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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꾸라지 Feb 09. 2023

나를 꼭 버려야겠어?

아침에 어명이 떨어졌다.

"오늘은 쓰레기 수거날이니라. 이 몸이 퇴근하기 전까지 베란다 책장에 있는 책을 모두 버리거라!"

"아니 멀쩡한 책을 꼭 버려야 하옵니까? 혹시 공주님이 다시 읽거나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드리면 안 되옵니까?

"어허, 저기 책은 3년째 그대로이니라. 공주가 읽을 책은 이미 방의 책장에 가득가득 차 있느니라"

"알겠사옵니다"

더 이상 묻다가는 엄벌이 내려질 것 같았다.


"만약 퇴근 전까지 그 책들을 모두 버리지 못한다면 벌로 곤장 100대와 저녁 식사를 굶을 줄 알아라"

'곤장 100대와 저녁 식사 굶기?' 곤장 100대는 버티겠지만 저녁 굶기는 너무 가혹하다...


10시에 온라인 회의가 끝나고 책을 묶기 위해 베란다로 갔다.

좋은 책들이 많았다. 이런 책을 다 버려야 하다니. 나는 가끔 버려진 책을 주워올 때가 있는데,

버릴 책들을 쓰레기 장에서 봤다면 내가 주워올 법한 책들도 제법 있었다.


문자로 다시 확인했다.

"책을 다 확인하셨는지요?"

"다 확인했으니 잔말 말고 버리거라"

"네 알겠사옵니다"


열심히 책을 묶었다. 꽤 됐다. 이 책들을 다 버려야 하다니.. 자꾸 미련이 남았다.

버리는 건 힘들다.

'다음 주 같이 술 마시기로 한 분의 애가 어리다던데 몇 권 가져갈까?

몇 살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책이 필요한지도 모르고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관두자'




베란다에서 묶은 책을 거실로 넣었다. 책을 다 묶으니 여섯 뭉치 정도 됐다.

책뭉치를 현관문 앞으로 모두 날랐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모두 밖으로 날랐다.

그리고 문 앞 있는 책을 엘리베이터 앞으로 날랐다.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기념 촬영을 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일사불란하게 책을 밀어 넣었다. 1층버튼을 누르고 1층으로 향했다.

5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택배나으리가 타셨다.

1층에 도착했다. 택배나으리께 먼저 내리시라고 하니 기어이 엘리베이터에서 책 내리는 걸 도와주신다.

"쓰레기장으로 가져가시는 거예요?"

택배나으리께서 물어보셨다.

"네"

"카터 빌려드릴 테니 카터로 한 번에 나르세요"

"아뇨 괜찮습니다"

"어차피 옆 동에 잠깐 다녀와야 하니 이걸로 나르세요"

친절하게 카터를 가져다주신다.

"고맙습니다"


카터에 실어보았다.

"다 실려요? 판자가 있는데 빌려드릴까요?"

책이 많은 것 같아 택배나으리께서 다시 물어오신다.

"아뇨 괜찮습니다"

간신히 카터에 다 실었다.

카트가 아니었다면 최소  번은 날라야 했다.

카터를 끌고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책을 내려놓고 가볍게 손을 흔들고 돌아섰다.

참고 있던 책들이 돌아서가는 내게 묻는다.

"나를 꼭 버려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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