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세계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이다!(인구 3만 이상이 사는 도시 중에서). 그러다 보니 이 지역에서 눈은 종종 골칫거리이다. 그런 눈으로 이글루를 만드는 행사가 열렸다. '지구 마을'이라는 펜션 겸 캠핑장에서 '이글루 마을'을 만드는 행사이다. 밀린 업무가 많은데 무슨 이글루 만들기냐는 생각과, 책상에만 앉아 있을 게 아니라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밀려왔지만 몸을 움직이는 초이스를 했다.
약 일주일 간 진행되는데 나는 첫날만 함께했다. 올해는 눈이 많이 안 내렸고 특히 이 행사가 시작하기 전 며칠은 눈이 없어 이글루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래서 당일 아침에도 전화를 해서 확인하고 갈까 생각했는데, '지구촌'이라는 캠핑장도 한번 가보고 싶었던 터라 그냥 가보았다. 평소 한 시간이면 갈 거리를 눈 때문에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려 현장에 가보니 벌써 이글루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날 체험한 이글루 만드는 법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블록 만들기
먼저 이글루를 만들기 위해서는 눈이 있어야 한다. 최소 무릎 이상 눈이 쌓여있어야 한다. 이글루는 쌓인 눈을 뭉쳐 만든 눈블록을 벽돌처럼 쌓아 올려 짓는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블록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블록은 어떻게 만들까. 가능한 딱딱해지게 눈을 뭉쳐야 한다. 눈싸움하듯 손으로 뭉치는 게 아니라 밟고 밟아 눈이 최대한 딱딱해지게 해야 한다. 아래 사진에 보면 사람들이 눈을 밟고 있다. 이는 눈을 딱딱하게 뭉치게 하기 위한 작업이다. 이번에는 발로 밟아 뭉쳤지만 높고 큰 이글루를 만들려면 눈이 그만큼 딱딱해야 한다. 그래서 기계로 뭉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눈이 딱딱해지도록 여러 명이 밟고 있다
그다음 비슷한 크기의 블록으로 잘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략적인 크기를 정해 선을 긋는다. 길~게 선을 긋고 톱으로 대략적인 블록 크기를 결정한다. 그럼 블록 크기는 어느 정도 되어야 할까? 아래 사진 정도의 크기가 된다. 블록은 이글루의 크기에 따라, 그리고 들어가는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이글루의 아래 들어가는 블록은 크게, 위로 올라갈수록 블록이 조금씩 작아진다. 위로 올라갈수록 가벼워야 아래 깔리 블록이 부담이 적고, 또한 블록을 위로 전달할 때 밀어 올리기도 편하다.
뒷면과 옆면을 자르고 밑에도 톱질을 하고 있다.
톱으로 세 면을 자른 뒤 삽으로 한번 떠서 떨어져 있는지 확인하고 블록을 떼어낸다.
블록을 최대한 다듬는다
이렇게 블록을 만들고 이글루를 쌓아 올리기 위해서 크게 세 가지 도구가 필요하다. 눈을 쓸기 위한 전용 톱, 그리고 눈을 떼고 파기 위한 삽, 그리고 이글루를 운반할 수 있는 손수레가 필요하다. 눈 전용 톱이 있으면 편리하지만 만약 간단하게 만들거나 구입할 수 없을 경우 그냥 톱으로 해도 무방하다.
이글루 만들기 위한 도구들
블록 쌓아 올리기
이렇게 블록이 만들어지면 이글루를 쌓아 올려야 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블록을 자르는 작업과 운반하는 작업 이글루를 쌓아 올리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된다. 이글루를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약간의 기초 공사가 필요하다. 이글루를 만들 자리를 조금 다져야 한다. 눈 위에 쌓아 올리기 때문에 가능한 탄탄한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글루의 크기를 결정해야 한다. 작은 이글루, 예를 들어 사람이 안 들어가는 이글루는 크게 신경 안 쓰고 쌓아 올리면 되지만,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이글루, 즉 지름이 약 2미터 이상의 이글루는 처음부타 제대로 설계를 해야 한다.
지름 2.5미터의 이글루를 만들기 위한 원형 표시
이날 이글루는 지름이 약 2.5미터 정도이다. 먼저 대략적으로 원을 인식할 수 있는 표시를 만들어야 한다. 자로 길이를 재고 대략적인 표식을 꼽는데, 이는 반듯한 원형으로 쌓아 올리기 위한 기초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글루는 동서남북 방향을 확인해야 하는데 이는 이글루에도 약한 부분인 접점 부분은 비교적 해가 적게 드는 서쪽을 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블록으로 이글루를 쌓아 올리는 원을 한번 그리고, 맞닿는 지점에서는 그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블록을 깎거나 해서 조절한다.
눈블록 한 바퀴
이글루 만들기는 크게 네 조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커터팀은 눈 블록을 만드는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운반팀은 자른 눈블록을 눈에서 떼어내서 이글루를 만들고 있는 곳까지 운반한다. 그리고 이글루 옆에서 블록을 전달하는 팀이 있으며 이글루 안에서 이글루를 쌓아 올리는 팀으로 나뉜다.
두 층을 연결하는 부분
이글루의 아래층과 윗 층이 이어지는 부분. 이 부분은 서쪽을 향하게 된다.
우선 그렇게 해서 똑같은 넓이로 약 네 단 정도까지 쌓아 올린다. 그다음부터 조금씩 천장이 아치형이 될 수 있도록 좁혀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날은 날씨가 안 추워 비교적 좁고 높게 만들었다. 그래야 안 무너진다고 한다.
블록이 4층 이상 쌓였을 때부터 서서히 좁혀간다.
이글루는 혼자 만들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협력하며 쌓아 올려야 한다. 4층 이상이 되면 본격적으로 이글루 모형을 만드는 작업이 진행된다.즉 아치 형을 만들어야 한다. 아치형은 잘 만드는 건 쉽지 않다.제대로 아치형으로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제법 연습과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블록을 전달해주고 있다. 이날은 눈이 내렸다가 맑았다가 날씨가 변덕스러웠다.
그리고 이글루가 높아질수록 블록을 전달하기도 어려워진다. 블록이 생각보다 무거워 두 사람이 힘을 합해서 들어 올려야 한다. 처음에는 특별히 발판 없이도 블록을 쉽게 전달할 수 있지만 이글루가 높아질수록 아래 사진처럼 발판을 디디고 눈블록을 올려주어야 한다.
이글루가 높아져 상자를 디디고 눈블록을 전달하고 있다
거의 완성단계까지 이글루가 높아지면 작을 사다리를 세우고 눈블록을 전달하게 된다
마침내 높이가 완성된 이글루!
이날은 이글루 만들기가 쉽지 않은 날이었다. 이날 사용한 눈도 오래된 눈이라 잘 뭉쳐지지 않았다. 뭉쳐진 눈도 쉽게 부서져 이글루를 쌓기 위한 블록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블록이 조금 부실하다 보니 반듯하게 쌓아 올리기도 쉽지 않았고 완성된 이글루도 다소 불안해 보인다.
이글루 안에서 작업한 사람이 나올 수 있도록 입구를 만든다
위의 사진은 이글루 입구를 만들고 있는 장면이다. 이글루는 원칙적으로 안에 사람이 거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구가 필요하다. 이날은 지역의 방송국에서 이글루 만들기에 대해 취재를 나왔다. 약 1시간 30분 동안 열심을 취재를 해갔다.
대략 입구가 완성 됐다
이글루 안으로 사람이 들어가고 있는 모습
이글루 내부 모습
이글루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아늑하다. 여기서 차를 마시거나 심지어 고기를 구워 먹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학생들이 이글루를 직접 설계하고, 협력해서 완성하고 실제 이글루에서 자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글루는 대략 이렇게 완성된다. 최종적으로 천장도 덮어야 하는데, 가능하면 마지막에 덮게 된다. 특히 날씨가 비교적 따뜻할 때 천장을 덮으면 이글루 안팎의 기온차 때문이 이글루가 빨리 녹아내리게 된다. 이글루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영하의 기온이어야 하며 3~4도를 웃도는 기온이면 이글루가 녹아내리게 된다고.
이글루를 만들어보니
이글루는
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리다 보니 지역 사람들은 눈 내리는 겨울을 지옥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새하얀 눈이 시커멓게 보인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글루 만들기는 이런 눈을 역으로 이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여러모로 지역의 골칫거리인 눈을 활용하여 멋진 이글루를 만들어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이날 눈이 조금 부족했는데, 한 참가자는 눈이 이렇게 귀한 줄 몰랐다는 농담반 진담반 소감을 내놓기도 했다.
이글루 만들기는
재밌는 운동이다. 그리고 이글루 만들기는 생각보다 재밌다. 눈을 딱딱하게 다지고, 이를 잘 자르고 이글루 쪽으로 운반하는 일. 그리고 크기를 정해서 기초를 다지고 한층 한층 쌓아 올리는 일은 상당한 운동을 요구한다. 사용하는 근육 부위도 다르다. 톱질, 삽질, 손수레 끌기, 이글루 블록 올리기. 전진의 운동을 골고루 단련할 수 있다. 열심히 블록을 만들고 나드다 보면 당연히 추위가 물러가있다. 그리고 모든 과정을 다른 참가자와 함께 진행하게 되는데, 서로 논의하며 진행하다 보면 전우애가 생기는 기분이다.
이글루 만들기는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이글루 만들기는 수료증도 발급하고 있다! 이글루 블록을 만들 수 있는 커터, 이글루를 쌓아 올릴 수 있는 빌더, 이글루를 아치형으로 쌓아 올릴 수 있는 어자스트(조정자), 이글루의 계획부터 완성까지 가능한 마스터로 나눠진다. 참가 인원에 따라 이글루를 완성시키는 시간이 달라지겠지만 대략 하루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이날은 9시에 시작해서 3시 30분경에 작업을 마무리했다. 블록 하나하나를 쌓아서 이글루가 완성되었을 때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무언가를 완성하는 것은 기쁜 일이며 이글루도 예외도 아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토대로 나는 이렇게 약속한(매주 토요일까지 오후 4시까지 브런치 한 편) 브런치 글 하나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