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욕의 힘>
1. 감정의 데스노트
내가 아는 어떤 작가님이 말하길 자기는 욕을 적는 공책이 있다고 했다. 일명 “욕받이 공책”이다. 본인을 빡치게 하는 사람들을 마음껏 욕하는 공책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동물들의 새끼들을 소환하는 욕이었다면 지금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창의적인 표현으로 욕을 창조한다고 한다. 나만 보는 공책이기에 마음껏 적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페이지를 찢어 불을 태우든, 갈기갈기 찢어 버리든 없애 버린다고 한다.
내성적인 성격에다가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의 작가님은 그렇게 욕받이 공책을 비밀스럽게 쓰면서 자신에게 못되게 대하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저주했다고 한다. 앞으로도 계속 볼 사이라면 더더욱 욕받이 공책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게 산산이 찢긴 욕받이 공책의 주인공을 만나면 오히려 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잘해주게도 된다고 했다.
욕받이 공책은 단순히 욕을 적는 공책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쩌면, 사납게 피어오르는 부정적인 감정을 죽이는 내 “감정의 데스노트”가 아닐까 싶었다. "데스노트"란 일본 만화책 제목인데 데스노트에다가 죽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적으면 해당되는 사람이 진짜 죽는 노트이다.
나도 욕받이 공책은 아니지만 욕하고 싶고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는 글로 적어보곤 했었다. 타인이 미워서 적는 글이 결국 나를 미워하고 저주하는 방향으로 급전환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뭔가 몰입해서 한 자 한 자 적어가면 묘하게 힐링이 되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부정의 감정들을 쓰기 필터에 통과시키면 나쁜 감정만 쏙 걸러내서 정화된 내 모습이 흘러나온다.
내 부정 감정의 데스노트를 써보자. 데스노트를 쓰면 크게 3가지 덕을 보게 된다.
첫째, 쓰기 필터에 걸린 나의 적나라한 나쁜 감정들을 선명하게 보게 된다. 내 감정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긴다.
둘째, 입이 아닌 손으로 쓰는 욕은 오히려 시선을 나로 향하게 한다. 즉, 나를 돌아보게 한다.
셋째, 창의적인 욕은 상상력과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킨다. 단순한 욕은 이제 재미가 없다.
나의 부정 감정을 적어서 없앨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적나라하게 쓸 수 있다. 욕과 나의 감정들이 서로 뒤섞여 아수라장이 된다 한들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말하게 되는 욕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쓰고 사라져 버리는 욕은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상대를 미워하는 것 같지만 어쩌면 그 상대를 미워하는 나의 감정을 미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화가 나거나 돌아버릴 것 같으면 시발 비용을 쓰거나 물건을 깨부수지 말고 세상 가성비 좋은 종이와 연필에 나의 모든 감정을 데스노트에 적고 그대로 아작 내버리면 된다. 진한 어둠 속에서 백석 시인이 자신의 감정을 적은 종이를 불에다 태웠던 것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잡아다가 데스노트에 적어놓고 그대로 사멸시킬 수 있는 나는 감정의 주체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