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라는 무기>
1. 외로움 마킹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길을 걷다 말고 두 팔을 벌려 바람을 안아본다. 살며시 눈도 감아보고 콧구멍으로 바람이 내어주는 냄새도 맡는다.
거리에는 많은 사람이 걸어 다닌다. “저 사람들을 몰라도 되는 자유”를 만끽한다. 내가 뭔 짓을 하든 관심을 가지지 않을 사람들이 반갑다. 혼자 “숭그리 당당 숭당당” 추억의 개그맨처럼 다리를 굽힌 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해봐도 좀비처럼 지나간다.
사람들은 ‘마음껏 누리세요~ ’라고 고개 숙여 폰에 집중해준다. 우리에겐 서로의 자유를 누릴 따뜻한 익명성이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나의 외로움의 손때가 탄 곳이다. 나는 수컷 강아지처럼 이곳저곳 나의 외로움을 마킹하고 다닌다. 외로움의 필터를 끼면 세상이 더 디테일해진다. 작고 소중한 것들이 보인다.
벤치 위에 쉬고 있는 꼬마 햇살, 아이들의 이마에 송송이 땀과 얽힌 잔털, 거칠거칠하지만 촉촉하고 여린 벚나무 목대, 향기 부채질을 하던 길가의 조팝나무, 거친 담벼락 속에 끼어있던 과자 쓰레기, 응큼하게 사부작사부작 뻗어 나가고 있던 사거리 담벼락의 담쟁이 넝쿨, 1층 아파트 설비실에 숨어 살던 언제나 놀란 얼굴의 길고양이 가족, 아무도 정거하지 않는 우리 집 앞 정거장. 바람이 이끄는 대로 말없이 흘러가는 줏대 없는 구름, 유리창마다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하늘, 내 엉덩이로 기 좀 눌러준 도서관의 원목 의자, 언제나 뜨뜻하게 데워져 있는 라이언 공원의 2번 벤치...
외로워야 보이고 외로워야 가능한 것들, 오히려 그 속에서 나는 나만의 자유를 찾는다. 나의 외로움에 또 다른 외로움으로 화답해주는 것들에게 나는 마킹한다. 내 외로움이 나의 외로움을 위로받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