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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쌤아이언 Apr 14. 2022

#아홉번째 편지. 학습이라는 단어의 어원

: 고독의 시간을 보냈을  '습習 '의 시간

영어라는 '언어'를 교육하는 강사로서 어떤 낱말은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하!', 하는 지혜를 줍니다. 

'이게 이런 뜻을 갖고 있는 단어였구나', 라고 무릎을 치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지요. 

'blessing in disguise' 라는 관용어구가 그렇습니다. 풀이를 하자면 [변장속의 축복] 이라는 뜻인데, 이해가 바로 되지는 않지만 한번 알게 되면 할아버지때까지 기억날 단어죠. 


축복이 변장속에 있다는 말은, 그것이 처음에는 축복인 줄 모른채 가리워져 있다가 훗날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톨릭대학교 이창봉 교수의 <미국이라는 나라 영어에 대하여> 책에 보면 이 단어를 저자가 미국 유학시절에 겪었던 일화를 통해 설명합니다. 한 미식축구 선수가 경기중에 큰 충돌을 당해서 뇌진탕을 겪습니다. 병원으로 후송돼 뇌의 사진을 찍었지요. 그런데 그 때, 뇌에 작은 종양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고 합니다. 경기의 충돌이 없었다면 과연 그의 뇌종양은 발견될 수 있었을까요. 훗날 뇌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시합에도 돌아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럴 때 쓰는 말이 바로 'blessing in disguise' 입니다. 우리말로는 '전화위복' 이라고 풀이할 수 있고요. 


국어에도 무릎을 치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철쌤에게는 '위기危機' 라는 단어가 그렇습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위험한 고비나 시기]라고 정의 되지만, '기機'는 '기회機會'에서 쓰이는 그 '기機'자와 동일합니다. 따라서 철쌤은 이 위기이라는 단어를 분리하면 '위험과 기회' 가 된다고 생각해요. 즉, '위태로운 상황'을 잘 극복하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공부하는 법을 잘 모르는 학생에게, 함께 공부하는 선배로서 그들에게 말하고 싶은 '아하!' 단어는 바로 '학습'입니다. 학습이란 단어는 한자로 쓰면 '학습學習'이 됩니다.'학學'의 의미는 '수업', 혹은 '강의'에 해당되며 '배우다'라는 뜻이죠. 학생은 '학學'을 마치고, '습習'의 단계를 홀로 통과해야 하는데, '습習'은 '익힌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학學 '은 강사의 강의를 들으며 그와 함께 하는 것이지만, '습習'은 철저히 혼자가 되어 익히는 부분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엄마새가 새끼에게 비행하는 법을 알려줄 때, "얘야, 하늘의 기류를 이용해서 날개를 이렇게 수평으로 펼쳐서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이용하렴, 날개 각도는 이렇게 구부리고...." 하고 가르치고 있다면 그것은 '학學'에 해당되는 것이겠지요. 

어미새의 말을 머리속에 새긴 후에는, 이제는 몸에 새기기 위해 많은 시간을 훈련하는 것이 '습'이 됩니다. '습習'이라는 한자의 윗부분이 '날개 '를 상징하는 상형자 '날개 우羽'가 이용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만큼 수많은 날개짓을 해야 드디어 익힐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pixbay fledgling bud 


주목할 점은 실력이 향상되는 부분은 '학學' 이 아니라, 바로 '습習'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모의고사가 끝난 후, 점수를 확인해보면 어떤 경우는 본인보다 못했던 친구가 더 좋은 점수를 얻고 나를 앞서기 시작합니다. 분명 나보다 더 열심히 하지도 않아 보였던 친구가 그러면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화가 나고 질투하기 전에 그 이유를 살펴봐야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 원인은 '습習 '에 있을 겁니다.


'학學 '이라는 부분은 나와 옆의 학생 그리고 반 전체의 학생과 동시에 이루어 진 것이라 차이점이 없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 배움의 날개짓을 펼치면서 고독의 시간을 보냈을  '습習 '의 시간에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이 '습習'의 시간은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고요하기도 하죠. 이 정적을 견디고, 즐기고,그리고 활용해야 하는 것이 수험생활 인 것입니다. 따라서 어느 순간 나를 앞서가기 시작하는 친구는 이 고독의 시간을 잘 견디어 냈을겁니다. 


패거리의 친구와 담소를 즐기거나 담배연기를 공유하는 것은 사실 이 고독의 시간을 피하고자 하는 행위 일 뿐입니다. 친구의 역전은 위기상황일 수 있겠지만, 이 위험을 넘기고 자신도 학습태도를 뒤돌아 볼 반성의 기회로 삼는다면, 오늘의 충격은 blessing in disguise 가 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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