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도 쿠폰북이 필요해

by nanunna

지갑을 열었다. 서로 다른 커피숍의 커피 쿠폰이 한두 개의 도장만 찍힌 채 지갑 속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언젠간 가겠지? 하며 모서리 귀퉁이가 다 닿도록 이게 뭐라고 참 귀중하게 지갑 속에 가지고 다녔다. 어딘지 위치도 모른 그 커피숍에 말이다.


하지만 병원쿠폰북이 있다면 빨리 채울 자신이 있을 텐데 말이다. 이미 이비인후과는 VIP다. 용하다는 한의원부터 내과, 정형외과, 산부인과, 피부과, 안과, 가정의학과, 치과, 신경정신과까지 두루두루 섭렵 중이다. 나는 병원계의 다이소다.


한의원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틈에서 신체 나이 맞먹는다고 버르장머리 없이 끼고 싶지 않았다. 먹어도 먹어도 맹물 같은 한약들, 고슴도치처럼 침을 박아봐도 늘 어제의 나같은 변화 없는 몸뚱어리는 주관을 잃은 지 오래다. 의사가 까라면 까야 한다. 의사는 다음 예약으로 선수를 쳐버린다.

밥만 먹으면 가끔 면도 먹어야 한다. 병원이 지겨워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스포츠 마사지를 예약했다. 건장한 아저씨가 나를 맞이한다. 제법 힘이 세 보였다. 그러나 흡사 볼에 분첩 두드리듯 한다. 매일 밤 몽둥이 요정에게 다구리를 맞아서 그런지 맷집이 세졌나 강도가 약하게 느껴진다.

“더 세게 해주세요.”


“아플 텐데요...아이 참, 지금도 세게 하는 편인데....”

전투적으로 변한 마사지사는 한번 해보자 한다. 갑자기 뼈와 근육을 발골하듯 뜯어댄다. 독수리가 살아있는 먹이를 파먹을 때 이런 느낌일까? 마사지사가 조류 대가리 같은 손 모양으로 아무리 뚜드려패고 압박을 해도 나는 신선처럼 허허허허 웃음이 나온다. 마치 학대를 즐기는 또라이같다.


오늘도 나는 병원 쿠폰북을 찍었다. 쿠폰을 다 찍으면 상을 줘야 한다. 나는 10개를 다 찍으면 무슨 상을 줄까?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까? 예쁜 옷을 살까? 멋진 네일을 할까? 만화가게에 가서 실컷 만화책을 볼까? 병원도 쿠폰 10개를 다 찍으면 1번은 공짜로 진료해주어야 함을 강력히 주장한다.


이랬던 내가 이제는 병원 발길을 끊은 지 7년이 다 되어 간다. 강제로 하라는 정기 점검 외에는 가지 않는다. 실손이 아까워도 어쩔 수 없다. 어떻게 나는 이렇게 바뀔 수 있었을까? 분명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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