을 때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방화장갑은 제일 친했던 신연식 반장님에게 드렸다. 


“야, 형 거보다 좋다. 고마워. 현장 나갈 때 니 생각할게.”


신연식 반장님은 바로 손에 끼고서는 애들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아니. 나 주지 말고 제규 반장 소방 들어오면 그때 써요.”


 항상 소방에 들어오라고 꼬시는 최태원 반장님이 우비를 받으면서 말씀하셨다. 남은 장비들은 센터 창고에 넣었다. 이제 진짜 안녕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트에서 각 팀 별 음료수와 예산 빠듯한데 자주 떨어진다는 대용량 인스턴트커피를 샀다. 마트 직원분에게도 이제 본서로 돌아간다고 인사를 드렸다. 식당 이모님은 여전히 본서에서 왜 전역 얼마 안 남은 애를 데려가냐며 화를 내셨다.


 오후 6시 10분 전, 나는 모든 분들에게 인사를 드렸다.지도관님과 팀장님은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반장님들은 꼭 친한 동네 형들처럼 꼭 소방 들어오라고, 나중에 술 한잔 사주겠다고, 휴무 날 같이 게임 돌리자고들 하셨다. 박은성 반장님은 장난스럽지만 현실적인 농담을 하셨다. 


“이제 제규 가면 누가 밥해!”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나오는데 신연식 반장님이 뛰어와서 짐을 들어주셨다. 가슴이 찡했다. 차 시동을 걸지 못하고 한참 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받았다. 본서 보조 인력 담당 반장님이셨다. 착오가 생겼다고 했다. 본서 출근은 내일이 아니라 내일모레라고. 나는 다시 센터로 돌아가서 짐을 풀었다. 작별했는데 하루 더 만난다는 사실에 모두 웃었다. 나는 평소처럼 인사드리고 퇴근했다.


“내일 뵙겠습니다.”     

   

 센터에서 하루 더 근무하고 9개월 만에 본서로 출근했다. 본서 센터장님과 직원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대기실로 갔다. 예전에 같이 작업 나가고 현장 나갔던 의무 소방, 사회복무요원들은 거의 다 전역을 해서 대부분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간단한 작업과 청소만 같이 하고 출동 벨이 울리면 소방 보조 업무를 배워야 하는 후임들이 나갔다. 나는 말년 의무 소방이랑 체력 단련실에 박혀서 운동만 했다. 간간이 119안전센터 직원분들이 본서에 공기충전을 하거나 일이 있어 들르면 차고 뒤로 달려가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전역이 3일 남았다. 기분 좋게 치킨과 피자를 돌리고 신선처럼 말년들과 대기실에 누워있었는데 행정과 주임님이 오셨다. 코로나가 심했을 때 나는 주임님과 같이 20킬로그램 정도 나가는 소독 기계를 들고 관내 모든 119안전센터를 소독했다. 그동안 수고했다며 주임님은 센터 앞 카페로 데려가서 보조 인력 모두가 먹을 커피를 사주셨다. 주임님과 커피를 기다리면서 주임님은 센터 이전 공사를 같이 한 이야기, 같이 작업을 나가서 활동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을 곱씹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들고 대기실로 갔다. 먹을 게 있으니까 후임 한 명이 나를 치켜세워줬다. 


“지금 말년이라서 그렇지, 진짜 본서에 있을 때는 에이스셨지.”


 본서에서 50일을 보내고 전역하는 날. 군복을 입고 출근했다. 동기 형과 같이 센터로 들어가서 직원분들의 축하를 받았다. 소방서장실에서 각 과장님들, 대응단장님과 같이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고생했고 사회 나가서 열심히 살라고 다독여 주셨다. 마침 월요일 간부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회의를 마친 119안전센터 전임 최기호 센터장님도 정복을 입고 내려오셨다. 정말 반갑게 인사를 드렸더니 나를 안아주셨다. 


 본서에서 전역식을 끝마치고 내가 가장 마음을 많이 주고 사랑을 많이 받았던 119안전센터로 갔다. 먼저 센터 앞 마트에 들러서 피로회복 음료수를 샀다. 군복을 입고 센터에 들어가니 모두 흠칫 보다가 얼굴을 확인하고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겨주셨다. 


“빈손으로 와도 괜찮은데!” 

“야! 니네도 군복 입냐? 잘 어울린다.”


 언제 출동 벨이 울릴지 모르는 가장 바쁜 119안전센터. 나는 오래 머물지 않고 나왔다. 본서로 발령 날 때처럼 신연식 반장님이 배웅 나오셨다. “제규야! 형이 너 많이 아꼈던 거 알지?” 반장님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뭐든 잘할 거라고 하셨다. 나는 반장님의 뒷모습을 보며 서 있었다. 모든 119안전센터 직원분들이 출동 나갔다가 무사히 돌아와서 따뜻한 음식을 드시기를, 예산이 올라서 밥도 반찬도 더 푸짐하게 드시기를 바랐다. 그렇게 나는 소방관들에게 밥을 해준 사람으로 전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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