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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Jun 17. 2022

투명도 70%

긴 호흡, 그 두 번째

    


    예전에 강남역 카페에서 일을 했었다. 서비스 업무는 즐거웠지만 강력한 복병이 있다면 설거지였다. 손님이 많을수록 탑을 쌓는 컵들과 누가 고무장갑에 손을 끼울 것인지 치열하던 눈치 게임 속에서 내가 얻은 건 ‘주부습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르바이트 첫날에는 실수하기 싫은 마음에 컵을 아주 열심히 닦았는데 아무리 닦아도 컵들이 투명해지지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컵과 나의 장기전을 시작하려던 순간, 원래 반투명한 컵이라는 파트너 오빠의 한 마디에 내 의욕은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버렸다. 그 이후 나는 약간은 덜 열심히 (분명 성실한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컵을 씻게 되었다.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불투명과 훤히 다 보이는 투명. 그 사이 반투명은 좀 대충 씻어도 될 것 같은 컵 정도의 상태다. 만약 타인에게 보이는 ‘나’를 조절하는 투명도 슬라이더가 있다면 양쪽 극단을 선택할 사람들은 아주 적을 것이다. 0퍼센트에 손가락을 얹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런 사람과 끈끈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경우는 드물 테니까. 반대로 여과 없이 본인을 보여주는 백 퍼센트 투명도의 사람들은 잘못하면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가 반투명하게 자신을 보이는 것은 아마도 덜 신경 써도 되는 컵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나는 평균적으로 70 정도에 커서를 두고 살아간다. 나를 구석구석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남들에게 보이기 싫은 단점들과 포장하고 싶은 부분들이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건 투명도를 조금 더 올렸다는 것이고, 약간의 망설임이 따랐다는 걸 의미하고 있다.


    어렸을 적 성격 심리검사 같은 것을 하면 왠지 좋아 보이는 항목들에 고개를 끄덕이며 체크를 표시하곤 했다. 여기서 ‘좋아 보인다’는 건, 내가 원하는 내 모습에 가까워 보인다는 뜻이다. 당당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정하고 활발하고 주위에 사람이 많은 성격. 그런 아이가 되고 싶어서 그런 항목들에 체크하고 정말 그렇게 살아왔다. ‘말하는 대로’라는 표현이 있듯이 나는 어느 정도 바라는 모습의 사람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백 퍼센트 투명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정하지 않은 나’를 마주할 때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당당하지 못한 모습을 깨닫거나 남들과 비교하는 못난 생각이 들 때, 그보다 더 못난 언어를 속으로 중얼거리며 내가 영화의 악당 역할이라도 된 듯 실컷 미워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면을 보이는 스스로가 실망스러웠고, 결국 나도 나를 백 퍼센트 투명도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건 꽤 슬픈 일이었다.


    다정한 사람을 유독 좋아하는 건 아직까지도 나에게는 없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 나름대로 마음을 전달하고 표현하고 사랑하는 데에는 자신 있다. 하지만 온화한 성격에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말들을 건네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내게도 그 안온한 분위기가 손톱만큼은 옮겨 붙는 것 같아서 좋다.


    언젠가부터 스스로 붙이는 수식어에서 ‘다정한’을 빼기로 했다. 나는 다정하지 않고 착하지 않아도 아주 멋진 사람임을 알게 됐다. 세상에는 수십만 부류의 사람이 있고, 내가 정한 좋은 사람의 기준에 다 부합하지 않더라도 나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인연인 것이다. 그러고 나니 남은 숙제는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었다. 타인이었다면 가까이 두고 싶지 않은 면이 보일 때마다, 그런 나를 사랑하진 못할지언정 아픈 손가락으로 여기기로 했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한 번 더 다짐한다. 똑똑히 얘기할 수 있는 단점을 알고 있다는 건 나름대로 얼마나 멋진 일인가.


    예전에는 밖에서의 모습과 내 어두운 모습에 괴리감이 들어 ‘가식’이라는 단어에 괜히 움츠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저 최소한의 예의와 상대와의 공감대를 생각하며 투명도를 조절할 뿐이다. 중요한 건 적어도 나에겐 솔직하게 살자는 것. 이렇게 선전 포고했으니 이제 아홉 번만 더 말하면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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