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 Aug 20. 2022

인생이 하나의 게임이라면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여기 하나의 게임이 있다.

갓난아기부터 노년이 되어 죽는 날까지, 한 캐릭터의 일생을 플레이어가 선택하는 이 게임은 우리들의 모습과 어쩐지 많이 닮아 있다.


캐릭터가 유치원 때 곁에 있는 부모님 아이콘을 클릭하면 추억을 많이 간직한 아이가 되지만 그만큼 집안 사정은 어려워지고, 초등학생이 되면 축구공을 선택하냐 스케치북을 선택하느냐 등에 따라서 캐릭터가 좋아하는 것이 바뀐다.

고등학생 때는 친구들 무리를 잘못 클릭하면 불량한 생활을 하는 청소년이 되지만,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잘 지낸다면 독립적인 성격의 캐릭터가 된다.

이와 같이 수없이 지나가는 선택이 난무한 게임 속 숨어있는 돈을 찾다 보면 캐릭터가 모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집과 차의 가격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렇게 집까지 산 후 결혼할 배우자까지 찾고 나면 그때부터는 훨씬 빠른 속도로 게임이 진행되는데, 사계절을 반복한 캐릭터가 결국 하얗게 센 머리로 관 속에 눕기까지 해야 비로소 끝이 난다.


이상하게 여운이 많이 남는다,라고 생각했다. 묘하게 현실적인 느낌이라 그런가. 나는 몇 번을 도전하여 선택을 요리조리 바꿔가면서 여러 가지 엔딩을 보았지만, 언제나 끝은 죽음이기에 조금 허무하기도 했다.


사실 전부터 이런 생각을 많이 하긴 했다.

위와 같은 게임처럼 화면 밖의 누군가가 지금의 나에게 선택지를 여러 개 주고, 결국은 어떤 것이 옳고 어느 길로 가면 되는지 알려주면 좋겠다고.


때로는 내 순간의 판단이 인생 전체를 뒤흔들거나 바꿔놓기도 한다. 물론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해피엔딩과 배드 엔딩을 보려면 특정 루트를 타야만 하는 등 까다로운 요건이 필요한 게임도 있다. 차라리 내 인생도 여러 가지 엔딩이 있어서 누군가 딱 정해준 길로만 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은데.


물론 인생이 하나의 게임이라면 나는 좋겠지만, 어딘가에는 누군가가 정해주는 길 대신 자기가 길을 개척하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취향을 직접 발견하며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생각해보니 어릴 때 부모님이 이게 좋아? 저게 좋아?라고 물어보았던 사소한 질문조차도,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결국은 그 질문에 내가 했던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슬픔을 나누면 슬픈 사람이 둘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