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무도 안 나왔다!

-18년 차 유대리는 안 친한 직장동료들과 어떻게 아침 러닝크루가 되었을

by 무릉도원

혼자서 뛰어도 되지 않아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이불 안에서 꼼지락 거리다 보면 어느새 출근시간이다. 허둥지둥 출근 준비하고 나가기 바쁘다. 혼자서 뛰겠 다는 나와의 약속은 작심삼일. 그런데 모임 약속이 되니까 책임감의 무게가 다르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눈이 번쩍 떠진다. 맞다. 나는 책임감이 강하다. 본인이 책임감이 강한 편이라 생각한다면 안 친한 사람들과의 운동 약속을 추천한다. 특히 직장 내 인간관계는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2배가 된다.

셋이라는 숫자가 소담 하여 마음에 들었지만 한 명만 빠져도 힘을 잃을 것 같은 위태함이 있었다. 네 명이면 좋겠다고 생각해 직장 내에 홍보를 하고 자랑을 해도 인원이 추가되지 않는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아침에 분주함이 걱정되는지 다들 관심만 보이고 만다. 소문나면 너무 많이 모일까 봐 조심시켰는데 괜한 걱정을 했다.

'은'의 국제 시합이 드디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은'은 수요일 러닝에 함께하지 못한다고 메시지가 왔다. 여자 럭비 팀으로 유력한 우승 후보인 네팔 팀이 자진 포기하였고, 사우디 오만에 가서 이란과 1차 게임을 하고 2차 게임은 요르단, 3차는 레바논이랑 붙는다고 했다. 한국 시간과 시차가 5~6시간 정도 난다고 하니, 유튜브로 볼 수 있으면 보면서 응원해주고 싶다. 시합 결과에 따라 3위에 오를 수도 결승전에 오를 수도 있다. 여비가 걱정되어 물어보니 뉴스에 나온 여자럭비팀 취재 영상을 보고, 어느 기업의 사장님께서 후원해 주신 것이라 한다. 호텔이며 비행기며 사비로는 어렵다고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떨어지면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어쩔지 너무 아찔하다는 '은'에게 괜찮다고 참가만 해도 정말 멋진 도전이라고 말한다. 근데 그럼 수요일 러닝은 '진'과 나 둘이 하는 건가?

그날 저녁 '진'에게 카톡 왔다 내일 아침 행사 준비로 러닝을 이번 하루만 쉬자고 한다. 어이쿠야. 러닝을 어느새 좋아하게 된 나는 그 시간만 기다려왔다.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이해가 되기도 한다. 양가적 감정이다. 우선 "네 알겠습니다"라고 보냈다. 좀 사무적인가 싶기도 한데, 나의 입장을 정확히 못 정했다. 이제 나의 선택이 남았다. 어떻게 할 것인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날씨도 춥고 혼자서 뛴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상상만으로도 공기만큼 차가운 외로움이 마음에 닿는다. 스멀스멀 나의 의지에 대한 의심이 모닥불처럼 피어오른다. 하지만 아침 동틀 녘의 하늘과 그것을 박차고 운전대를 잡고 운전하는 나의 기상. 그래 인생에서 진정한 어른은 홀로서기를 잘할 수 있어야 하는 거야!라고 다독이며 혼자서 뛰어보기로 한다.

다음날 아침, 혼자 나갔다. 의심의 모닥불에 불이 붙기 전에, 벌떡 일어나서 발로 끄고 나갔다. 새벽을 가르고 도착했을 때 반겨주는 시원한 바람. 탁 트인 잔디구장. 병풍처럼 둘러싼 푸른 산맥과 추수된 논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뛰고 난 다음에 느껴지는 달콤함과 상쾌함을 포기할 수가 없다. 어느새 나는 사람을 넘어 그곳의 공간과 약속하고 있었다. 2바퀴가 지나자 숨이 차오른다. 몸이 무겁다. 4바퀴가 되자 다리가 무겁다. 음악과 함께 계속 쉬고 싶다. 강렬하게 포기하고 싶다. 4바퀴 반에서 결국 멈췄다. 숨이 차서 더 이상 뛸 수가 없다. 천천히 걷기로 한다. 차분히 숨을 고른다. 내가 정말 지난번에 6바퀴 뛴 게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때는 '은'과 '진'이 함께 있었다. 혼자서 뛸 때 나의 한계는 4바퀴 반이다. 때때로 아침부터 할 말이 없어서, 좀 불편하고 , 신경 쓰일 때도 있었다. 어색하게 스몰토크가 부담이 된 적도 있었는데 같이 뛰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뛴 것이 이었구나.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그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받고 온기를 나누고 밝게 살 수 있었다. 없어보니 더욱더 소중하고 감사하다. 홀로서기를 한 나 자신도 칭찬하지만, 같이 걷는 동료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낀 나에게 뿌듯했다. 소모적이고 쓸모없다고 생각했는데, 에너지 낭비가 아니었다. 에너지 나눔이었다. '은'은 멀리서 잘 시합하고 있겠지. '진'에게 금요일에 나올 거냐고 물었다. 당연히 나온다고 한다. 내가 금요일에 안 나오면 벌금 받을 거라고 응수했다. 같이 하고 싶기 때문이다. 행복하다. 혼자서 뛰어도 행복하고 함께 뛰어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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