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퇴사 후 이틀 만에 제주에 훌쩍 내려왔다. 여기서는 누구도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여기선 내 존재를 설명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묻는 사람도 거의 없다. 듣는 질문이라고는 ‘도민이세요?’가 전부다.
제주에서 지내면 지낼수록 나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직업도 달라졌다. 내 행동도 달라진다. 엄격한 관리자, ISTJ인 내가 음식점에서 계산도 안 하고 집에 와버리는 날도 있었다. 물론 깜빡해서 그랬다. 판교에선 절대 없을 일인데 참 수상하다. 점점 경계가 사라지는 나의 모습이, 그 어떤 걸로도 설명할 수 없어서 약간 불안하기도 하고 편안하기도 했다. 그 적당한 긴장이 나쁘지 않았다.
어느 늦은 밤, 노형동의 한 몰트바에 갔다. 누가 내게 무얼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여러 가지 답이 떠올랐다.
'퇴사하고 제주도 내려온 백수'
'함께 온 사람의 지인'
'전직 인사담당자'
나를 설명하는 말이 고작 이건가 싶어서 머릿속이 댕댕거렸다. 나는 누구인가, 뭘 하는 사람인가라는 물음에 그 어떤 것도 적절한 대답이 되지 못해 답답했다.
마치 무색무취의 인간으로 취급된 것 같았다. 그런데 나도 색이 있고 향이 있다고 알리고 싶었다. 타인에게 기억되고 싶었다. 내 존재를 인지시키고 싶었다. 짧은 명사로 설명되지 못하는 존재가 약간 창피하고 당황스러웠다. 벌거벗은 느낌도 들었다.
그런 나머지, 모든 순간 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발버둥 쳐야 겨우 이 세상에 내가 살아있다고 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 한마디, 제스처, 행동, 취향, 감탄사에 나를 알아달라는 욕심이 실렸다. 수고스럽고 애처로웠다.
사실, 그때는 어리석게도 내가 짓는 표정, 하는 말, 행동과 생각이 전부인 그 순간을 산다고 믿었다. 나 스스로가 가장 투명해지는 것 같다고 믿었다. 그런데 내 모습은 자꾸 삐걱댔다.
지금의 나는
자기 중요감이 많이 결핍되어 있구나
자기 중요감 :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감정
나는 스스로 존재하기에는 너무 물렁거렸다. 강건하지못했다.
그리고 깨닫게 된 것 하나 더.
지금껏 직업의 뒤에 숨는 것이 그저 편했구나
나의 모든 행동을 그 직업의 프레임에 대충 뭉뚱그려 넣고 설명되게끔 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중요한 건 명사형으로 설명되는 나 자신이 아니라 자기 중요감이다.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어떤 직업을 가지지 않아도 스스로를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는가, 무엇으로 중요감을 채울 것인가가 중헌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나의 중요감을 채워줄 타인도 없었고, 나 스스로를 어디에서부터 세워가야 할지 몰라서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그 중요감에 대한 생각을 매듭 지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둥둥 떠다니면 어때. 그 어떤 걸로도 정의할 수 없는 시간을 살면 어때.
하지만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때 나 스스로를 중요하게 여겨주는 연습을 했어야되는게 맞았다.
퇴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더 잘 보였다.
어느 날 탑동~제주시청 부근을 홀로 산책하다가 이런 문구를 봤다.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어떤 직업을 가졌든,
직업이 있든 없든,
나를 설명할 말이 있든 없든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꽃은 그냥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