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포진으로 입원을 했다. 병원 밥은 정시에 딱딱 배달되었고, 약도 식후에 빠짐없이 먹었다. 통증을 줄여주는 약 덕분인지 약을 먹자마자 나락으로 빠졌고 일어나면 한껏 부은 얼굴이 허공을 초점 없이 바라보았다. 병원에 입원함으로써 비로소 쉼을 선물 받았다. 그러나 머릿속은 복잡해졌고 퇴원 후에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약 때문인지 생각도 이내 느슨해졌고 잠을 자느라 생각의 흐름은 계속 깨졌다.
난 피곤하다고 생각한 적은 많긴 했지만 좋은 음식도 가끔 먹었고, 한약도 먹었고, 운동도 했다. 잠도 충분하게 잤다고 생각했다. 그 무엇보다도 나는 나 자신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타입이며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말하는 면역 관련 질환은 거의 다 앓고 있다. 왜 내 몸은 자꾸 아프다 할까? 사실은 내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마치 살얼음 같은 내 마음, 쉽게 깨지고 쉽게 녹아 버린다. 평범하게 사는 듯하지만 나는 늘 소외당하고 외면받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족쇄 같은 인생, 어리석은 선택들의 나날, 발버둥 쳐봐야 달라지지 않는 팔자, 똥수저를 물고 태어나 보고 들은 것을 삭제하는 것이 나은 삶, 감히 건드려볼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저세상의 것들, 세상은 은근하게 나를 따돌리는 것 같았다.
갑자기 턱이 벌어지지 않고 통증이 심했다. 구강내과를 방문했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의사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냐고 말했다. 마음의 병은 자는 동안에도 어금니를 꽉 깨물게 했다. 결막에 낭종이 생겼다. 안과를 갔다. 의사는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 했다. 나는 내 마음이 아파서 그런 거라고 속으로 대답했다. 이석증 때문에 이비인후과를 갔다. 의사는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마음이 아파요.’라고. 벼 이삭을 다 추수해 휑한 논바닥 같은 머리카락도 마음이 아파서다.
마음이 아파서 기대고 싶었다. 관심받고 싶었다. 아프다고 하면서도 쉬지 않고 일하고, 아프다고 하면서도 밥을 먹고 일상생활을 하는 양치기 소년 같은 내 모습은 이제 아무리 아프다고 말해도 그러려니 또 외면받기 딱 좋다. 현실은 아프다고 막 쉴 수 없고, 내 앞으로 무수히 많은 잔업이 레드카펫처럼 펼쳐 놓고 대기 중이다. 꾸역꾸역 해내고 또 그러면서 마음의 병이 깊어진다.
내 마음은 입원이 필요하다. 삼시 세끼 주는 밥 꼭꼭 씹어 먹고 나에 대해서도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않게 먹으면 나락으로 빠지는 약도 먹고 싶다. 마음이 나으면 괜찮아질 것들은 퇴원 선물이다. 오지랖 넓은 햇살 한 조각이 빠끔히 나를 가끔 내다보는 창가 옆 침대에서 민낯이 어울리는 슴펑슴펑한 고무줄 환자복에 나를 넣어두고 병실에 걸린 티비 드라마를 보다가 스르르 잠을 자고 싶다. 다행인지 꿈속에서는 나는 사랑받고 행복한 사람으로 나온다. 억지로 헤어져하는 연인처럼 아쉽게 잠에서 깨기도 했다. 더 많이 사랑받을 수 있게, 더 많이 행복할 수 있게 충분히 잠을 자자. 마음의 한기를 녹아내리게 충분히 햇볕도 쬐고 세상을 매직아이 보듯 멍 때리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