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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Jul 14. 2022

15. ‘대기업 맛’이면 어때

육개장

    

 센터에 필요한 신발장과 서랍장을 구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설강민 반장님은 쉬는 날에 본서에서 트럭을 빌려와 고물상에 다녀왔다. 나는 반장님을 도와서 상태가 제법 좋은 물건을 내렸다. 


 신발장은 예전부터 계급, 팀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직원 명단을 팀과 계급순으로 분류해 신발장을 정리하려고 했다. 그때 설강민 반장님이 웃으면서 흡연장 좀 가자고 하셨다. 


 “제규야, 너 당근마켓 하냐?”


 센터에 있는 책상을 하나 버려야 하는데 폐기물 스티커 사면 돈 나가니까 무료나눔으로 올리자고 하셨다. 도급 예산이 있어서 밥솥을 새로 샀는데 전에 쓰던 것도 5,000원 정도에 팔고 싶어 하셨다. 나보고 당근에 글 하나 써서 올리라고 했다. 


 “아니다. 형이 할게. 너도 신발장 정리해야 하니까. 고생해라.”


 몇 분 뒤에 설강민 반장님이 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여주셨다. 당근마켓에 물건을 올린 페이지를 보여주며 “이 정도면 사람들이 보겠지?”라고 물었다. 나는 반장님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는 신발장 정리를 했다. 직원분들은 깔끔해진 신발장을 보고 “그래. 이렇게 깔끔해야 출근했을 때 기분이 좋고 시작이 좋다니까.”라고 하셨다.

       

 “제규!”


 일을 마치고 대기실로 올라가는 중인데 이모님이 불렀다. “오늘 국으로 육개장 어때?” 나는 좋다고 했다. 이모님의 육개장은 맛있다. 센터에서 항상 작은 국그릇에 떠서 먹는데 이모님이 특식으로 육개장이나 설렁탕을 준비하는 날에는 모두 대접에 가득 먹는다. 안 그래도 육개장 만드는 방법이 궁금했다. 집에서 육개장을 끓일 때면 무언가 깊은 맛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으니까.


 육개장을 배울 겸 이모님한테 갔다. 이모님은 먼저 야채와 버섯을 썰었다. 그리고는 간장, 고춧가루, 참기름, 다진 마늘로 양념장을 만들었다. 썰어놓은 재료들과 만들어 둔 양념을 버무려 국에 넣은 이모님이 냄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규! 봐봐. 양이 적겠지? 시간이 남을 땐 재료를 한 번 볶아서 넣어. 오늘은 좀 대충 해야겠어.”


 확실히 주간 직원 전체가 먹기엔 양이 너무 적었다. 이모님은 선반에서 육개장 레토르트 한 봉지를 터서 냅다 국에 부어버렸다. 육개장이 나올 때마다 직원분들과 감탄하면서 먹었는데 ‘대기업의 맛’이었다니. 내 표정을 읽은 이모님은 국의 양이 부족하거나 맛이 안 날 때는 레토르트 하나 넣으면 딱 맞다며 웃으셨다. 


 “그래도 고기양이 부족한 것 같네. 그려, 안 그려?”


 이모님은 음률을 넣어 노래 같은 혼잣말을 하셨다. 그리고는 냉동실에 얼려놓은 양지를 국에 넣었다. 육개장이 어느 정도 끓어오르자 나보고 간을 보라고 하셨다. 전에 항상 감탄하면서 먹었던, 그 육개장 맛이었다. 


 새로 산 밥솥에서 증기가 힘차게 뿜어져 나왔다. 뜸 들이고 한 입 먼저 먹어봤다. 밥맛이 진짜 달라졌다. 야들야들했다. 빨리 국에 밥 말아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님과 같이 수저를 세팅하고 식사 벨을 눌렀다. 직원들이 차례차례 올라왔다. 역시 이모님 육개장은 최고라며 다들 맛있게 드셨다. 가장 늦게 식사를 하는 이모님은 텔레비전을 보며 남은 국에 밥을 말아 드셨다.


 “잘 먹었습니다!”


 나는 인사했다. 육개장 맛의 비밀을 몰랐을 때와 똑같이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모님은 특유의 큰 소리로 대꾸하셨다.


  “왜 그러는 거여! 제규, 그래도 국 맛있었지? 이모가 또 맛있는 거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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