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독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옷 입히기 게임이나 책에 나오는 일러스트를 보고 이것저것 따라 그렸던 기억이 얼핏 난다.
초등학교 미술시간에는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주변 친구들이 항상 우르르 몰려들었다. 자기 종합장에도 그려달라며 하나둘씩 내미는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해서, 같은 그림을 여러 번 똑같이 그리곤 했다.
중학교 때는 만화책을 가져와서 원하는 캐릭터나 장면을 똑같이 그려달라고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쉬는 시간 10분도 부족해서 수업시간에 나는 선생님 몰래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부탁한 친구는 옆자리에 앉아 대신 필기를 해주었던 적도 있었다.
고등학생 때도 웃기지만 항상 미술 과목만큼은 성적이 좋았다. 친구들이 종종 '잘 그린다! 나도 그려줘'와 같은 말을 해주면 내심 뿌듯했으나, 10대의 나는 그림을 잘 그린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미술학원을 오랫동안 다닌 친구들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와는 너무 차이가 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 한계를 인정하게 됐고, 미대를 가고 싶다거나 디자인 쪽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 또한 하지 않았다. 인체비율, 투시, 명암 이런 것도 전혀 모른 채 단지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로 진로를 선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전혀 관련 없는 학과에 진학했지만, 가끔씩 심심할 땐 그림을 그렸다. 특히 인터넷에서 잘 그렸다고 생각되는 그림을 보면 비슷하게 따라 그리곤 했는데, 이상하게 다른 일과 달리 그림만 그리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그림 그리는 영상도 이따금씩 보면서 평범한 대학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이모티콘을 만들어 팔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주는 콘텐츠를 보게 되었다.
그림을 엄청 잘 그릴 필요도 없고 무료 어플로 이모티콘을 만들어 제안하면 승인 후 판매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태블릿이 있어서, 나는 바로 무료 어플을 깔고 간단히 이모티콘을 제작했다.
운이 좋았던 건지 며칠 기다리자 승인이 되었고, 개당 몇 천원일뿐이지만 판매 건수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뒤늦게 내 이모티콘이 팔린다는 소식을 알고 나서는, 너무 신기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사이트를 들어가 확인을 했다.
사실 오래 공을 들여 이모티콘을 그렸는데, 결과적으로는 미승인이 되었다는 메일을 받으면 허무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생각해 지금도 한 달에 한 두 개는 꼭 이모티콘 제안을 하고 있다. 워낙 미승인된 적이 많아서 이제는 거절 메일을 받아도 크게 실망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매주 24개, 32개의 아이디어를 하나하나 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미승인 메일을 받고 나서 왜 안 됐을까 고민해 보고, 현재 판매되는 이모티콘들을 분석해서 새로 그리다 보면 내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앞으로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 계속 도전하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