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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unna Mar 09. 2022

뺑소니를 당하려고...

뺑소니를 당하려고...     


“밥 줘~”

내 차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안 나오는 대신 공복도 빨리 온다. 슬쩍 계기판을 보니 며칠 전에 만땅으로 넣은 기억이 있는데 그러기나 말기나 이미 소화가 다 됐단다. 출근길에 잠깐 주유소를 들러 밑 빠진 독에 기름 부어야겠다. 빨간 불이 들어오기 전에 배를 채워줘야 신경질을 안 낸다. 신호등이 노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뀌자 따라 하듯 계기판도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주 가는 주유소에 도착 후 주유구 뚜껑을 열려고 하니 열리지 않는다. 계속 버튼을 눌러도 열리지 않는다. 이상하다. 딸깍딸깍 소리만 난다. 주유소 직원이 다가오자 다급해진 나는 소리쳤다.

“저, 주유구 뚜껑이 열리지 않아요. ”     


 차량 밖으로 얼굴을 내민 체 말을 하니 주유소 사모님이 이리저리 만져본다. 눌러도 보고 탁탁 쳐보기도 한다. 차 안에서 나도 계속 주유구 버튼을 연신 눌러대며 합을 맞춰보려 했다. 주유소 사모님은 안 되겠던지 사장인 남편을 부르러 사무실로 들어갔다. 경험이 많아 보이는 사장님이 나오셨다. 살짝 기대해보았다. 그분도 똑같이 주유구 문을 열려고 애를 쓰셨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열리지 않자 내 차 트렁크를 열어달라고 하셨다. 트렁크 뚜껑이 하마처럼 크게 입을 벌리자 왼쪽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주유소 그림이 있었다. 비상시에 뜯을 수 있게 만든 네모의 라인은 살짝 틈이 난 경계가 있었다. 나는 그 존재를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매끄러운 벽체와 일체화가 된 그것을 그분은 가위로 틈이 난 곳을 뚝뚝 벌리더니 마개를 열 듯 확 열어 재꼈다. 그 안엔 뭔가 잡아당기는 것이 달려있었다. 사장님은 그것을 열심히 잡다 당겼다. 딸각딸각 소리가 난다. 그런데도 주유구 입구는 열리지 않았다. 배가 고파 꼬르륵 되면서도 차는 왜 입을 벌려주지 못하는 것일까? 무슨 고민이 있을까? 의문이 생겼으나 출근 시간의 압박도 다가왔다. 사장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카 센터 가보세요. 요 앞에 있어요.”     

가까운 곳에 기아 오토스가 있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출근길이라 이따 퇴근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유구가 왜 안 열리지? 이상해. 진짜’     


 답답한 마음에 남편에게 전화했더니 긴급출동 서비스도 있으니 이용해 보라고 한다. 까맣게 잊고 일을 하다가 퇴근 시간이 훨씬 넘어서야 불현듯 남편의 말이 떠올라서 긴급출동 서비스에 전화했다. 전화하니 5분이면 도착한단다. 00화재 직원도 주유소 사장님과 똑같이 행동했다. 손톱에 까만 물이 든 손으로 열심히 살피신다. 주유구에만 집중됐던 시선을 잠깐 돌리자 주유구 아래쪽에 선명한 스크래치가 여러 개 나 있었다. 깜짝 놀라 눈을 부릅뜨고 보니 누군가 내 차를 긁어 놓았다. 강한 힘으로 주유구가 납작하게 눌러 찌그러지게 된 것이다. 마찰 흔적들을 보니 아파도 말 못 하고 혼자 끙끙댄 우리 강아지 쭈쭈가 생각났다. 뭔가 미안한 맘이 불쑥 올라왔다.      


“제가 주유구 뚜껑을 강제로 열면 도색이 벗겨질 수 있어요. 카센터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며 보험회사 직원이 권유한다. 보험회사 직원이 오면 해결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카센터행이다. 장거리 출퇴근을 하려면 오늘 밥을 먹여야 한다. 시간을 보니 카센터가 곧 문을 닫을 것 같다. 검색을 해보니 가까운 거리에 정비소가 있었다. 영업이 끝나기 전에 얼른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정비소에서도 똑같이 트렁크를 열고 이것저것 해보더니 결국 강제로 주유구 뚜껑을 따야겠다고 한다. 단, 플라스틱이라 깨질 수 있으니 감안하란다. 뚜껑이 깨지면 교체비용은 7만 원 정도, 안에 딸각거리며 입구를 열어주는 장치가 고장 나면 14만 원 선이란다. 가격 차이는 2배다. 어쨌든 기름은 넣어야 하니 뚜껑은 열어야 한다. 정비소 직원이 주유구 뚜껑을 열기 전 주변에 생채기가 나지 않게 스카치테이프로 주변을 붙였다. 그걸 바라보면서 주유구 뚜껑이 빠지직 깨지는 상상을 했다. 각오하고 눈을 찔끔 감았는데 3초 만에 뚜껑이 깨지지 않고 열렸다. 정비소 직원이 딸깍 되게 하는 그 장치가 부러져있음을 보여주었다. 아뿔싸, 비싼 거로 당첨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뺑소니를 당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첫째, 블랙박스가 고장이 났었다. 새로 사야 하는데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게다가 운행 중 블랙박스가 갑자기 뚝 떨어진 일이 있었다. 귀찮아서 그 상태로 운행했었다. 둘째, 매일 출퇴근하기 바빠 차를 자세히 살피지 못했다. 새벽같이 출근하고 퇴근하면 주차하고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예전에는 가끔 차 주변을 살펴보기도 했는데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소홀하게 되었다. 셋째, 하필 처음으로 만땅을 넣어서 주유 기간 텀이 길어진 사실이다. 텀이 길어진 사이에 뺑소니를 당했다. 만약 예전처럼 기름을 넣었다면 최소 일주일 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블랙박스가 고장이 났어도 주차장 내 CCTV라도 찾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한 달이 지났다.      


 내 차를 치고 그냥 가버린 사람은 운이 억수로 좋다. 블랙박스 없는 차라 안심이 되었을 것이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아무 일이 없다. 만땅 기름이 시간을 벌어주었다. 게다가 차 주인은 그 사실을 인식조차 못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비소에는 당장 부품도 없고 2시간 이상 수리가 소요되니 차를 맡겨야 한다고 한다. 시간을 잡아 다시 와야 했다. 일단 임시방편으로 주유구 뚜껑은 스카치테이프로 막아놓았다. 바로 주유소로 가서 기름을 넣었는데 사정을 잘아는 주유소 사장님은 얼떨떨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테이프 가장자리를 꾹꾹 문질러 떨어지지 않게 잘 비벼주셨다.      


 ‘전조’라는 것이 있다. 어떤 일이 생기기 전, 그 일을 예견하듯이 앞서 벌어지는 일, 또는 기미를 말한다. 징조라든가 조짐 등과 사실상 뜻이 같다. 일이 일어나기 전 작은 신호를 보낼 때 그 전조현상을 무시하면 안 된다. 1931년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가 펴낸 <산업재해 예방>이란 책에서 하인리히 법칙을 소개했다. 하인리히 법칙이란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법칙을 말한다. 큰 사고 전에는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으며, 징후를 무시하고 방치하면 대형사고가 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1997년 외환위기, 지진이 오기 전의 전조현상, 뇌졸중이 오기 전의 전조증상, 범죄를 당하기 전의 직감, 각종 이별, 건물 붕괴 등 무수히 많은 예가 있다.  블랙박스가 고장이 났는데도 무심하니까 갑자기 뚝 떨어뜨려서까지 알리려 했다. 그럼에도 난 그 전조현상을 무시했다. 눈치 없는 나는 기름까지 가득 넣어버렸다. 인생은 수많은 신호를 보내지만 꼭 당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세상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를 조금만 귀 기울여주고 관심을 가져주면 뒤에 올 큰일을 막을 수 있다. 너무나 가벼워서 그 신호는 금방 날아 가버리기에 일부러 붙잡지 않으면 안 된다.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말이다. 바로 다음날, 퇴근하려고 주차장에 가보니 트렁크가 활짝 열려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열려있었을까? 난 오픈 한 적이 없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것은 무슨 전조현상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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