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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욱 Oct 03. 2023

좋은 티칭프로

'이븐파' 스코어를 처음 치는 날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 'USGTF 티칭프로'에 도전할 생각이다. 한참 보기플레이하면서 골프 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을 때, 젊은 시절 KPGA 프로였던 분과 라운드를 하면서 골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티칭프로를 목표하지 말고, 골프 실력을 만드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지나 보니 그분이 말한 의미를 알 것 같다.


티칭프로라면 남을 가르칠 준비가 되어야 하는데 자격증이 있다고 내가 진정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공조냉동기계기사 1급' 자격증을 갖고 있었다. 시설관리 회사에 입사하던 날 엄청 큰 대형 냉동기 앞에 처음 섰을 때 작동은커녕 어떻게 켜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국가공인 자격증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고, 학교에서 배운 이론과 실습만으로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냉동기 자격증이 없는 전기 담당자한테 작동방법을 배웠었다. 이렇듯 내가 자격증을 갖춘다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다. 그래서 자격증보다 실력에 집중하란 말에 진정성이 더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대한민국 자격증 공화국이란 사실이다. 자격증이 있어야 뭐라도 해볼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처음 골프를 배우는 사람들은 티칭프로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그 사람에게 레슨을 등록하지 않는다. '그 프로 잘 가르치더라'라는 주위 사람들의 평을 듣고 연습장 등록을 대부분 한다. 어떤 경력을 가졌냐 보다 어떻게 가르치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입담과 경력을 믿고 사람들이 올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자신에게 맞지 않다 생각 들면 재수강은커녕 손가락질당하기 딱 좋다. 람은 각자 자신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의 성향이 같을 수 없기 때문에 같은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것을 가르칠 때도 피교육자의 성향 파악 선행돼야 어떻게 가르칠지 방법을 찾게 된다. 육자의 입장에서 지도방법도 중요하지만, 피교육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최종 목적지로 내가 티칭프로를 욕심내는 이유는 은퇴 이후 꿈꾸는 삶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익힌 '아마추어답게 골프 치는 방법'을 사람들이 좀 더 쉽고, 즐겁게 배우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우리는 프로들이 가리키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지만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나는 골프를 정석대로 배운다 해도 정석대로 칠 수 없기 때문에 골프는 쉽게 배우고 편안하게 플레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내 몸에 맞는 옷이 가장 좋은 옷인 것 같이 골프도 내 몸이 편안하게 느끼는 스윙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골프의 기본은 지키되 나에게 최적화된 방식으로 배운다면 얼마든지 편안하고 즐겁게 골프를 할 수 있다.


얼마 전 골프를 다시 시작한 친한 동료가 있다. 몇 년 전 골프 레슨을 3개월 받았었는데 라운드 한번 안나가 보고 포기했다고 했다. 이유를 들어보니 한 달 동안 똑딱이(처음 3~4일 동안 그립 잡는 방법과 공을 맞추는 간단한 동작)만 했고, 2달 넘게 아이언 하프스윙만 배웠다는 거다. 결국 석 달 동안 드라이브 한 번 못 잡아보고 그만뒀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이유가 뭔지 물어보니 정말 말도 안 되게 하프동작을 마스터해야 다음 동작이 이어진다는 논리였다.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티칭프로가 맘에 들 때까지 기본 동작을 익혀야 다른 동작을 가르친다고 하다니 말도 안 되는 교수법을 고수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근거 없는 행동으로 인해 이제 골프를 시작한 사람들에게 골프가 얼마나 재미없는 운동으로 여겨졌을지 보지 않고도 알 것 같았다. 동료와 몇 연습장을 동행하면서 골프를 다시 한번 시작해 볼 것을 권유했고, 얼마 뒤 다시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반가웠다. 그 친구와 겹치는 취미가 없어서 걱정 아닌 걱정을 했는데 이제 평생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갈 수 있게 된 것 같아 정말 다행이다. 다시 시작한 지 두어 달쯤 지나 얼른 머리부터 올려 주었다. 비가 와서 전반 라운드만 돌았는데 엄청 재미있다는 리뷰를 했고, 며칠 뒤 같이 간 라운드에서는 나를 깜짝 놀라 했다. 골프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이언이 정교했다. 요즘은 골프에 빠져 라운드 약속을 미리미리 챙기고 다닐 정도다. 아이언 하나로 즐거울 수 있는 골프가 그에게  앞으로 얼마나 다양한 희로애락을 맛볼게 할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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