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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unna Feb 09. 2022

하루 15분 치유하는 글쓰기

하루 15분 치유하는 글쓰기    

 

 퇴근 후 누워만 있었다. 아무 것도 안했다. 그 상태로 계속 누워서 밤이 되고 새벽을 맞았다. 늘 피곤했고 무기력했고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왜 이러는지 따지고 싶었고 뭔가를 변명도 하고 싶었다. 힘들었던 일도 말하고 싶었고 너무 외로워서 미칠 것 같다고 살려달라고 말하고도 싶었다. 눈뜰 힘도 없어 이마에 자판이 있다고 생각하고 눈알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생각들을 차근차근 쓰면서 잠 못 드는 고문의 시간을 견뎠다. 기록되지도 않고 쓰자마자 바로 날아가 버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에 나는 마음껏 하고 싶은 말을 썼다. 그때마다 눈물이 났다. 내일 출근길에 눈이 부어서 못생겨 보이지 않게 울음을 참아야 하는데도 참을 수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매일 밤 나는 이마에 상상의 자판을 올리고 나만의 글쓰기를 했다.      


 어릴 적 나는 주사가 심한 아버지가 싫었고 미웠다.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 아버지이지만 장녀인 나를 정말 사랑해주셨다. 평소의 아버지는 나의 자랑이었지만 술을 드시고 괴물처럼 변신할 때는 말할 수 없이 두려운 존재였다. 대학생이 되어 내가 집을 떠난 후에도 우리 집은 여전했다. 어느 날, 눈물로 얼룩진 둘째 동생의 편지가 왔다. 엄마는 내가 걱정할까 봐 아무 내색 안했지만, 동생들은 내가 떠난 빈자리를 힘들어 했다. 특히 막내가 걱정이었다. 막내 남동생은 아버지가 술에 취해 퇴근하시면 무서워 몸을 벌벌 떨었다. 급한 맘에 평소 무서워하던 다락방으로 피신하고는 문을 제대로 닫지도 못한 채 조금 열린 틈새로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어두운 다락방의 공포가 더 무서운지 괴물 아버지의 공포가 더 무서운지 갈등하는 눈빛이란!


 그나마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시던 어머니가 중심을 잃지 않고 우리를 애지중지 아껴주신 덕분에 우리 4남매는 평범하게 성장했다. 더 단단히 뭉치고 서로를 의지했다. 시간이 지나 아버지도 나이 들어 약해지신 탓인지, 건강을 생각해서인지 술을 끊었고 그 찬란했던 주사도 막을 내렸다. 하지만 나는 이미 상처를 받을 대로 받아 자존감이 바닥을 쳤고 남모르는 깊은 우울증과 싸워야 했다.     


 장녀로 태어나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았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부모님과 집안을 먼저 생각했다. 고등학교 선택도 내 맘대로 못했고, 대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워낙에 감성적이고 여리게 태어났지만 내 감정이 뻗을 자리조차 없었다. 감정 표현 능력시험이 있다면 아마 과락을 면치 못할 것이다.

 감정을 숨기면 면역 체계와 호르몬 분비에 이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몇 해 전 서울시에서 발표한 <서울 100세인 연구>에 따르면 90세 이상 88명 중 남성 72%, 여성 51.6%가 “평소에 감정 표현을 잘한다.”라고 답한 바 있다. 즉, 감정표현은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감정 표현 능력이 좋을수록 소화도 잘 되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고 한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들은 이유 없이 두통이나 근육통, 소화불량 같은 문제가 생기는 신체 증상이 심해진다고 한다. 그러니 면역력이 떨어지고 매일 아프고 피곤할 수밖에….


 이제 나는 내 감정 표현의 안식처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글쓰기다. 영국의 극작가 세익스피어는 이런 말을 했다. “그대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 보아라. 가서 문을 두드리고 마음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물어보라.”라고 말이다. 매일 밤, 불면의 고통 속에서도 나는 내 감정들이 자유롭게 거닐 수 있게 글쓰기라는 자리를 제공했다. 내 속에 있는 무거운 것들을 한바탕 글에 쏟아 부어버리면 조금 편히 잠들 수 있었다. 그렇게 매일 밤 의식처럼 이마에 상상의 자판을 깔았다. 가끔은 쓰는 도중에 스르르 잠들어 푹 잘 수 있었다. 몸은 매번 무거웠지만 그나마 잠을 자니 삶이 한결 좋아졌다.   

   

 하루 15분, 글을 쓰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뜻하지 않은 선물도 받게[ 되었다. 글쓰기는 나를 힘들게 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키울 작은 텃밭을 분양해 주었다. 아버지에 대한 따뜻한 마음의 싹이 자라는 텃밭이다. 그 텃밭에 용서와 이해라는 물을 주면서 파릇파릇 윤기 나는 싹이 두 팔 벌려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예쁜 싹을 보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부드러운 마음은 또 다른 선물을 안겨다 주었다. 작고 예쁜 나비들이 놀러와 주었다. 나비들은 무서움과 엄격함에 가려졌지만 가족을 사랑했던 진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나 스스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외면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라 했다. 아버지도 말할 수 없이 외로웠고 상처를 받지 않았는지 생각해보라 했다. 잘 되지 않는 바깥일에 지쳐도 가족을 위해 묵묵히 참아 냈는지도 모른다. 작은 위로라도 원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상처가 있고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내 감정이 편히 발 뻗을 수 있게 그저 쓴다는 것, 그거 하나면 된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된다. 하나 더, 진실한 나만 있으면 된다. 글쓰기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예전에 내가 알던 세상과 180도 달라진다.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는 일이 얼마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지도 알게 된다. 하루 15분 치유의 글쓰기를 통해 삶이 주는 고통을 치유하고 사랑을 재확인하며 새로 맞은 삶의 기쁨을 온전히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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